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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길

6코스(쇠소깍→제주올레여행자센터, 10.1Km) 2

by 커피소년

2011년이었다.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에 혹이 많기도 하고 크기도 하니 상급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집 근처에 있는 중급 종합병원 내분비과에서 여러 번의 조직검사를 받았고 진단 결과는 악성이 확률로만 표시되는 여포성종양이었다. 수술을 통해 조직을 전부 떼어내어 정밀검사를 해야 악성인지 양성인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악성으로 판명되지만, 간혹 양성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한 한쪽만 절제하여 암으로 판정 나면 다른 쪽도 절제하기 위해 또 수술해야 하니, 할 때 한 번에 양쪽 다 절제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고민하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로봇 수술이라 4시간이라던 수술이 8시간 이상이 걸렸고 나중에 나온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수술한 외과 의사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지만, 그 순간 이것이 축하받을 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는 의료사고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종 선택은 내가 한 것이었고 그냥 암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수술로 알지 못했다면 평생 암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이것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형 종합병원에서 교차 검진을 안 한 것이었다. 했다면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은 했다. 양성의 결과로 얻은 건 매일 먹어야 하는 갑상샘 호르몬인 신지로이드였다. 평생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다. 가장 효과가 좋은 복용은 공복 4시간 후 복용, 복용 후 한 시간 지나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 6시에 일어나 먹기로 했다.


6시에 일어났다. 노란 신지로이드, 한 알을 먹고 하얀 커튼을 젖혔다. 무겁게 내려와 가볍게 움직이는, 얇은 창호지가 무한히 겹쳐도 속이 비치는 듯한 하얀 안개가 하효항을 흩고 지나고 있었다. 한 시간을 더 잘까 하다가 가볍게 산책하기로 했다. 하효쇠소깍 해수욕장으로 갔다. 사람은 없었다. 안개는 수평선을 지우며 바다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바다는 멀어지며 어느새 안개가 되어 지귀도를 지웠다. 안개는 어제 지나온 5코스 숲의 경계도 서서히 녹이고 있었다. 다가오는 것인지 물러나는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파도만이 조용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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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쇠소깍 해수욕장 아침 풍경>

하효항에 갔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올레를 걸으며 항구에, 그리고 등대에 가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얼마나 마음의 여유 없이 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엔 마음에 여유가 흘렀다. 오늘 걸을 6, 7코스의 총길이가 23Km로 길지 않아서였다. 등대로 가는 길에 한 남자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저만치 오르고 있었다. 그의 포즈와 바닥에 그려진 그림,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엷은 회색의 무거움이 그를 쓸쓸해 보이게 했다. 어쩌며 내 마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 올랐다. 그는 빨간 등대까지 가지 않고 중간쯤에서 항구를 보고 있었다. 나는 등대까지 갔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없었다. 방파제 너머로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하효항을 봤다. 안개가 방파제를 넘어와 다시 흩고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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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0_070536.jpg <하효항 아침 풍경>

숙소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와 샤워를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무릎보호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벗었더니 오금의 피부가 빨갛게 부었다. 오늘은 스틱에 의지하고 걷기로 했다. 커피가 생각났다. 근처에 테라로사가 있지만 오픈 전이라 편의점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창밖을 보며 마셨다. 한 쌍의 부부가 벌써 지나가고 있었다. 체크아웃하고 길을 나섰다. 8시 2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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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벌써 걷고 있는 한 쌍의 부부 / 우 : 묵었던 숙소>


길은 하효항을 오른쪽으로 끼며 경사로 시작했다. 하효항을 넘었던 안개는 뒤로 물러나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잿빛인 흐린 하늘과 바다 사이에 얇은 선 하나가 희미하게 그어졌다. 수평선. 조금 걸으니 몸통이 불록하고 입구가 좁은, 제주도 전통 물항아리인 허벅을 등에 진 여인의 석상이 보였다. 그 옆에 작은 간세가 서 있다. 소금막에 대한 안내였다. 어제 해수욕장에도 소금막 검은 해변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보니 하효동에서 소금을 생산했었던 것 같다. 읽어보니 소금이 귀하던 시절,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 생산하고 저장했던 곳으로 소금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도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소금막이 있던 위치인 듯했다. 해안도로와 하효항이 만들어지면서 소금막은 사라지고 이렇게 간세 안내판으로 흔적만 남았다. 그런데 찾아본 다른 문헌은 간세의 안내문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효동 소금막터는 소금을 구웠던 곳으로 ‘소금막’이라고 불렸는데, ‘막’은 막사를 의미하는 곳으로 즉, 포구 동쪽에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던 막사가 위치했던 곳이다. 이에 과거에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솥을 걸고 땔감으로 불을 지펴 해수(海水)를 증발시켜 소금을 얻을 수 있도록 이용하였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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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막>

올레의 간세에는 ‘막’을 소금을 지키던 병사들의 막사로 보고 있고 다른 문헌에서는 소금을 만들던 막사라 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문헌에서는 이곳에 소금막을 복원하여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은 듯했다. 한다면 1코스에 있는 종달리옛소금밭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여기서 하나 배운다. 한번 파괴된 유적은 복원이 쉽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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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환상자전거길을 돌고 있는 라이더와 6코스 스탬프 부수>

한 무리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작년 4월 올레 숙소에서 만나 라이더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 나갔다. 제주에는 올레처럼 자전거로 제주를 일주는 '제주환상자전거길'이 있다. 해수욕장에 스탬프를 찍는 전화부스가 있었다. 그곳이 제주환상자전거길의 6코스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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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효항이 보이는 나무정자>

언덕에 오르면 하효항을 넓게 볼 수 있는 곳에 나무정자가 있다. 그곳에서 하효항을 다시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 두 젊은 외국 남녀가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잤는지 텐트를 접고 있었다. 정자를 피해 좀 떨어진 곳에서 하효항을 봤다. 안개를 완전히 물러났다. 다시 그들을 다시 봤다. 거의 다 접고 있는데 짐 장난이 아니었다. 저걸 지고 어떻게 걷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나? 주변을 보니 자전거도 없었다. 그럼 저걸 짊어지고 걷는다는 것인데. 젊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많이 부러웠다.


20250520_083119.jpg <빈지 바위 안내석>

다시 하효항을 보고 있는데 덤불이 시작되는 곳에 엷은 초록 이끼에 점령당하고 있는 검은 석판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빈지바위’에 대한 안내였다.


웃수물과 소금막 해안가 사이에 위치한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이다. 빈지는 제주어로 부엌과 상방(마루방) 사이의 두 기둥 사이를 가로질러, 막은 널판자를 말한다.


덤불 때문인지 바위를 볼 수 없었다. 바위를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인지 하효항에서 볼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어느 바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내석도 덤불 속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20250520_083307.jpg <야자나무 군락>

차 한 대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은 평평하게 게우지코지까지 쭉 이어졌다. 양편 나무들의 우듬지가 닿을 듯 말 듯하며 이어진 곳에서는 다른 곳보다 어두워 짧은 동굴을 연상시켰다. 동굴을 나오니 개활지가 펼쳐졌고 뒤에 높다란 야자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봤다. 이국적인 풍경이라긴 보단 동화 속 풍경 같았다. 야자수들은 반지의 제왕 2편 ‘두 개의 탑’에 나오는 고대 나무종족인 ‘엔트’처럼 움직여 나에게 허리를 굽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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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마을 관광지 안내판 / 우 : 웃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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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강시기 바위 / 우 : 알수물>

길의 해안가에는 공간이 있으면 마을의 관광지를 알리는, 사진으로 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많이 낡아서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그리고 여러 검은 안내 석판이 있었다. 강시기 바위를 앞뒤로 용수천가 나오는 웃수물(마을 기준으로 위쪽에 있는 용천수 : 웃은 위쪽을 의미)과 알수물(마을 기준으로 아래쪽에 있는 용천수 : 알은 아래쪽을 의미)가 있다. 강시기 바위는 태풍에 파도가 심해지면 물이 솟아올라 하늘에서 떨어진다 하여 降(낼 릴 강), 水(물 수), 起(일어날 기) 강수기 바위라 했는데 강시기 바위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빈지 바위처럼 볼 수는 없었다. 빈지 바위, 웃수물, 강시기 바위, 알수물의 안내 석판은 그들의 위치를 표시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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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우지코와 생이돌>

알수물에 이르면 ‘게우지코지’와 ‘생이돌’은 볼 수 있다. 게우지는 전복 내장을 뜻하는 ‘게웃’에서 유래한 것이고, 코지는‘곶’을 뜻하는 제주어로 여기 곶의 형상이 전복 내장 모습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게우지코지’ 오른쪽에는 커다란 두 개의 암석이 있다. 바다 철새가 쉬는 곳이라 하여 ‘생이돌’이라 불린다. ‘생이’는 새를 의미하는 제주어이고 바위에는 새똥 자국으로 하얗다. 이 바위는 모자 바위로 불리기도 하는데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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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우지코지에서 본 풍경>

‘생이돌’에 철새들이 많이 앉아서 그런가 ‘알수물’ 석판에도 하얀 새똥이 묻혀있었다. 이곳은 확 트인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하효항 쪽을 봤다. 해풍 때문에 뭍으로 누운 초록을 보니 빗질이 잘된 머리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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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따뜻했던 길>

이곳까지 오는 길 속에서 다른 길에 느끼지 못한 포근함을 느꼈다. 길가의 나무들이 웃자라 위압감을 주지도 않았고 너무 과도하지 않고 빈약하지도 않고 적당한 밀도를 이루며 걷는 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그 빈 공간으로 온기가 채워졌다. 그 온기에서 잘 살아왔다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위안과 위로를 담은 포근함이 전해져 왔다. 살짝 눈이 흐려졌다. 그래서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너무 따뜻한 길이었다.


20250520_083603.jpg <올레 길을 걷는 또 다른 한 쌍의 부부>

웃수물을 지날 때 근처에서 숙박하고 올레를 걷고 있는 한 쌍의 부부를 봤지만 ‘게우지코지’에 왔을 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어쩌면 아침 마실 나온 부부일 수도 있다). 이것저것 보느라고 너무 지체했나 보다. 다시 걸었다.

20250520_083539.jpg <하효항>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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