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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20. 2018

이순(耳順)의 숨은 뜻

중년의 위기 극복과 개성화(individuation)


개저씨는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한 아저씨다. 중년의 위기는 나이가 들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후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중년의 위기란 결국 진정한 자기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융은 사람이 진정한 자기가 되는 것을 개성화(individuation)라 하였다. 개성화란 진정한 개성을 실현한다는 뜻으로 본래의 자기(selbst) The Self 가 되는 것을 말하며, 이런 이유에서 자기실현이라고도 한다. 아들러 역시 개성화(자기실현)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건강한 심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C. G. Jung

개성화라고 하면 자신을 옭아맨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철저히 개인의 욕구를 지향하는 것이라 오해할 수 있으나, 개성화는 개인주의 혹은 개인지상주의와는 다르다.


개성화는 우선 삶의 중심을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직함이나 직위 등 사회적 역할로부터 주어진 이름들은 진정한 자기라 하기 어렵다. 사회적 평가나 사회적 이상에만 맞추어 사는 이들은 자신의 본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거나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내가 속한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꿈을 찾는다고 가족을 저버리거나 직장에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진정한 자기실현(개성화)라고 할 수 없다.


개성화란, 내 삶의 이유와 집단의 가치를 구별하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의 필요성을 자기의 개성에 합치되는 범위에서 인정하며, 때로는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때로는 물러나 내면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개성화와 반대되는 현상은 사적 자아(private ego)에 대한 집착이다. 정신역동이론에서 자아(ego)는 원초적 욕구(id)와 내재화된 도덕 및 법(superego)을 중재하는 ‘나’다. 자아의 중재가 id쪽으로 치우친 것이 사적 자아라 할 수 있다.

자주 모셔서 죄송..

사적 자아의 특징은 매사에 자기중심적이고 고집과 편견에 가득 차 있으며 융통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관대성 획득에 실패한 중년의 전형으로, 곧 개저씨의 모습이다. 관대성 획득의 실패는 곧 개성화의 실패를 의미한다.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관대성을 획득하고 진정한 자기와 만나기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


첫째, 아저씨들은 자아를 덮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겨야 한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으로 개인이 집단의 필요나 사회적 역할을 위해 만들어낸 모습을 뜻한다. 자신이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성화의 첫 단추다.


한국의 남성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뒤집어 쓴 것은 개의 탈이다. 그들은 개처럼 일했고 개처럼 가정을 지켰으며 개처럼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개처럼 기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어서, 남들도 다 그랬다는 이유로 그 모습을 정당화하며 이제껏 살아왔다.

그러나 중년이 된 아저씨들에게 닥쳐온 존재의 위기는 개라는 페르소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페르소나는 진정한 자기가 아니다. 개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면, 더 이상 가면을 쓰기 싫다면 서둘러 개의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를 찾을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단계는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융에 의하면 그림자(shadow)란 인간이 성장하면서 갖게 되는 어두운 내면을 뜻한다. 성장기에 부모나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 같은, 자신의 일부이지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어렵고 인식하더라도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 그림자다.


의식화는 이러한 그림자를 의식으로 떠올리고 그 실체를 파악하여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은 보통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일에 왠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다면 그 일은 자신의 그림자와 관계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자신의 그림자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는 데(의식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은 내면에서 갈등하는 상반된 두 가치를 의식화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어떠한 목적에 의해 구성원들을 교육시키고 특정한 가치를 내면화하게 한다. 특정한 가치의 지나친 강조는 반대편의 가치를 무의식으로 억압하게 만드는데, 앞서 언급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남성으로서의 우월감, 남성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남성 안에 본래 내재된 여성성(아니마)을 감추고 부정한다. 개성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억압된 내면을 인식하고 의식화하여 기존의 자기와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뿐만이 아니다. 아저씨들은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남성과 여성의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부단히 자기를 발견하고 그 역할을 고민함으로써 내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개성화의 과정이며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과정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나이 50을 지천명이라 한다. 천명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천명이란 하늘의 명령, 즉 존재의 이유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사는지 깨닫게 되는 나이가 50이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시간의 위력. 죽음의 공포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재고하기에 충분한 기회가 된다. 다른 이들의 죽음을 만나며 삶의 목적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는 나이 50을 지천명이라 하는 것은 발달심리학적 관점으로도 대단히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만드는 내면의 그림자들과 부단히 부딪쳐야 한다. 부딪쳐서 깨어지고 깨진 조각을 맞춰가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개성화는 어느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화는 반드시 원만하고 선하며 다른 이들에게 칭송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성화를 이루면 이룰수록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될 것이다. 때로는 이기적이라는 때로는 냉정하다는 평을 받고 때로는 일관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다만 그의 머리에는 다른 이들의 욕망을 추구한 결과인 명성이라는 후광이 없고 구태여 스스로 후광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만들어 씌워주면 굳이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 자신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마음속에 물으며 그것이 해야 할 일이라면 그렇게 한다. 그것 때문에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얻게 될 이익이 줄어들지라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고독한 사람일 수도 있고 세속적 관점에서 무력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자기와 일치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융은 모든 정신체계에 있어 서로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평형의 최종적인 목적은 전인성(wholeness)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균형의 과정은 사람들을 결국 개성화에 이르게 한다.


이쯤에서 공자가 60세가 되어 도달했다는 이순(耳順)의 단계가 떠오른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이순(耳順)보다 융의 전인성과 개성화를 잘 묘사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표지사진은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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