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코스 (대평포구 → 화순금모래해수욕장, 11.8km) 3
하천 하나가 길게 흐르고 있다. 한라산 서쪽 삼형제오름 고산습원에서 발원하여 돌오름, 빈네오름, 병악, 군산을 거쳐 월라봉 서쪽 하구에 이른다. 총 22.5km에 이르는 하천은 건천인 제주의 다른 하천과는 달리 항상 물이 흐른다. 이로 인해 이곳은 논농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하천은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녹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 상록수와 솔잎난 등의 희귀 난대성 양치식물을 품고 있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3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창고천이었다.
9코스에서 대평포구에서 군산오름까지는 산길이었고, 군산오름에서 내려온 길은 창고천이 바다로 빠져나갈 때까지 천변길이었다. 군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만나는 양재교에 천변길은 시작된다. 양재교에서 창고천을 봤다. 그렇게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계곡 느낌이 물씬 났다. 바닥의 암석과 나무와 식물로 덮인 초록의, 그렇게 높지 않은 절벽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니어처 같은 계곡 같기도 했다.
양재교를 건너 하천 변을 따른 도로인 감천로를 걸었다. 양재교라는 이름의 근원인 ‘양재소’ 안내판이 보였다. ‘재산을 모으게 해 준다’라는 의미의 양재소(養財沼)를 보기 위해 나무 데크를 따라 내려갔다. 양재소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데크에서 무리해서 하천으로 더 내려가려 했다. 두 번째 발이 바위에 닿았을 때 뒤로 미끄러졌다. 그곳에 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이 충격을 완화해주어서 머리가 바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있었다. 몸이 밑으로 주르르 내려갔다. 하천에 빠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아무것이나 잡았다. 풀이었다. 미끄럼이 멈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잠시 파란 하늘을 보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일어나니 손바닥이 아팠다. 필사적으로 잡았던 풀에 가시가 있어 상처가 났다. 준비해 간 반창고를 붙였다. 청바지는 초록 풀물이 들어 흔적을 남겼다. 양재소를 봤다. 작은 연못 같았다. 이곳의 물을 퍼내 하류 2㎞에 있는 논에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지었고, 이곳에 무태뱀장어, 참게, 방둥어, 새우 등이 서식한다고 한다. 초록 물빛을 내는 주변의 나무들 중에서 수백 년 수령의 육박나무의 뿌리가 절벽 틈으로 뻗어 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다.
조심스럽게 올라와 다시 걸었다. 구불구불 휜 나뭇가지가 만들어낸 그늘을 지나자, 그늘 한 점 없는 공간이 나왔다. 복원한 상록수림대로 자생식물 복원구간이었다. 나무 데크를 따라 내려갔다. 모르겠다. 올라와 다시 봤다. 같은 종의 식물이 군락을 이루어 구분된 풍경이 인공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찢겨 내용을 알 수 없는 ‘도고샘’이라는 안내판 옆에서 길은 도로에서 벗어나 하천 변의 나무 데크로 들어갔다. 창고천을 볼 수 있게 만든 나무 데크는 물길을 따라갔다. 그러나 나뭇가지들이 시야를 가려 창고천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데크 길에 작은 안내판이 있었다. ‘추사 유배길 하천’이라는 제목 아래에 경관이 수려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다량의 생수가 솟는 ‘도고샘’과 고려 때 바다에서 들어오는 모든 이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를 남반이라고 했고 조선에는 이를 담당하는 액정서 소속 관료가 상주했다는 ‘남반내’에 대한 설명만 있고, 추사 김정희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검색해 보니 근처 대정읍으로 귀향을 온 추사는 제자들과 함께 경치가 빼어난 안덕계곡(창고천을 안덕계곡으로 부른다)에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추사 유배길 하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았다.
계곡으로 빠졌던 길은 다시 도로로 올라왔다. 나무 데크가 끝날 즈음 반원으로 들어간 공간이 나왔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과 평평한 암반 바닥에서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멋스러운 운치를 자아내며 계곡 양쪽 기슭에는 상록수림대가 형성된’ 창고천 생태공원 안내판 옆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올레길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내려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긴 의자에 앉아있던 60대 아주머니께서 내려가 보라고 권했다. 나무 데크의 끝에 도달했을 때 이곳을 왜 ‘안덕계곡’으로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의 한가운데 외돌개 같은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 바위에는 어떤 전설이 숨어있을 것 같은 위엄이 있었다. 또한 바위와 주변의 계곡으로 인해 계곡은 흐름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절벽에서 계곡으로 뻗은 울창한 나뭇가지들로 인해 빛이 계곡으로 은은히 스며들며 공간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이 공간은 현재가 아니라 고대의 어느 시간 때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느낀 단어는 ‘아늑’이었다. ‘안덕安德’이라는 이름은 ‘치안치덕治安治德’의 줄임말로, ‘안덕계곡’은 태초에 안개가 끼고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태산이 솟아날 때 암벽 사이에 물이 흐르며 평안하고 덕이 쌓이(치안치덕治安治德)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아늑함을 가득 느꼈는지 모른다.
이번 올레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인 이곳에 내려가길 권했던 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올라왔을 때 그분은 벌써 떠나고 없었다. 아쉬움을 품고 다시 걸었다. 아스팔트 길은 도로를 만나 더 큰 도로로 나아갔다. 안덕계곡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릴 때 맞은편에 어깨가 구부정한 노인이 나에게 손짓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신호가 바뀌고 내가 건널 때 그분은 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거의 80세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노인 캐릭터를 닮았다. 군산오름 가는 길을 물었다. 나름 친절히 가르쳐드렸는데 거기까지 오르고 내려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노인분과 헤어지고 도로가 아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갔다. 길이 계곡에 닿았을 때 또 길을 벗어나 반대 방향인 계곡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 길은 조금 전에 봤던 신비한 공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와도 되었다. 그곳에서 있을 때 이 길을 따라 올라온 부부를 봤는데, 그분들도 이 길을 따라 올라온 것이었다. 혹시 다음에 올 수 있다면 이곳에서 추사처럼 천천히 그 아늑함을 느끼고 싶었다. 되돌아가 다시 올레길을 걸었다.
길은 마을로 올라왔다. 하얀 메밀꽃이 반겨주었다. 마을 길은 밭길로 변했고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여기서 혼자 걷고 있는 여성 순례자를 만났다. 그분은 나를 보자 이 길이 9코스인지 물었다. 지도를 보며 맞다고 알려주었다. 먼저 갔다. 어느 귤 농장에서 상품성이 없는 귤들을 바구니에 담아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벌써 많이들 이용했는지 귤껍질이 쌓여있었다. 사각형의 정자에서 잠시 쉬며 귤 한 개를 까먹었다. 그때 여성 순례자가 지나갔다. 나는 더 머물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놓고 떠났다. 나무 데크가 끝날 때 창고천을 건너는 다리에서 여성분을 앞질렀다. 길은 월라봉 둘레를 그리고 창고천을 따라 이어졌다. 거친 숲길이었고 때로 귤밭을 지나고 있었고 물기가 배어 나온 좁고 작은 돌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긴 능선을 이룬 야트막한 지형이라는 의미의 ‘진모르 동산’에 이르러서야 하늘이 열린 평지에 가까운 길이기도 했다.
‘진모르 동산’을 내려온 길은 다리를 건너 바다로 향한 창고천을 따라 내려갔다. 길 건너 물이 고인 작은 동굴들이 있는 절벽의 조각난 절리들을 보며 화산과 관련된 제주 지질의 작은 표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걸으니 월라봉 끝자락에 초록의 나뭇가지들이 창고천 수면에 초록을 풀어놓으며 어른거렸다. 밭이 있는 쪽엔 멀리 산방산이 솟아있었다. 길이 도로를 만나 오른쪽으로 꺾기 전 갈라진 다른 길은 창고천 바닥을 내려가 건너편으로 이어졌다. 3코스에 있었던 배고픈 다리가 떠올랐다. 고픈 배처럼 밑으로 푹 꺼진 모양이라고 붙여진 이름의 다리였다. 너무도 닮았다.
도로에 들어서니 ‘제주 화순 선사유적 공원’이 보였다. 유리로 된 피라미드 조형물 아래 유적들이 보였다. 청동기 시대가 끝날 무렵부터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고 점점 마을 커지며 신분 계급이 생겼다고 한다. 이에 대한 유물과 유적이 이곳에서 발굴된 것이다. 여러 테마 별로 조성되어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길은 큰 공원으로 들어갔다. 남제주 나누리 파크였다. 알고 보니 원래 이곳이 고대 화순리 마을 유적지였다. 화력발전소 건설 중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어, 발전소에 편입된 부분의 유물과 유적은 조성된 ‘제주 화순 선사유적 공원’으로 옮긴 것이었다. 편입되지 않은 부분은 나누리 파크로 조성되었다. 조금은 황량한 공원을 지난 길은 발전소 옆의 좁은 길을 지나 해안 도로를 만났다. 바다는 자연의 바다처럼 보이지 않았다. 뭔가 매우 어수선해 보였다. 발전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업시설은 존재만으로도 그곳에 인공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게 한다. 그래서인지 길에 있던 해녀커피라는 하얀 커피가게는 외로워 보였다. 뒤에 있는 폐공장 같은 건물이 있어 더 그랬다.
걸으니 파란 건물이 보였다.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드디어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이번 올레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오후 1시 30분이었다. 잠시 쉬었다 해수욕장도 보지 않고 그냥 큰길로 나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피곤이 급히 밀려왔다.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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