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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23. 2019

심정(心情)의  성격

주관화된(subjectified) 마음, 의사소통의 매개체

대인관계 맥락에서의 한국인들의 대화는 ‘마음’을 준거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네 마음대로 해’,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 ‘일이 마음같지 않다’,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등 일일이 예를 들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마음이 대단히 중요한 개념일 뿐 아니라 마음이라는 개념과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맥락에 대한 도식이 상당히 세분화되어 발달해왔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국인의 자기(self)는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추론적 판단을 근거로 경험을 구성해갑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인관계나 사회적 맥락에서 상대의 언행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마음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상대는 물론 당사자도 마찬가지죠. 따라서 외부로 드러난 행위와 그 행위가 나타난 정황 등으로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추론하는 도식이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이 사회적 맥락의 모든 행위의 저변에 있는 마음을 추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마음을 해석하는 것은 대개 사안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 추론(주관적 해석)해야 하죠. 이때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는 단서가 심정(心情)입니다(최상진, 김기범, 1999c).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독일전 준비하겠다..

심정은 心과 情의 합성어로서 ‘마음의 정황’, ‘마음이 일어난 상태와 상황’(신국어대사전)을 말합니다. 정태적인 마음의 한 상태가 아니라 사건에 의해 발동되어 비로소 감지된 마음입니다. 한국의 방송이나 언론매체에는 심정이란 말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예, 자식 같던 배추 갈아엎은 농민의 심정, 시험 치는 학생의 심정, 죄인된 심정, 자식 먼저 보낸 엄마 심정 등등) 


한국인들의 일상사와 심리경험 방식을 담고 있는 연속극의 경우는 물론이고 객관적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의 기사에도 심정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는 것은 심정이 그만큼 한국인들의 심리경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심정이란 표현은 주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혹은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공감시키려는 맥락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예, 물러날 곳 없는 벼랑 끝에 선 심정,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표현된 어떤 이의 심정을 통해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마음을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심정표현이나 심정담론은 보통 합리적 사고나 이성적 담론이 요구되는 상황보다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와 같은 사적 관계에서 통용되는 것이 보통인데요. 사적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인 등 공인의 발언에서조차 심정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표상하는 사회적 관계가 상당히 '사적'인 사이임을 방증합니다.


심정의 성격_주관화된 경험

심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심정은 주인성 마음의 작용이라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심정에는 자의식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죠. 심정을 발동한(경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을 감지하고 그것을 표현합니다. 즉 심정이란 나의 마음이 주관적으로 재해석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일 수도 있고 나의 마음일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에 의해서’, ‘나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문화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행위나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상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심적 경험을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 치환하여 공경험(共經驗, co-experience)하는 일에 민감하며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공경험이란 정서적 공감(empathy)과는 다른 의미로 다른 이가 경험하는 내용을 마치 자신이 경험하는 것처럼 동시에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즉 공경험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인지, 정서적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 사람이 표현하고 있는 방식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동시에 경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자신이 다른 이의 경험을 공경험하고 있다고 믿는 신념의 체계가 존재하는데 다른 이의 경험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그것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점에서 한국인들은 상대의 경험을 당사자적 입장에서 주관화(subjectify)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관화(subjectification)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정보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도식에 의해 해석되어 자기 자신만의 정보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똑같은 사건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이 가진 배경과 지식, 사고방식과 가치관 등의 차이에 의해 그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주관화의 결과입니다. 


지각심리학에 의하면 주관화는 인간이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내적 심리경험을 구성하는 보편적인 과정이지만, 주관화의 과정은 문화적으로 양식화(patterned)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특정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발달한 마음의 주관화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한국인의 심정 및 심정을 바탕으로 한 심정교류가 한 예입니다.

한국인인들은 자신과 타인들의 마음을 주관적인 해석과 판단으로 경험하는 데 익숙합니다. 이 과정은 서구인들이 가장 주관적인 자기(self)까지도 객관화(objectify)하는 것과 대비되어 한국인들의 심리경험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심정은 이렇게 주관화된 상대의 경험, 주관화된 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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