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크래프팅의 개념과 실천 Ch.2 | EP.05
관계를 줄이거나 단절하지 않고,
업무 몰입에 방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재설계했을 때,
그는 비로소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성 또한 개선되었다.
Chapter 1. 일의 주도권은 구조에서 시작된다(3회)
Chapter 3. 일의 구조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라(5회)
청년 A는 이직을 다섯 번째 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연봉도 올랐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깨가 무겁고, 다음 날이 오는 게 두려웠다.
이직할 때마다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3개월이면 다시 피로감이 밀려왔다.
A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직장에서는 늘 관계가 중요했다.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팀장과 술 한잔 기울이며 팀워크를 다지고,
불편한 이야기를 감싸 안으며 ‘우리는 가족’이라는 문화에 적응해야 했다.
문제는, 그 관계가 일이 끝난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퇴근 후 단톡방에서 이어지는 피드백,
주말의 동료 모임, 비공식적인 소통에서 누락되면 생기는 미묘한 소외감.
A는 그 모든 관계를 일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결국 한계가 왔다.
“나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닌데,
일에 사람이 너무 많이 얽혀 있는 게 싫었어요.”
그의 고백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관계를 피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고립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은 일대로 몰입하고,
관계는 관계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경계 있는 구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그런 구조를 제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리적 안전감’을 이유로
모든 관계를 다 연결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문화가 강요됐다.
A는 말없이 거리를 두면 ‘팀에 비협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무조건 참여하지 않으면 조직 적응에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결국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그냥 구조가 나에게 안 맞는 거야.”
이 깨달음은 그의 일 방식 전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사람을 피하는 방식’이 아닌
일의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는 방식,
즉 관계 크래프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일 자체는 괜찮아요. 근데 사람이 너무 힘들어요.”
취업 1~3년 차 직장인들이 퇴사를 고민하며 꺼내는 말 중 가장 흔한 문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지적하는 건 상사의 괴롭힘도 아니고,
팀원의 배신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사람들’,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가
오히려 그들을 지치게 만든다고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회적 피로(Social Fatigue)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타인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감정, 에너지, 신경을 소모하는 상태를 뜻한다.
업무 그 자체보다도, 사람과의 ‘관계 관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때
우리는 피로감을 더 크게 느낀다.
즉,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일에 얽힌 관계가 과도하게 설계되어 있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많은 조직은 ‘심리적 안정감’을 강조한다.
불편함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편하게 어울리는 팀.
이 모든 것은 사실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개념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다.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명분 아래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 ‘좋은 동료’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불편한 지적은 포장해서 말해야 하고,
회식은 자율이라지만 빠지면 눈치가 보이고,
단톡방에서 이모티콘 하나 안 찍으면 ‘서운한 사람’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관계가 감정 노동이 된다.
그리고 그 감정 노동은, 몰입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팀 프로젝트에서 ‘일정 조율’보다 더 어려운 건 ‘기분 조율’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회의 내용보다도
“아까 그 말, 기분 나빴을까?”를 걱정하고,
보고서를 공유하면서 “혹시 불쾌하진 않았나”를 신경 써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개인의 민감함 때문이 아니라,
조직 구조 자체가 ‘일의 흐름’과 ‘관계의 흐름’을 분리하지 않고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협업’이란 이름으로 모든 구성원이 항상 친해야 하고,
‘소통’이란 이름으로 감정까지 나눠야 하는 분위기에서는
몰입은 점점 멀어진다.
일과 사람이 겹쳐지면, 피드백도 감정처럼 느껴지고,
의견 충돌은 감정싸움처럼 오해받는다.
“우리는 가족 같은 회사예요.”
이 말은 조직 소개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은 구조가 아니라 감정이다.
‘가족’이라는 말로 포장된 조직은,
감정의 경계를 흐리고,
직무와 역할보다 사람됨을 더 중요시하고,
결국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사람 좋은 사람’을 더 우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과 중심의 피드백은 어려워지고,
일 중심의 몰입은 불가능해진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좋은 동료가 되고 싶지만,
그 ‘좋음’의 기준이 일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면
누구도 자기 일에만 몰입할 수 없다.
이 단락의 핵심은 이렇다.
"사람을 피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감정을 침범하는 방식이 문제다."
관계 중심 조직은 사람을 배려하려 했지만,
오히려 ‘관계의 과잉 설계’가 몰입의 부재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관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할 수는 없을까?
“그냥 혼자 일하면 편하잖아요.”
이 말은 겉으로 보면 이기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협업의 구조가 잘 짜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불필요한 정서적 부담을 피하고 싶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A가 반복해서 느꼈던 ‘관계 피로’는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 설계’의 문제였던 셈이다.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 관계 크래프팅(Relational Crafting)이다.
이는 조직에서 맺는 관계의 방식, 범위, 깊이, 연결성을
자신이 일에 몰입하기 적절한 수준으로 재조정하는 실천 전략이다.
무조건 줄이거나 끊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더 강화하고, 어떤 연결은 효율적으로 전환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많은 조직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좋은 감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좋은 관계란,
기대가 명확하고, 피드백이 분명하며, 상호존중이 전제된 구조를 말한다.
관계를 감정에만 의존하면,
갈등은 곧 감정싸움이 되고,
소통의 부족은 인간적인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관계를 업무 단위로 구조화하면 다르다.
협업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소통의 채널을 정하고,
정보 공유의 타이밍과 범위를 정하면
불필요한 감정 노동을 줄이면서도
업무 중심의 몰입과 연결은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는 이전 직장에서
“다같이 회의하자”는 말이 제일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무엇을, 어떻게, 누가 결정할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같이 이야기하자’는 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였다.
그는 이후부터 의견 수렴 → 초안 작성 → 피드백 수렴 → 최종 확인의 구조로
팀 협업을 재설계했고,
이 방식은 감정을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의사결정 속도와 책임 분담을 크게 향상시켰다.
관계 크래프팅이란 관계를 줄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관계는 더 적극적으로 강화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과 모든 순간에 연결되어 있으려는 욕망이
조직에서 과잉 설계되었을 때 생기는 피로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협업보다 단독 실행에 더 몰입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빠른 피드백보다는 일정한 루틴 속에서 더 잘 성장한다.
그렇다면 협업의 강도를 줄이고,
피드백의 빈도를 재조정하고,
대면보다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할 수 있다.
관계 크래프팅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연결 구조’를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잡크래프팅의 핵심은 ‘의미 있는 일’을 ‘나답게’ 해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연결이 나의 일에 의미를 더해주는가?
어떤 협업이 나를 성장시키는가?
어떤 소통이 몰입을 방해하고 있는가?
관계 크래프팅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나는 누구와 가장 자주 소통하는가?
이 연결은 나의 성과와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지금의 협업 방식은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가, 빼앗는가?
내가 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지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몰입을 위한 연결의 전략적 구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관계는 선택될 수 있어야 하고,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A는 ‘사람을 피하고 싶다’는 감정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결국 관계를 재설계함으로써, 일에 다시 몰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가 택한 건 단절이 아니라, 경계와 설계였다.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방식을 바꿨습니다.”
청년 A는 이전 조직에서 매일 퇴근 후 진이 빠진 채 침대에 쓰러졌다.
그의 하루는 ‘일’보다 ‘사람’에 지쳐 있었다.
출근과 동시에 시작되는 커피 타임, 정리되지 않은 아침 회의,
누가 무슨 말 했는지에 따라 뒤바뀌는 업무 지시,
정해지지 않은 책임 속에 피곤하게 반복되는 ‘눈치’와 ‘기분’ 읽기.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품은 채
자신이 한 일조차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그는 퇴사했다.
그러나 A는 단순한 이직을 택하지 않았다.
“이번엔 구조를 바꿔서 일해보자.”
그는 ‘잡크래프팅’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관계 크래프팅’을 가장 먼저 적용하기로 결심했다.
A는 새로운 조직에 입사하자마자,
가장 먼저 팀 내 협업 구조를 점검했다.
모든 업무가 ‘전 팀원 회의 → 중간 점검 회의 → 결과 보고 회의’라는
고정된 루틴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이 구조는 연결을 강제하는 구조”라고 판단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실천 전략을 택했다.
회의 참석 전, 공유문서를 통한 의견 선기록 시스템을 제안했다.
→ 사람마다 발표보다 문서 정리에 더 익숙한 팀원이 많았기 때문.
중간 점검 회의는 필요한 팀원만 참여하도록 재구성했다.
→ 모든 협업이 전체 참여를 요구하지 않도록 ‘옵션 협업’ 구조 설계.
피드백 회의는 정서적 언급보다, 구조 중심 피드백 문항을 활용했다.
→ “이건 좀 별로야”가 아닌, “과업 흐름에서 어떤 단계가 어긋났는지”를 중심으로 피드백.
결과적으로 팀원들은 더 명확한 경계 안에서 일할 수 있었고,
A 자신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일 자체’에 몰입하는 데 성공했다.
A는 모든 인간관계를 줄이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신뢰하고 배우고 싶었던 동료와의 연결은 더 강화했다.
업무 전반에 대한 피드백을 가장 잘 주는 선임과는
격주 1:1 점심 미팅을 만들었다.
정서적으로 동료 간 지지가 필요한 순간을 위해
업무 외 대화는 비공식 슬랙 채널을 따로 운영했다.
팀원 중 외향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은 동료와는
브레인스토밍 전용 화상 미팅을 주기적으로 구성했다.
핵심은 모든 연결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 몰입을 높일 수 있는 연결만 설계해 유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계 설정’을 ‘차단’이나 ‘단절’로 오해한다.
그러나 A는 경계란 “서로의 몰입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구조”라고 생각했다.
그는 업무 시간 외 업무 요청에 대해
“슬랙에는 업무 시간 이후 알람을 꺼두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상태에 명시했고,
팀의 공통 캘린더에 자신의 집중 시간대를 공유했다.
처음에는 “좀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오히려 팀원들이 따라 하면서 서로의 일 몰입을 존중하는 문화로 확산되었다.
그의 실천은 처음엔 개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점점 팀원들도 그 전략에 참여하고,
조직 내부에서도 협업 구조의 개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슬랙 알림 자동 정리 시간대 도입
회의 사전 문서 작성 문화 정착
피드백 양식 구조화 및 정기적인 협업 회고 문화 확산
이 모든 변화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의 크래프팅 전략’이
‘조직의 구조를 바꾸는 문화로 확장된 과정'이었다.
A는 결국 말한다.
“일이 힘들었지만, 사실은 ‘관계 구조’가 힘들었던 거였어요.
사람은 싫지 않았어요.
그냥 방식이 잘못된 거였어요.”
그의 잡크래프팅은 그렇게
‘몰입을 위한 연결’을 설계하는 과정이었다.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가 피로했던 것이다.
A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관계를 줄이거나 단절하지 않고,
업무 몰입에 방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재설계했을 때,
그는 비로소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성 또한 개선되었다.
관계 크래프팅은 이처럼,
‘연결되되, 소진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모든 연결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연결을 선택한다.
모든 협업을 동등하게 맞추는 게 아니라, 각자의 몰입 스타일에 맞춘 구조를 설계한다.
소통을 줄이는 게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방식으로 정리한다.
이 과정은 개인의 노력에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팀과 조직의 문화와 구조까지 바꾸는 동력이 된다.
왜냐하면 몰입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A의 선택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구조 속에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가?”
“그 연결은 당신이 일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
“혹은, 방해가 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관계를 설계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지는 것,
그것이 잡크래프팅의 핵심 역량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