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레는 4일, 일곱 코스에 총 103.1 km 거리였다. 2024년 가을, 3일 동안 걸었던 거리와 비슷했지만, 그때보다는 피곤했었나 보다. 9코스 종점에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졸았다. 셋째 날 7-1코스와 8코스, 총 35.3km를 비 맞고 걸으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의 피로는 여전한 상태였고 여기에 이번 올레를 끝냈다는 안도가 더해져 택시 안에서 무너졌다.
짧은 4일이었음에도 날씨는 매일 달랐다. 첫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맑았고 둘째 날은 그 공간을 하얀 운무가 가득 채웠다. 셋째 날은 운무가 비로 온종일 내렸고, 마지막 날은 비가 구름으로 파란 하늘에 하얗게 풀어져 그림을 그렸다. 그 속에서 걸으며 변화무쌍한 날씨가 길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 느낌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특히 비 오는 날의 나는 짜증과 예민함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시각으로 사물들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 느낌과 생각을 글에 다 담지는 않았다. 지금은 나를 알아가는 순간들로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올레를 걷다 보면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쉽게 추월당하곤 했다. 안내문을 읽기 위해 걸음을 멈추거나 봐야 할 다른 곳을 보기 위해 올레길을 벗어나면서 시간이 길어졌다. 길 위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숙소는 해 질 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항상 올레길을 떠날 때 상상한다. 멋진 카페에서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편의점 커피였고, 편의점에서 제공하는 파라솔에서조차 마시지 못하고 테이크아웃해서 걸으며 마셨다. 점심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패스트푸드, 중국집 등으로 서울에서도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시간을 갖고 여유를 즐기는 것은 사치였다. 그런 사치를 부리다 보면 해지고 어두워져서야 숙소에 들어갈 것이고 그것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 악몽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커피와 점심의 여유를 삭제해야 했다. 이렇게 아낀 시간을 잦은 멈춤과 경로 이탈에 부여했다.
특히 이번 올레길에서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간판들이었다. 더 정확히는 간판에 적힌 상호였다. 많은 경우 상호는 표준어였다. 그럼에도 제주어로 된 상호도 적잖이 보였다. 유추조차 되지 않은 단어이기에 검색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이 재미있었다. 마치 물건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여러 군데 감추어 놓고, 그 종이를 찾은 사람에게 해당 물건을 상품으로 주는 보물찾기 게임처럼 찾은 제주어 단어들이 나의 것이 되면서 작은 희열들이 피었다. 상호가 제주어가 아니면 오히려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면 알아간 단어의 수만큼 제주에 대한 관심은 깊어갔다. 올레를 완주하면 한라산 둘레길도 걸으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마 중산간 지역일 것이고 주로 해안을 걷는 올레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러면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제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여정이다.
첫 글에서 수잔 손택의 글을 언급했다. 그렇다. 여행에 목적지는 없다. 아니 목적지는 있지만 그건 순간이고, 그 목적지는 결국 여정의 한 점이 될 뿐이다. 매일매일 목적지는 있었다. 코스의 종점이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그 목적지는 시작점이 되어 여정의 한 매듭으로 남았다. 또한 이번 4일간의 올레의 최종 목적지는 9코스 종점이었지만 그것은 다음 올레길에서 시작점이 될 뿐이다. 올레를 완주한다고 해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른 여행을 추동하는 시작이 된다. 거의 8개월 걸쳐 이 글을 쓰고 있다. 글로 표현된 올레의 여정도 걸을 때와 비슷했다. 게을러지고도 싶었고, 아예 멈추려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물론 즐겁고 가슴이 뛴 순간이 더 많았지만. 이런 감정을 쓰는 내내 느끼며 나는 여전히 올레의 여정에 있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나는 항상 길 위에 있었고, 길 위에 있으리라는 것을.
오랜 기간 제 글을 읽어주신 작가님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026. 02. 10)
● 4코스 와펜 : 표선해비치해변
표선해수욕장은 매우 가는 모래의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사빈이다. 연안류에 의해 패각류 파편들이 해안까지 운반, 퇴적되어 형성되었다. 동쪽 해안선에는 높이 2~3m의 사구층과 사구층 속에 패총이 포함되어 있다. 밀물이 되면 사빈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다. 길이는 다소 짧지만, 폭이 313m로 도내에서 가장 폭이 넓고 완만한 경사를 가진다. 표선해수욕장의 넓은 모래톱은 썰물 시엔 둥근 백사장처럼, 밀물 시엔 수심이 낮은 에메랄드빛 원형 호수처럼 보여 경관이 아름답다. 그뿐만 아니라 낮은 수심 때문에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은 해수장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또한 해가 비친다는 의미에서 '표선해비치해수욕장'이라 불리기도 하고, 제주 4.3 사건 당시 백사장에서 집단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 사빈(沙濱) : 하천에서 운반되거나 파도에 의한 해안 침식으로 인해 생긴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모래 해안을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 5코스 와펜 : 동백꽃
5코스의 와펜이 동백꽃인 이유는 위미 동백나무 군락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에는 다음과 같이 <위미 동백나무 군락>을 설명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붉은색으로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은 현맹춘(1858∼1933) 할머니의 집념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할머니의 얼이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할머니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로 어렵게 황무지 땅을 사들였고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하여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 뿌려 황무지를 가꾸었다. 거친 황무지는 오늘날에 이르러 기름진 땅으로 바뀌었고 동백나무는 울창한 숲은 이루었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은 사철 푸른 동백과 철 따라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 그리고 가을이면 풍요로움이 가득한 감귤원과 함께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 6코스 와펜 : 섶섬
섶섬은 새섬에서 서귀포를 등지고 왼쪽에 섶섬(숲섬)은 0.1㎢이며, 동서 길이가 630m, 남북 길이 380m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섬 주위에는 50m 높이의 주상 절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섬 내에 180종의 난대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중 파초일엽은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제주도 삼도 파초일엽 자생지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은 19.54㎢이다. 특히 섶섬은 일출과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대한민국 구석구석/한국관광공사>
6코스를 걸을 때 바다에 떠다닌 운무 때문에 섶섬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숲에 덮여있어서 숲섬으로 불리기도 하고 한자로는 삼도(森島-나무가 빽빽한 섬)라고 쓴다.
● 7코스 와펜 : 강정천
강정천은 물이 많아 이름이 물 강(江) 물 정(汀)인 서귀포시 최남단 마을 강정마을 동쪽에 위치한 총길이 16km의 용천수 하천이다. 한라산의 천연 암반수가 사계절 내내 흐르고 1 급수 어종인 은어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무리 지어 목격되기도 한다. 강정교 부근은 수심이 얕아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물놀이 즐기기에 맞춤하며 가까이 제주 최대 규모의 사찰인 약천사를 비롯해 썰물 때만 건널 수 있는 서건도, 올레 7코스의 범섬까지 5분 거리에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더위를 날려보는 것도 제주에서 바다와는 또 다른 이색 체험이 될 것이다. <출처 : 한민국 구석구석/한국관광공사>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강정천을 올레로는 갈 수가 없다. 법환 이후의 7코스는 2025년 4월 4일부터 강정에서 월평까지 해안도로를 건설로 인해 폐쇄되었다. 공사 기간은 2년으로, 2027년 4월까지 이 구간을 걸을 수 없다고 한다. 아쉽다.
● 7-1코스 와펜 : 감귤
감귤류는 인도의 앗삼 지역에서 탄생하여 중국을 거쳐 새로운 품종을 탄생시키며 전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한시대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으며, 온주밀감은 1911년에 일본에서 도입되어 1960년대부터 산업적으로 재배 면적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주 감귤의 역사는 많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사에 의하면 백제 문무왕 2년(서기476년) 4월 ‘탐라에서 방물을 헌상’, 고려 태조 천수 8년 (서기 925년) 겨울 11월에 ‘탐라에서 방물을 바치다’를 시작으로 ‘방물을 바쳤다’ ‘토물을 바쳤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감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사 세가 권7의 기록에 의하면 문종 6년(1052년) 3월에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일백포로 개정 결정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제주도의 감귤이 세공으로 바쳐졌음을 알 수 있다.
감귤에 대해 조선시대에는 태조원년(1392년)부터 제주도 귤유의 공물에 대한 기록이 계속되고 있으며, 세종 8년(1426년)에는 호조의 게시로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에도 유자와 감자를 각 관서에 심게 하였다고 한다. 세조실록 2권에는 ‘감귤은 종묘에 제사 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감귤의 종류간의 우열(금귤, 유감, 동정귤이 상이고 감자와 청귤이 다음이고 유자와 산귤(진귤)이 또 그 다음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감귤은 약용으로, 생과용으로 그리고 제사용으로 매우 중요시 되어 역대 왕실에서는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과실세를 제정하는 동시에 관영 과원의 제도를 마련하였다고 태조실록 ‘도감상서’에 기록되어 있다. 효종 4년 1653년 탐라지 과원총설에 따르면 제주 3읍의 관과원은 36개소, 12종, 3,600여주였으며 이때 공납과 진상을 위한 총 물량은 생과 8종류 86,053 개여와 약재가 116근 10량이었으나 관과원의 소산만으로는 수량을 채우기 어렵고 해난사고 등으로 수송에 애로가 있어 1704년 이형상 제주목사 당시에는 관과원을 42개소로 증가하였다. 이 당시의 감귤 재배는 관리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공납량의 연차적인 증가와 지방관리들의 횡포까지 가중되어 민폐가 많았던 관계로 이조 말기에는 점차 재배가 감소되었으며, 고종 31년(1893년)에는 진상제도가 없어졌다. 재래종을 제외한 제주에서의 감귤 재배는 1911년 프랑스 출신 엄탁가(Esmile J. Taque) 신부가 일본에서 온주밀감 15그루를 들여와 심은 것이 현재 제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온주밀감의 효시이다. 이후 1950년 이후 대학나무로 불릴 정도로 제주도에서는 가장 소득이 높은 작물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감귤 재배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부터는 재배 농가가 늘어나면서 1964년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인 정부지원 사업으로 급속히 성장되어 현재 제1의 농업소득 작물로 자리하고 있다. <출처 : 제주감귤연합회 / 역사와 유래>
● 8코스 와펜 : 주상절리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를 말한다.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가 위치한 해안의 지명은 지삿개이며 주상절리대는 지삿개바위라고 불렀다. 지삿개해안은 본래 중문 지역에 속했으나 중문관광단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가기 위해 대포마을을 통과하여 너백이 농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포동 주상절리라고 많이 불렀다. 그러나 주상절리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때 중문동과 대포동의 두 지명을 병기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명칭이 되었다.
제주도에는 지삿개해안 뿐만 아니라 한라산의 백록담 분화구 남벽과 영실 병풍바위, 갯깍 주상절리대, 범섬 해식애, 산방산 용암돔 암벽 등 여러 곳에서 주상절리 지형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상절리의 정교함과 아름다움 면에서는 신들의 궁전으로 비유되는 중문 ·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를 따라가기 어렵다.
고온의 액상 용암이 식어 굳을 때는 부피가 줄어들면서 마치 말라버린 논바닥이 갈라진 것처럼 암석에 틈이 생긴다. 냉각 중인 용암 표면에는 수축의 중심점들이 생기는데, 이들 중심점이 고르게 분포하면 용암은 6각형의 돌기둥으로 갈라진다. 용암을 돌기둥으로 갈라놓은 수직 방향의 틈을 주상절리(columnar joint)라고 한다. 용암의 수축현상은 온도가 높은 현무암질 용암에서 현저하게 발생하므로 주상절리도 현무암에서 가장 잘 발달한다.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14만∼25만 년 전 사이에 녹하지악에서 분출한 대포동 조면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용암류 하부와 달리 두꺼운 클링커(clinker)로 덮여 서서히 식은 용암류 상부에는 주상절리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지삿개 바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에는 해안까지 내려가 주상절리를 볼 수 있었지만, 탐방객이 급증하면서 출입을 통제하고 해식애 위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목도와 전망데크를 설치하였다. 지삿개 해안은 학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수려하여 2005년 1월 6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2006년 12월에는 탐방객 증가로 인한 훼손을 우려하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 9코스 와펜 : 박수기정
대평리에 위치한 박수기정은 중문의 주상절리나 애월 해안도로의 해안 절벽 같은 멋진 풍경을 지닌 곳이다.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져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주 올레 9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올레길은 박수기정의 윗길로 오르게 되어 있다. 소나무가 무성한 산길을 오르면 소녀 등대가 서 있는 한적한 대평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박수기정 위쪽 평야 지대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지는 것도 볼 수 있다. 박수기정의 절벽을 한눈에 보려면 박수기정 위보다는 대평포구 근처에서 보는 것이 좋으며, 포구 아래의 자갈 해안에서 보면 병풍같이 쭉 펼쳐진 박수기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 박수기정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카페들이 있으므로, 여유 있게 앉아 박수기정의 시원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박수기정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너머 주홍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천천히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웅장한 절경에 압도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제주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보고 싶다면, 저녁 시간 박수기정에 방문해 멋진 일몰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출처 : 비짓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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