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디자이너가 겪는 문제를 다루는 스타트업은 없나요?
제겐 파괴왕 친구가 있습니다. 마치 주호민 작가의 제대한 부대가 없어지고 다니던 학과가 없어진 것처럼, 이 친구가 취업하려고 하는 업계마다 망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조선공학 공부를 마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시기에 과에서 1명이라도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 조선업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이 친구는 그나마 '조선'이라는 두 글자를 살려서 해운회사에 사무직으로 들어갔지만 바로 뛰쳐나와 스튜어드를 준비합니다. 몇 년간의 훈련과 수차례의 입사 지원 끝에 모 외항사의 최종 면접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발령 날짜를 기다리던 중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그 외항사의 한국 노선 신설 계획은 없던 일이 됐고 자연스럽게 제 친구의 스튜어드 합격도 없던 일이 됐습니다.
어느덧 파괴왕의 나이는 20대 후반이 됐습니다. 파괴왕은 이번에 발 들이는 업계마저 파괴돼선 안 된다는 일념 하에 절대 망하지 않을 산업과 직종을 찾았고, 웹퍼블리셔와 헤어디자이너를 두고 고민하다 헤어디자이너의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머리카락이 모두 없어지지 않는 한 미용 서비스업은 망하지 않을 테니까요.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정도 미용 일에 적응한 구 파괴왕 현 헤어디자이너 친구에게 지금 일은 재밌는지 물었습니다. 재밌다고 하더군요. 언제 미용실을 차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저는 얼마나 멀었는지 궁금해서 헤어디자이너의 성장 과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용 일을 시작하려면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에 인턴으로 취업해야 합니다. 인턴이 초급 디자이너로 입봉하려면 업계 관행에 따라 보통 2년에서 길게는 5년 동안 미용실에서 일을 하며 도제식 교육을 받고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원장님 및 선배 디자이너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초급 디자이너가 다음 단계로 성장하려면 고객을 많이 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고객은 신규 고객과 재방문 고객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부류가 유입되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헤어디자이너는 각기 다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의 결과는 매출로 드러납니다. 매출 월 1,000만 원, 2,000만 원과 같은 이정표를 차례로 지나치다 보면 내 미용실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고, 확신이 섰을 때 창업을 합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올라가면 좋겠지만 헤어디자이너는 성장 과정마다 필연적으로 문제를 겪습니다. 주된 이유는 헤어디자이너에게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크게 2가지 정보가 부족한데요.
먼저 헤어디자이너는 본인의 성장을 좌지우지하는 미용실의 역량을 모릅니다. 인턴의 경우 디자이너로 입봉하기까지 필요한 경험을 잘할 수 있는 미용실인지, 입봉한 디자이너의 경우 고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미용실인지에 대해 모르는 채로 일을 시작합니다.
미용실의 정확한 급여 조건도 모릅니다. 정착 지원금, 인센티브와 같이 가장 중요한 급여 조건을 채용공고에 명시하지 않거나, 채용공고의 조건과 실제 조건이 다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부가세 전가, 결제 수수료 전가, 소득세 전가도 만연하고, 관행으로 교육비, 미용재료비, 명찰 값, 명함 값, 무전기 값 등의 급여 지급 전 공제도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하는 헤어디자이너는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상대적 정보 강자가 약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생태계 안에서 가장 정보가 적은 미용 서비스의 소비자까지 그 비용이 전가됩니다. 지금 우리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비싼 이유는 인건비가 많이 올라서가 아니라 헤어디자이너에게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착 지원금 :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에게 지급하는 최소 보장 금액. 보통 입사 후 최초 3~6개월 정도 제공함
*인센티브 : '수익 배분 비율'을 뜻하는 미용 업계 용어
저는 구 파괴왕 현 헤어디자이너를 지켜보면서 헤어디자이너에게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인은 현재 본인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하는 업계를 바꾸거나 직무를 바꿀 수 있지만 헤어디자이너는 미용 일을 그만둬야 합니다. 이 점이 헤어디자이너 입장에서 정보가 없더라도 일단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안을 만들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헤어디자이너가 구직 단계에서 마주치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자 합니다. 헤어플래닛을 통해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손해가 대물림되기보다, 미용실과 헤어디자이너가 win-win 하여 함께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나아가서 미용실이 손님의 용모가 단정해지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미용사가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