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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r 15. 2020

야동과 먹방의 문화심리학

문화로 읽는 관계 욕구

야동과 먹방은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입니다. 그리고 그 둘의 공통점은 포르노..라는 점이죠. 보통 야동(야한 동영상)이라고 하는 포르노(porn)는 1980년대 비디오 성인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로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성산업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먹방은 아프리카 tv,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의 등장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한국의 대표적 문화현상입니다. 주로 BJ 또는 유튜버들이 뭔가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대단히 많이 먹거나 대단히 희한한 것을 먹거나 아니면 대단히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입니다. 먹방은 외국에서 food porn이라 불리고 있는데요. 섹스나 식사나 인간의 원초적 행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포르노porn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입니다.      

먹방 유튜버 '쯔양'

섹스와 식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이 두 행위는 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콘텐츠가 된 것일까요? 먼저 야동, 아니 일본의 경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을 일컫는 말 중에 ‘성진국’이 있습니다. 성(性)의 선진국이라는 뜻이죠. 사실 일본의 성문화는 그 섬세함과 적나라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풍속산업으로 알려진 일본의 성산업은 대표격인 AV(adult video)뿐 아니라 소프란도, 이메쿠라, 테레쿠라, 노조키야(のぞき屋여성을 엿볼 수 있는 가게) 등 여러 가지 성적 판타지를 활용한 업소는 물론 다양한 페티시를 충족할 수 있는 용품들과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퍼져 있습니다.     

풍속업소의 간판

일본에 성산업이 이토록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은 우선 그들의 문화에 기인합니다. 과거 일본에는 남녀가 같은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혼욕서부터 친족 내 결혼인 근친혼(물론 허용 범위가 있습니다), 마을의 청년들이 처녀의 방에 찾아가 성관계를 맺는 요바이(夜這い), 손님이 오면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 등 한국인인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들이 많았는데요.     


이러한 성문화는 바다와 높은 산으로 고립된 지역이 많은 지리적 특징과 계속된 전란으로 남녀의 성비가 균형을 이루기 어려웠던 역사적 조건, 성(性)을 보상으로 삼기 쉬운 남성적 무사문화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문화는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에 이르러서야 법적으로 금지됩니다만 실질적으로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일본인들의 성의식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리라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런 성산업의 활성화는 일본인들의 실제 성생활로 이어지지 않는 듯 한데요. 2018년 글로벌 섹슈얼 헬스케어 기업 ‘텐가(TENGA)’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및 자위 만족도·빈도, 성적능력, 파트너와의 교감 등을 종합 평가한 성생활 만족도 지표(The Good Sex Index)에서 일본은 37.9점으로 조사대상 18개국 중 꼴찌에 그쳤습니다. 조사국들의 평균 점수는 62.3점입니다.      

한편 한국은 이 조사에서 40.7점으로 일본에 한 단계 앞선 17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순위도 언젠가 한번 고려해 볼만한 주제긴 합니다만, 성진국 일본의 순위가 꼴찌라는 것은 다소 의외입니다.      


일본에 몇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초식남이라는 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초식남이란 남성다움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취미 활동에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일본의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는 초식남이 등장하게된 배경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었던 점, 그리고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 성장하며 미래에 대한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자신의 만족에 집중하게 된 점 등을 꼽았습니다.     


일본인들의 낮은 성생활 만족도는 이러한 초식남들이 증가하면서 이성교제나 성관계에 관심이 적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AV등 여전히 활발한 일본의 성산업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미 산업화된 성 산업의 경제적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그 이면에는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추정됩니다. 문화적 욕구보다 더 근본적인 교류의 욕구, 사회적 욕구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영장류의 사회적 본능이 생존 가능성을 증가시켰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지었고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이들과 소통해 왔습니다.     


타인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은 정신뿐 아니라 신체건강에도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가족을 비롯해 친구,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수많은 연구들이 지지하는 사실입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각종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혼자서도 얼마든지 생활을 유지하며 심지어 즐겁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인간에게 내재된 사회적 욕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성(性)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문화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으로 말이죠. 바로 엿보기입니다.      


일본인들은 내부와 외부, 자신과 타인, 내집단과 외집단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일본인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그로부터 그들의 안정감이 비롯되죠.       


뷰파인더 안의 욕망(사진출처_후지필름 광고)

따라서 일본인들은 타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존재니까요. 일본에 몰래카메라 형식의 예능이 많은 것, 카메라 기술이 발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의 경계 내부를 엿본다는 쾌감 말이죠.


성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행위입니다. 사랑을 나눌 때 남녀는 으슥하고 어두운 곳, 벽으로 사방이 막힌 곳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 벽을 들추고 가장 은밀한 행위를 볼 수 있다니 쾌감은 더 커지겠지요.  또한 성행위는 두 사람이 서로를 구분하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임하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교류입니다. 몸과 몸을 맞대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탐닉하게 되죠.      


이 두 가지 욕구(교류+엿보기)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야동, 즉 포르노인 것입니다. 야동에는 타인과 나 사이의 벽을 허물고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나누고 싶다는 일본인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일본과 비슷한 사회적 현상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생활 만족도는 일본에 한 단계 앞선 17위이고, 초식남과 유사한,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말 예능 ‘나혼자 산다’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개인주의 문화의 대두와 경제적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으로 결혼을 기피하고 소확행 등 자신의 개인적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은 문화 보편적 현상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될수록 거기에 대해 목마름을 느끼는 것도 문화 보편적이지요. 그러나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법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한국의 경우는 밥이죠. 한국인들에게 밥은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밥 한번 먹자”라고 하는 것 외에도 한국문화에서 밥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맥락은 많습니다.      


한국인들은 이성에게 작업을 걸 때도 “저랑 밥 한번 드실래요?”, 누군가가 고마울 때도 “내가 밥 한번 살게”, 친구가 아플 때도 “밥은 꼭 챙겨먹어”라고 말합니다. 밥을 통해 한국인들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또 느껴왔습니다.      

이렇듯 밥은 한국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한국인들에게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마음을 나누고 우리가 가족(식구)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가 여러 모로 변화하면서 누군가와 머리 맞대고 밥먹을 시간 자체가 별로 없어졌지요. 생활 주기도 달라지고 혼자 사는 생활 패턴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충족해왔던 욕구들마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먹방이 그 증거입니다.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희한한 음식을 먹느냐는 먹방의 본질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나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늦은 시간 퇴근하여 지친 몸으로 돌아온 집. 나를 맞아줄 사람도 없는 집에서 늦은 식사를 하며 어느새 컴퓨터를 켜고 먹방을 검색하는 것이죠.     

TV에 요리하고 먹는 프로그램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왜 연예인들 놀러다니면서 먹는 걸 봐야 할까요?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 느낌을 받기 위해섭니다. 혼자 먹으면 외로우니까요.      


혼밥, 혼술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나 혼자 사는 것이 새로운 생활 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대인관계에 대한 욕구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먹방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가장 한국적으로 드러난 문화현상일 것입니다.      


그 방식 역시 물론 꽤나 한국적인데요. 보통 야동porn이 일방적으로 성행위 장면을 보여준다면, food porn이라 일컬어지는 먹방은 시청자와의 쌍방향 소통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채팅창이나 댓글을 통해 먹방에 반응하고 BJ나 유튜버가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식이죠. 먹방 중에 실시간 댓글창이 같이 떠있는 경우도 흔한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는 것.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사회적 교류의 방법입니다. 각자의 영역에 선을 긋고 그 안을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들과는 다른 방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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