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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용(쇠소깍)

6코스(쇠소깍→제주올레여행자센터) 1

by 커피소년

5코스 종점과 6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고 하늘을 봤다. 잿빛은 더욱 짙어졌다. 사물의 색도 조금씩 무거워져 갔다. 간세 등에 앉아 텀블러를 꺼냈다. 물이 남아있었다. 물 마시는 시간도 아까워 쉬지 않고 걸었다. 숙소는 6코스 길이 지나는 하효항에 있었다. 결국 6코스를 또 걸어야 했다. 젠장 여전히 올레길 위였다. 몸은 벌써 하루를 마무리한 듯 피로로 물들어 무거웠다. 미열 같은 수준이지만 무릎의 통증은 수명이 거의 다해 전원이 들어와도 깜박깜박하는 백열전구처럼 왔다 갔다 했다. 얼른 저녁을 먹고 파스를 붙여야 했다. 그리고 진통제도 먹고 바로 눕고 싶었다. 남은 물을 마시며 4코스와 5코스는 정말 다르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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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스는 대체로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중간스탬프를 찾아 토산리로 들어간 것이 유일한 내륙을 향한 길이었다. 반면 5코스는 해안 도로를 넘어 바다에 가까운 숲이나 돌들이 깔린 해변과 길이 같이했다. 해안 도로는 이런 길들을 연결하는 데 의미가 있었을 뿐이었다. 코스의 이런 모습이 바다를 향한 올레길의 사랑처럼 보였다. 4코스는 짝사랑의 길이었다. 바다를 향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바다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바다에 다가가지 않았다. 그 마음을 해안 도로에 곱게 다지며 그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요동을 조용히 견뎌냈다. 반면 5코스는 격렬한 사랑의 길이었다. 바다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어떻게든 바다에 가까이 가려 했다. 그곳이 용암이 식은 암석이나 현무암 돌들의 울퉁불퉁한 곳이어도, 나무로 우거져 어두운 숲이어도, 뭍의 끝인 절벽이어도 바다와 만날 수 있다면 길은 무조건 다가갔다. 미친 사랑의 길이었다. 그러나 끝내 이룰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어쩌면 대부분 해안 길로 이루어진 올레는 바다를 사랑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짝사랑의 길일 수도 있고, 없는 길도 만드는 미친 격렬한 사랑의 길일 수도 있고 또는 2코스처럼 시치미 떼고 내륙으로 들어갔지만 끝내 바닷가로 돌아온 그리운 사랑의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올레의 모든 길은 바다와 만날 수 없는 비련의 길이었다. 길이 바다로 들어가면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레를 너무 생각했나 보다. 생각이 너무 멀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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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4코스 해안도로 / 우 : 5코스 해변 길>

물을 다 마셨으니 걸어야 했다. 1.8Km에 있다는 감귤박물관을 알리는 귤색 버스정류장 안내판이 보였다. 이곳, 효돈동이 감귤 주산지이기 때문에 감귤박물관이 있는 것 같았다. 정자가 있는 곳에는 ‘유네스코 제주도 생물권보전지역’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이용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적 발전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생물권보전지역’이고 특히 효돈천은 제주도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이라고 한다. 웅덩이처럼 돌 사이에 물이 고인 곳도 있지만 대체로 건천인 이곳이 효돈천이었다. 효돈천의 바닥은 현무암의 암석들도 있지만 용암이 흐르다 식어버려 우그러진 판들도 있었다. 그래서 건천임에도 이어진 우그러짐이 물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약 13Km를 흐른 건천은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경계 지점에 있는 ‘쇠소깍’에 이르러 바다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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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돈천>


조금 더 내려가니 효돈천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나무 울타리로 된 길로 이어졌다. 깊이를 느낄 수 없게 얕게 흐르던 효돈천이 갑자기 훅하고 꺼졌다. 건천의 암석들이 양옆으로 물러나 절벽이 되었다. 그리고 절벽이 보이는 곳에 나무테크로 된 길로 다시 내려갔다. 그 입구에 이곳이 ‘쇠소깍’ 임을 알리는 검은 석판이 놓여 있었다. ‘쇠’는 ‘소’를, ‘소’는 웅덩이를, ‘깍’은 끝이라는 의미로 바다와 만나는 하천의 하구를 의미하는 제주어였다. 그래서 쇠소깍은 쇠소와 하구 부분을 통칭하는 지명이고 옛 조상들은 쇠소에 용이 산다고 해서 용소(龍沼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있는 깊은 웅덩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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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 안내 석판과 쇠소깍>

나무테크 길에 ‘하효본향당’ 안내판이 있다. 본향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당이다. 설문대할망의 둘째 아들인, 한라산계 바람의 신인‘세금상 보름웃도’를 당신으로 모시고 있다. ‘세금상 보름웃도’ 는 강력한 힘을 가진 신으로, 활시위를 한 번 당겨서 쏘면 3천 명의 군사가 한꺼번에 쓰러질 정도로 힘이 셌다고 한다. ‘보름’은 ‘바람’을 의미한다. 현재 원래의 본향당은 사라지고 쇠소깍 전망대와 함께 쉼터처럼 작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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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천이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절벽은 더 높아지며 더한 깊이를 만들었다. 깊이는 짙은 에메랄드색의 물로 채웠다. 흔한 언사인 절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병풍 같은 절벽, 에메랄드빛의 물, 물의 색에 물든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이렇게 흐린 날인데도 이 정도라면 맑은 날엔 얼마나 멋있을까? 이와 비슷한 풍경이 생각났다. 17코스에 있던, 순방향으로 걸으면 용두암을 지나고 보이는 용연이었다. 용연은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참 이상하다. 용이 물에 살았나? 상상의 동물인 용이 어디에 사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용연, 용소를 보니 물에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낯설었다. 용이 하늘을 난다고 생각하니 사는 방식이 새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물에 산다는 것이 낯설었던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찾아보니 용왕이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용왕? 용왕도 별주부전이나 심청전에 등장한 포세이돈처럼 그냥 바닷속 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용왕의 ‘용’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용왕은 ‘바다에 살며 비와 물을 맡고 불법을 수호하는 용 가운데의 임금’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우린 설화에서 용은 바다의 신이었다. 그래서 용소와 용연이 자연스러웠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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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이 검었다. 하효쇠소깍 해수욕장이었다. 여기에 여의주를 문 용이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큰 석판이 있다. 쇠소깍 전설을 알리는 것인데 검은색 글씨가 바래서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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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은 효돈천의 끝지점에 위치한 깊은 소(沼)로서 비를 내리게 하는 용(龍)이 산다 하여 일명 용소(龍沼)라고도 한다. 이곳은 옛 조상들이 밭농사를 지었던 농경사회에서 여름철에 가뭄이 심해 농사가 폐작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집집마다 제물을 모아 정성을 다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이 풍습은 오늘에 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는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하효 마을 사람들이 정착하여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시절, 주인집의 귀여운 외동딸과 그 집 머슴의 동갑내기 아들이 한울타리에서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흙장난하고 신랑각시하며 살다가 어느 날 성장하여 주인집 외동딸이 먼 동네로 시집가게 되었다. 이들은 양가 부모님께 둘이 장래를 약속한 사이임을 말씀드렸으나 이를 허락지 않고 주인내외는 머슴 가족을 멀리 내쫓고 말았다. 너무도 억울한 머슴아들은 이 내(川)에 있는 자살소(刺殺沼)인 「남내소」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이 「남내소」는 물에 빠지면 사람의 힘으로는 건져낼 수 없는 깊은 소(沼)여서 주인집 딸은 부모 몰래 매일 밤 자시(子時)에 쇠소깍 기원바위 위에 와서 하느님께 비를 내려주십사고 100일 동안 빌고 또 간절히 빌었다. 100일이 되던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사방이 캄캄 해지더니 큰 비가 내렸다. 남내소 냇물이 넘치자 사랑하는 총각이 냇물에 떠올라 이 쇠소로 내려와 모래 위로 올라왔다. 처녀는 죽은 총각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슬피 울고 나서 기원바위 위로 올라서서 쇠소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이 처녀의 순수무애(純粹無涯)한 사랑과 높은 정절을 깊이 기리기 위해 하효마을 동쪽 동산인 용지동산(龍旨童山)에 당(堂)을 마련해 영혼을 모시고 하효마을의 무사안녕과 번영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할망당」 또는 「여드레당」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할망당」이나 기원바위에 와서 빌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고 있다.

또한 쇠소깍에서 마을 기우제를 거행할 때는 밤에 제관(祭冠)이 「할망당」에 와서 용지부인석(龍旨婦人石)을 모셔다가 제단(祭壇)에 올려놓고 제(祭)를 시작한다. 이 쇠소곶(串)은 옛날부터 신성한 도량으로 여겨 돌멩이를 던지거나 고성방가를 하면 용이 노하여 갑자기 바람이 불고 일기가 나빠졌다고 한다. <서귀포시청 효돈동 자료실 참조>


신분을 뛰어넘지 못한, 비극으로 끝난 사랑이야기였다. 검은 해변엔 결혼사진을 찍고 있는 이들이 이었다. 그 옆엔 중년의 부부가 셀카를 찍고 있었다. 비극적 사랑의 전설이 서린 곳에서 새로운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테우가 보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본 테우였다. 생각보다 컸다. 쇠소깍에서는 테우에 사람을 실어 운행한다는데 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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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소금을 생산했는지 소금막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소금막 검은 해변을 설명한 안내판이 있었다. 검은 해변이 만들어지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바다에서 마그마가 분출되어 식으면서 형성된 화산(수성화산)이 깎이면서 해안에 검은 모래가 쌓이는 경우와 한라산에 있는 현무암이 침식되어 하천을 통해 운반되면서 해변에 쌓이는 경우이다. 이곳 해변은 후자라고 한다. 18코스에 있던 삼양동의 검은 해변은 전자였다. 어느 경우든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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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하효쇠소깍해수욕장(소금막 검은해변) / 우 : 삼양해수욕장>

다시 해변을 봤다. 연인들은 여전히 잿빛 하늘과 검은 해변에서 밝은 추억을 쌓기에 바빴다. 멀리 지귀도도 보였다. 풍경이 무겁고 어두워서인지 파도마저 잔잔히 밀려왔다. 하효항의 등대가 보였다. 그곳에 숙소가 있다. 소금막호스텔.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샤워하고 약을 먹고 파스를 붙인 후 피곤함에도 나갔다.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도 성산처럼 해가 지니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커피를 뽑고 낼 아침에 간단히 먹을 것을 사고 숙소로 들어와 오늘 걸었던 길을 정리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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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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