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코스 (월평아왜낭목쉼터 → 대평포구, 19.6km) 1
버스를 타기 전에 생수와 에너지바 몇 개 그리고 파스를 샀다. 아무래도 저녁에 파스를 무릎에 붙이고 자야 할 것 같았다. 버스로 얼마 걸리지 않아 월평에 도착했다. 8코스 시작점이 아닌 곳에 내려서 조금 걸어야 했다. 비는 그쳤지만 나머진 그대로였다. 두꺼운 잿빛 구름에 가려 얼굴을 내밀지 못한 해 때문에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사물은 젖은 그대로였다. 물기를 말리지 못한 풍경에 마음도 여전히 축축했다. 그래도 짧게 한번 웃어보았다.
걷는 도중에 커다란 돌하르방이 눈에 띄었다. ‘느리게 걷는 농장’ 앞 있었는데, 선글라스를 쓰고 조금은 개구진 얼굴의 돌하르방이었다. 눈길이 간 이유는 크기 때문이 아니라 배 때문이었다. 배에 철문이 내려져 있었다. 이런 돌하르방을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돌하르방은 존재 그 자체로 무엇을 알렸다. 그러나 저 돌하르방은 활용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철문의 존재는 내부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부는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상상되지 않았다. 창고 같기도 했다. 그러나 창고로 쓰기에는 돌하르방으로 너무 정성 들였다. 검색하니 저 안엔 자판기가 있었다. 한라봉과 감귤 자판기였다. 살짝 웃었다. 자판기를 품고 있는 돌하르방이 왠지 언밸런스했기 때문에 나온 웃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것이 눈길을 끌 수 있겠다 싶었다. 신기해서 한 번쯤 자판기 앞으로 가서 돈을 넣고 있지 않았을까?
월평아왜낭목쉼터에 도착했다. 여기는 뭔가가 많았다. 우선 월평에 대한 안내판과 관광지 약도가 보였다. 이번 올레를 준비하면서 코스들을 살펴보았을 때 8코스 시작점의 ‘월평아왜낭목’이라는 단어가 궁금했었다. ‘월평’은 지명으로 추측되지만, 발음하기도 힘든 ‘아왜낭목’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궁금증은 안내판에서 풀렸다. 월평마을의 옛 이름은‘돌벵듸’였다. ‘돌’은 달을, ‘벵듸’는 주변보다 약간 높으면서 평평한 지역이라는 의미였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달의 테두리 선과 같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넓은 들이라서 ‘돌벵듸’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달 월과 들 평을 쓰는 월평(月坪)은‘돌벵듸’의 한자어 이름이었다.
그리고 ‘아왜낭목’은 ‘아왜나무(제주도에서는 나무를 낭이라고 부른다)가 있는 길목’이라는 의미였다. 아왜나무? 처음 듣는 나무 이름이었다. 키 작은 상록수였고, 제주어 ‘아왜낭’에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아왜’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설에 의하면 아왜나무를 일본에서는 거품 나무로 부르는데, 거품의 일본어인 ‘아와(泡, あわ)’가 ‘아왜’로 바뀌어 아왜나무로 불렸다고 한다. 아왜나무는 ‘산호수’라고도 불린다. 나무의 붉은 열매가 바다의 붉은 산호와 닮아서 그렇다. 또한 아왜나무의 잎은 광택이 나고 두껍다. 그 안에는 수분이 많아 불이 붙으면 거품(그래서 일본에서 거품 나무로 부른 것이다)이 나와 불이 번지지 않게 해 준다. 이렇게 나무껍질이 두껍고 내화성 및 내염성이 강해 방화수나 해안방풍림 그리고 도심의 가로수로 사용한다. 사진을 보니 올레를 걸으면서 많이 보았던 것 같기도 했다.
‘아왜나무가 있는 길목’이라는 말에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아왜나무가 밀집해 있었고, 마을 앞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즉 아왜나무는 마을의 방풍림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하여, 1930년 월평마을 출신 24명의 재일교포-일본에서 민족적 차별을 당하면서 모은 재산을 고향마을을 위해 기부했다-가 아왜낭목 부지를 매입하고 소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이후,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하여 아왜나무는 벌채되고 소나무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아왜낭목’의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 마을에서 몇 그루의 아왜나무를 심은 상태다. 소나무를 심은 이유에 설화 같은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달 모양의 지형인 월평마을은 아왜낭목에서 달 모양이 이어지지 않아 풍수상 정기가 바다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이를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어 재일교포들이 마을을 위해 심었다고 한다. 당시가 일제강점기였으니 어떻게든 고향, 넓게는 민족을 생각한 교포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월평마을 안내판 옆에는 버스정류장이 붙어있고, 정류장에서 한 걸음 뒤로, 모은 두 손안에 빨갛게 핀 동백꽃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당겼다. 4·3 사건 관련 조형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4·3 사건 희생자를 동백꽃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평에도 열여덟 분이 희생당했다. 조형물 옆에 세워진 추모비의 내용을 읽다 이것은 희생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말도 못 하고 숨죽이고 있었던 희생자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4·3 사건은 숨은 그림자가 아닙니다.
4·3으로 혼자서 주검을 맞이한 당신의 두려움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추모 조형물을 제작하였습니다. 긴 세월 가족의 주검을 내 마음대로 슬퍼할 수 없었던 제주의 모든 가족과 그 슬픔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제주의 모든 도민을 위로하는 치유의 시작이 되길 빕니다. 영원히 여러분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4·3을 안아주세요
뿐만 아니라 ‘이제 4·3을 안아주세요’라는 문장으로 인해 모든 이들은 4·3 사건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봤던 4·3 사건 유적지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사건의 개요와 희생자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거의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이 비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니 무한의 걸음을 나아가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자칫 역사적 방관자로 있을 우리를 흑 끌어당겨 정서적 온기로 4·3을 따뜻하게 데워주길 우리에게 소원하고 있었다. ‘안아주세요’라는 구절에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싸늘히 식은 주검의 얼굴 위에서 녹지 않는 눈이었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던 눈이 ‘안아주세요’의 온기에 이제는 스르르 녹길 희망했다. 마음이 먹먹했다.
낡고 이끼가 낀 재일교포 공덕비(아마 소나무 기증과 관련 있는 듯하다)와 진입로 포장과 전기가설 기념비 그리고 누구인지 모를 충혼비를 지나니 8코스 시작점이 나왔다. 스탬프를 찍고 거리를 보니 19.6km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확인하니 가능할까 싶었다. 오후 2시 25분이었다. 걸을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8코스 시작이었지만, 시작이라는 밝음과 무관하게 날은 변함없이 어두웠다. 양옆의 돌담 사이로 난 젖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멀리 바다가 보였으나 하늘을 닮아 무채색이었고, 가는 선 하나가 하늘과 바다를 엷게 갈랐다. 그러나 얼핏 보면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었다. 길은 도로에서 좁은 길로 내려갔다. 비닐하우스가 길 양옆으로 쭉 이어졌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갔다. 어지러운 전선을 나뭇가지 사이로 통과시키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연한 보랏빛을 여리게 뿜어내고 있었다. 따뜻한 아열대에서 자라는 멀구슬나무였다.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주로 가을에 익는, 구슬 같은 열매와 관련이 있다. 열매가 멀리서도 구슬처럼 생긴 것이 잘 보인다고 해서, 멀건 구슬을 닮았다고 해서, 말똥(멀)과 닮아서 제주어인 ‘머쿠슬낭’에서 변형되었다고 해서 그리고 염주로 쓰여서 ‘목구슬나무’로 부르던 말이 변형됐다고 해서 멀구슬나무로 불렸다는 설들이었다.
내가 저 나무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굵은 전선이 연한 보랏빛 꽃들 뚫고 지나는 모습 때문이었다. 마치 긴 창으로 가슴이 찔린 모습이었다. 아마 월평아왜낭목 쉼터에 읽었던 4·3 추모비의 먹먹함이 저 모습을 희생자로 연상시킨 것 같았다. 고통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멀구슬나무의 다른 이름은 고련수(苦楝樹) 또는 연수(楝樹)이다. 고통을 연마하는 나무. 예전에 멀구슬나무 아래에서 참선이나 기도 등의 수행을 하며 마음의 고통을 연마했기 때문이었다. 굵은 전선이 지나가는, 고련수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멀구슬나무의 장면이 4·3 사건의 희생자와 그 가족의 돌처럼 굳어 갔을 고통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나의 공감이‘안아주세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순간 간절히 바랐다.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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