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약천사

8코스 (월평아왜낭목쉼터 → 대평포구, 19.6km) 2

by 커피소년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난 길은 바다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천사를 지나기 위해 바다와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비가 내렸다. 엷은 비였다. 우산을 펴고 걸었다. 담엔루리조트 입구로 들어간 길은 리조트의 경계인 돌담을 따라 이어졌다. 왠지 잘 사는 이의 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편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조심조심 걸었다. 작은 나무 터널을 지나니 대나무 숲 앞에 서 있는 간세가 보였다. 그것이 가리키는 곳에 약천사가 있었다.


20250521_143509.jpg <비가 다시 엷게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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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앤루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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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로 가는 길>

길은 약천사(藥泉寺)의 대웅전이라 할 수 있는 ‘대적광전’ 앞을 지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이 대웅전이고,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이 ‘대적광전’이다.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광명을 형상화한 부처로 법신불(法身佛)로도 불린다. 그래서 이런 의미가 있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큰 고요한 빛’을 함의하고 있는 대적광전이라 한다. 비로자나불은 손 모양(이것을 수인이라고 한다)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다. 오른손은 불계를, 왼손은 중생계를 의미하여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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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대적광전>

약천사 대적광전은 지상 30m로 동양 최대 법당을 자랑한다. 3층 규모의 전각이었고, 그 크기로 인해 멀리서도 보였다. 대적광전의 안을 보았다. 약사여래불과 아미타여래불이 좌우에서 비로자나불과 함께하고 있었다. 삼존불 뒤에는 그림인 일반적인 탱화가 아닌 여러 인물의 조각상이 있었다. 이것은 나무로 조각해 만든 탱화로 후불목탱화라고 부른다. 법당에서 경내를 봤다.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불자라면 실신한 신자이고 관광객이라면 운 나쁜 이들이었다. 경내 너머로 하늘과 구분이 그다지 되지 않는 희뿌연 바다가 희미하게 보였다. 맑은 날이었다면 경내와 바다, 하얀 구름으로 디자인된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 장관이겠다고 생각했다. 관광객에게는 그런 풍경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가치가 잿빛 하늘에서 뿌려진 비로 인해 지워지며 그들에게는 불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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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안 / 경내 풍경>


원래는 약천사는 절이 아니라 약수암이라는 작은 암자였다. 근처에 치유에 영험한 약수가 있어 약수암으로 불렸고, 창건주인 혜인스님에 의해 1982년부터 본격적인 불사가 일면서 창건되어 약천사로 이름 지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약천사 자리를 돽새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돽새미(도약샘道藥泉)는 좋은 수질의 약수가 흐르는 약수터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약천사에는 세종의 아들이었던 문종 임금과 현덕왕후, 그리고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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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를 지난 길은 대포포구를 행했다. 밭과 밭담 또는 삐쭉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난 길이었다. 멀리 가는 선 하나가 무채색을 갈랐다. 그나마 무거운 색은 아래로 내려갔고 가벼운 색은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타난 바다와 하늘이 간간이 보였다. 도로를 만난 길은 인도 나무 난간 위에 서 있는 처진 간세를 지나쳤고 도로를 벗어나 그리운 바다로 갔다. 정말 그리웠을까? 오늘 아침 올레여행자센터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본 바다였다. 거친 날씨와 축축한 길을 지나 도착한 바다였다. 밀려오는 표정 없는 바다에서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맑은 날의 바다는 그 푸름이 맘을 깨끗이 했다. 안개 낀 흐린 바다는 신비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왔다. 그러나 잔잔한 회색의 바다는 바람이 미는 기계적인 울렁임일 뿐이었다. 맘까지 오지 못한 바다를 잠시 보다 다시 걸었다. 바다와 접점인 해안 절벽 밑을 지난 길은 현무암의 검은 집을 반환점처럼 돌아 도로로 나아갔다. 멀리 대포포구의 방파제와 빨간 등대가 보였다. 그런데 등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간단한 구조였다. 알고 보니 등주였다. 목적은 등대와 같지만 단순한 기둥 모양에 꼭대기에 등을 달아 놓은 야간 항로 표지였다. 빛의 도달 거리가 짧아도 되는 항구나 항구 내에 설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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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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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풍경과 해안 절벽 밑 길>
20250521_150800.jpg <대포포구가 보인다>


등주를 가려버린 나무들 사이의 길은 도로를 만나 따라가다 포구로 내려갔다. 포구로 내려가는 모퉁이에 하얀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얀 바탕에 테두리에는 검은 문양이 있었다. 특이했다. '카페 오놀'이었다. ‘한라산 자연 초지방목 동물복지 유기농 우유로 만드는 프리미엄 디저트’라는 문구를 읽다, 우유라는 단어에서 간판이 젖소를 형상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놀’은 ‘오늘’의 제주어였다. 이곳은 다른 의미에서 특별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과 주식회사 굿잡제주가 협업하여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 카페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 이하 아이갓에브리씽) 카페오놀점이 오는 23일 문을 연다.

아이갓에브리씽 카페는 ‘서로 이해하고 행복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추진하고 있다.

이번 카페는 전국적으로 94번째 매장이며, 서귀포시 내 2번째 매장으로 중증장애인 바리스타 3명이 근무할 예정이다. (출처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 2024년 8월 17일, 원성심 기자)


우리 동네에도 이런 카페가 있다. 그곳 카페에는 다운증후군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린다.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다. 외모와 속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러 번 가니 적응되었는지 이질감이 사라졌다. 확실히 접촉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카페는 잘되어야 한다. 그래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런 곳은 서로를 가른 벽이 허구라는 것을, 그러니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20250521_151132.jpg <카페 오놀 간판>

대포포구는 생각보다 작았다. ‘카페 오놀’ 전에 있던 간세가 설명한 대포포구는 이랬다.


대포는 예부터 ‘큰개(포구)’로 불리며, 해양 교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0250521_151256.jpg <대포포구>

요즘도 이런 중요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포구를 지난 길은 도로를 따라 얕은 언덕으로 올랐고, 오르자마자 바로 숲길로 빠졌다. 조금 걸으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주차장 앞뒤로 있던 조각상이었다. 너무 무섭게 생겼다. 마치 절에서 볼 수 있는 금강역사를 보는 것 같았다. 불교하고 관련 있는 곳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니었다. 카페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이었고, 알고 보니 카페, 수영장, 횟집 등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누바타운이었다. 금강역사를 닮은 조각상 때문에 이곳이 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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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바타운과 금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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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범섬, 강정항 그리고 바다에는 보트와 요트가 보인다>

다시 숲길이었고, 곧이어 길은 도로를 만났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멀리 바다 풍경이 보였다. 풍경의 끝에 섬 하나가 보였다. 맵을 보니 어제 안개로 인해 보지 못한 범섬인 것 같았다. 그리고 섬 앞으로 길게 바다로 나온 것이 강정항 같았다. 가까운 바다에는 보트가 지나고 있었다. 지나온 대포포구에 있는 상점 간판에서 ‘요트’와 ‘제트’라는 단어를 본 것이 기억났다. 그 제트와 요트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길은 중문단지 축구장 뒤편을 지나 대포 연대(경로를 벗어나 가봤다)를 지나 잘 다듬어진 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중문대포주상절리대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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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포연대>
20250521_152843.jpg <중문대포주상절리대를 향하고 있었다>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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