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코스 (대평포구 → 화순금모래해수욕장, 11.8km) 1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갈 때까지 하늘은 희미해지고 있는 빛을 놓지 않았다. 짐을 대충 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 하늘은 드디어 빛을 놓았다. 하늘이 놓은 빛은 작은 전구에서 다시 빛나 어두운 골목을 밝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에서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고 어둠에 잠긴 동네를 한번 돌았다. 대평리를 알리는 표지석의 서체가 독특했다. 전서 같았다. 글자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大는 사람 형상이어서 어디를 향해 걸어가 결국엔 표지석을 벗어날 것 같았다. 빈 주차장에서 언덕으로 오른 집들이 밝힌 불빛이 보였다. 비가 하늘의 오염물을 씻어버렸는지 밤인데도 어두운 하늘에 파랑이 짙게 배어 나왔다. 새벽녘에 차가운 대기로 인해 위로 올라가지 못해 낮게 수평으로 깔리는 연기처럼 능선 위엔 하얀 구름이 능선을 따라 퍼지고 있었다.
순간, 마그리트의‘빛의 제국’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낮의 하늘과 어두운 밤의 지상. 결코 맞닿을 수 없는 낮과 밤이 그림에서 만났다. 그래서 묘한 이질감이 드는 그림이었다. 마치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을 때처럼. 이런 기법을‘추방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페이즈망’이라 한다. 일상적인 관계에 있는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초현실주의 기법이다. 이를 통해 합리적인 사고의 방을 지나 초현실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방문을 열 수 있다고 한다. 아마 내가 느낀 이질감이 초현실 세계로 들어가는 문일지 모른다. 이 이질감 또는 ‘추방하는 것’이라는 ‘데페이즈망’을 소설로 이야기한 것이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다. 21년을 한국에서 고정간첩으로 지낸 주인공이 갑작스레 복귀 명령을 받고 보낸 하루를 다뤘다. 21년을 북에서 살았고, 21년을 남한에서 산 주인공은 북한에서 경험한 삶으로 인해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남한에서 산 21년의 경험이 북으로 복귀해도 같은 이질감을 느낄 것이 분명히 보였다. 주인공에게는 결코 닿으면 안 되는 남과 북이 동시에 맞닿아있다. 주인공 자체가 ‘데페이즈망’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제목을 ‘빛의 제국’으로 한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낼 아침 간단히 먹을 것과 신문 한 장을 샀다. 오늘 입은 옷을 그대로 두면 냄새가 심할 것 같아서, 샤워한 후 간단히 빨았다. 트레킹화와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방바닥이 전기 패널이라 전원을 켰는데, 아주 약하게 설정되어 있어 낼 아침까지 마를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바닥에 옷가지를 놓고 바닥이 다 차면 옷걸이에 걸어서 널었다. 그 밑에 신문지를 깔아 떨어지는 물방울 받았다. 트레킹화에는 신문지를 가득 넣어 물기를 흡수하게 했다. 방 안이 어지러웠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하루 일을 정리하고 바로 잤다.
6시 30분에 일어났다. 신지로이드 한 알을 먹고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그동안 나의 발, 무릎, 다리를 대신한 트레킹화, 보호대, 스틱 그리고 여러 기상 조건에서 머리를 보호해 준 모자를 가지런히 모아 사진 한 컷 찍었다. 골목으로 나갔다. 사물의 색들에서 어제의 어둠을 볼 수가 없었다. 사물이 그러하니 공간도 윤이 났다. 골목 끝에 집을 개조한 카페가 있었다. 나무 간판이 큰 창문에 무심히 세워져 있다. ‘카페 두가시’였다. ‘두가시’는 ‘부부’를 일컫는 제주어였다. 분명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일 것이다. 창문을 통해 안을 보려 했으나 난반사가 심해 볼 수 없었다. 어제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연상시켰던 주차장으로 갔다. 낮과 밤이 닿았던 곳은 뿌옜다. 더 나아갔다. 대평리 표지석에서 저녁을 먹었던, 동쪽을 보니 도로의 끝으로 갈수록 점점 뿌예지고 있었다. 해가 있을 자리에 햇무리가 희붐했다. 햇빛이 대기 속 수증기에 반사되어 생기는 햇무리를 보니 물러가고 있는 안개라고 생각했다. 반대 방향의 하늘은 푸르렀고 하얀 붓질 같은 구름이 칠해져 있었다. 햇무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천의 다리에서 보니 밤새 몰려왔던 안개가 물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대평리 표지석 부근의 서쪽 도로에, 그리고 표지석에서 본 북쪽 오름으로 향한 도로가 어느새 뿌옜다. 안개가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날씨가 어떨지 예측할 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다 마르지 않은 옷가지를 잘 정리해서 배낭에 넣었다. 빵을 들고 공용공간으로 갔다. 빵과 함께 마련된 토스트와 감귤주스로 아침을 하며 오늘 걸을 9코스를 대충 흩었다. 거리는 11.8km이고 3~4시간 소요된다. 최소 오후 2시 전에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4시 20분 비행기이기 때문에 제주 공항에는 3시까지 도착하고 싶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은 여유로웠으면 했다. 트레킹화에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신문지를 뺐다. 다행히 트레킹화에는 물기가 없었다.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하나 더 챙겨 온 깔창을 끼우고 신었다. 하룻밤을 재워준 예쁘장한 ‘어락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오전 9시였다.
어제 멈춘 해녀 상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갔다. 신기하게 그새 안개는 물러갔다. 마을 길에는 어제 없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날이 좋을 것 같았다. 어제 들어온 길과 다른 길로 나갔다. 이제는 정겨운 집담이 사라지고 밭길이었다. 길의 양옆으로 보리가 누렇게 익은 밭이 길을 유도했다. 누런색이지만 왠지 좋았다. 5월이라 초록의 색 속에서 보는 다른 색이라 좋았던 것 같다. 길이 해안가에 이르니 하얀 파도들이 겹겹이 밀려왔다. 어제 기계적으로 보였던 파도에서 살아있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파도 넘어 배들이 잔잔히 떠 있다. 안개 때문인지 수평선은 하늘과 구분되지 않았지만, 어제의 잿빛 구름이 수평선을 삼킨 것과는 달랐다. 하늘이 맑았기 때문에 수평선은 머지않아 제 모습으로 하늘과 바다를 그을 것이다.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어제 무척 무거웠던 나도 가벼워졌다. 어제 보았던 박수기정도 다르게 보였다. 어제는 무채색이었다. 명암만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그래서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이었으나 이제는 본래의 색을 찾았다. 조개껍데기의 나전칠기 같은 거친 기암절벽이었다. 오랜 시간으로 인해 윤기는 사라져 탁해졌지만, 그 탁함으로 인해 오히려 풍파를 견뎌낸 강건함과 연륜이 느껴져 왔다. 초록의 나무들이 그 꿋꿋함을 보드랍게 둘렸다. 박수기정이었다. 박수기정 뒤로 산방산이 조금 엷게 보였다.
드디어 해녀 상에 왔다. 자세히 보니, 어제는 어두워서 안 보였던 해녀의 가슴 안에 물고기 한 마리가 아래로 헤엄치고 있었다. 해녀는 바다였다. 그러면서 사람이었다. 바다이면서 사람이라는 이중성을 철망으로 표현했다. 사람의 형태로 조형하면서 재료를 철망으로 하여 배경의 바다가 해녀의 몸속으로 밀려와 물고기가 헤엄치게 할 수 있었다. 철망 자체가 형태를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닫혀 있지만, 안과 밖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열려있다. 뭍의 사람이면서 바다가 삶의 터전인 해녀의 정체성을 철망이 지니 이중성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가 오늘의 시작이다. 카페 입구를 가리키는 푯말이 보였다. 바다를 보며 걷다 카페를 보지 못했다. 뒤돌아보니 돌담 안에 넓은 카페가 있었다. 빛이라는 의미의 ‘카페 루시아(Lucia)였다. 그 아래는 버터, 달걀, 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검은 돌담 빵을 파는 카페가 있었다. 제주의 현무암을 형상화한 빵이었다. 순간 구매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지나쳤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빵인데 살걸.
돌담 빵, 맞은편엔 공연에 필요한 구조물이 있었다. 그냥 지나쳤지만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매년 ‘난드르 올레좀녀 해상공연’이 펼쳐졌다. 2009년부터 시작한 공연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해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열고 있었다. 2025년에는 7월 18일부터 9월 27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공연이 열렸고 22차례 했다고 한다. 지날 때는 별거 아니겠거니 했던 것이 나름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곳이 대평포구였다. 대평포구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다. 예전의 대평포구는 ‘당포, 당캐’로도 불렸다. 당나라와 원나라에 말과 소를 상납하는 세공선과 교역선이 내왕해서 유래한 이름이었다. 공연장을 지나니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하얀 건물에 파란 지붕을 한 ‘나폴리 피자’가 보였다. 위쪽에 있던 ‘카페 루시아’의 루시아에는 ‘빛’뿐만 아니라 ‘성녀 루시아(Lucia)’라는 의미도 있는데, 우연이겠지만 성녀 루시아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이다. 루시아와 나폴리가 이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근거리에 서로 문을 연 것일까? 또한 나폴리의 원래 이름은 네아폴리스(Neapolis)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주하여 세운 독립적인 정착지였다. 고대 그리스를 떠나 이주하는 그리스인을 생각하면 올레길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폴리 피자를 지나 포구에 접근하니 갈림길에 올레 화살표와 함께 ‘대평리’ 마을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다. 대평리의 예전 이름은 ‘난드르’였다. ‘난드르’는 평평하게 길게 뻗은(난) 들(드르)을 의미했고, 대평리(大坪里)는 난드르의 한자 표기이었다. 어제오늘 걸으며 곳곳에서 ‘난드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검색을 미뤘는데 이렇게 알게 되었다. 우연히 뒤돌아보다 하얀 건물 옥상에 서 있는 백마 조형물이 보였다. 이곳이 예전에 원나라에 보내기 위해 말을 실었던 포구라서 저런 조형물을 설치했을까?
8코스 종착점이고 9코스 시작점인 간세에서 스탬프를 찍고 ‘박수기정’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았다. ‘박수기정’은 ‘바가지로 마실 샘물’인 ‘박수’와 ‘솟은 절벽’의 ‘기정’의 합성어였다. 박수기정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용왕의 아들이 이 마을의 스승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3년의 배움을 다 마치자 스승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스승은 공부에 방해되는 서당 근처의 냇물 소리를 없애달라고 했고, 그는 방음벽 같은 박수기정을 설치하고 동쪽으론 군산을 만들어 주고 떠났다고 한다. 이후로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대평리를 ‘용왕난드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포구가 끝나자 해안을 막은 돌담길이 이어졌다. 여기서 박수기정을 봤지만, 해녀 상에서 봤을 때의 모습은 아니었다. 너무 측면이라 본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르막길이었고 옆으로 텨진 길이 있어 가봤다. 박수기정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정면에서 봤을 땐 펼쳐져 있는 정적인 느낌이었는데, 좀 더 가까운 측면에서 보니 운동감이 느껴졌다. 박수기정은 바다로 달려가다 급히 멈춘 느낌이고, 반면 바다는 큰 원을 그리며 욕심내지 않고 서서히 들어오려 하는 것 같았다. 각도에 따라 사물은 확실히 다르게 보였다.
나무와 수풀로 이루어진 검은 터널 앞에 섰다. 예전에 제주 서부 중산간 지역에서 키우던 말들을 대평포구에서 원나라로 싣고 가기 위해 말들이 다니던 길인 ‘몰질’ 입구였다.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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