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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10. 2018

빙의(憑依)치료의 심리학적 이해

엑소시즘의 심리적 기능

빙의(憑依)는 귀신 들렸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몸에 귀신이 들어갔다는 것이죠. 동서고금에 빙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전해옵니다. 빙의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대개 귀신의 어떤 목적에 의해 선택된 사람의 몸에 귀신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사람이 자발적으로 귀신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무당과 같은 특수 영능력자가 아니면 드물다는 말씀입니다. 귀신이 들리는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거나 호기심 때문에 귀신들이 많은 곳에 갔거나 악령에 의해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 아넬리즈 미셀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빙의가 되면 귀신을 쫓아내려 애썼습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빙의는 대단히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성경에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는 말씀이 있고 카톨릭에도 엑소시즘을 행하는 구마사제들이 있습니다. 


전설적인 공포영화 엑소시스트를 통해 알려져 한국영화 '검은 사제들'이나 최근 드라마 '손 더 게스트'에서도 볼 수 있었던 분들이죠. 

동원씨 ♡

우리나라에도 귀신들림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이 많습니다. 전통종교 무(巫)속의 사제인 무당들부터가 자신의 몸에 신을 받아 인간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존재죠. 무당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컨설팅, 상담, 치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는데, 그 중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치료 및 치유입니다.


특히 의술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병의 치료는 최종적으로 무당들에게 맡겨졌었는데요. 그러한 병의 대표가 바로 빙의입니다. 빙의가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건강도 심각하게 나빠집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죠.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들을 귀신을 쫓는 굿을 합니다.


즉, 여러 종교에서 전해오는 구마(驅魔), 퇴마(退魔), 축귀(逐鬼), 제령(除靈) 등의 의식은 이러한 빙의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빙의란 과연 어떤 병일까요? 실제 존재하는 귀신이나 악령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는 것일까요? 인류에게는 역사적으로 그러한 믿음이 존재해 왔습니다. 사실 귀신의 존재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존재는 이미 현실인 것이죠. 


여기서는 귀신의 실재여부가 아닌, 빙의라는 현상과 그 치료의 심리학적 기제와 기능을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마음에 견디기 힘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오면, 인간의 마음은 놀라운 작용을 일으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일부를 자신의 마음에서 분리해 버리는 것이죠. 이를 해리(dissociation)라고 합니다.


해리는 기억상실증이나 다중성격장애 등의 예로 알려져 있지만, 빙의(possession) 또한 해리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설명이 없었던 시기, 어떤 사람에게 나타난 전혀 다른 인격을 신이나 귀신이라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다중성격장애를 다룬 영화, 23 identity

다시 말해, 사람에게 들린 귀신은 그 사람의 해리된 정신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신의 일부가 해리된 상태는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통합되어 있어야 할 정신이 분열된 것이죠. 빙의의 증상인 환각과 환청은 조현병, 즉 과거에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던 정신장애의 전형적 증상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치료를 해야 합니다. 당대의 지식(과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니 종교적 접근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빙의의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구마의식이나 굿의 과정을 보면 사제(무당)가 사람에게 들린 귀신을 불러내고 여러 의식을 거쳐 귀신을 쫓아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이러한 의식의 기능은,

환자에게 분열된 정신들을 인식시키고, 그것들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시각화함으로써 환자들에게 문제의 원인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에 비해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지금도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죠. 옛날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에 직면하고 또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마음에 입은 큰 상처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지속적인 영향을 줍니다.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뭔가가 가슴을 꽉 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떠올리기 싫은 혹은 떠올릴 수 없는 기억이나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스쳐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기억이나 감정들은 우리가 떠올릴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거나, 떠올리기에는 의식적 무의식적 억제가 작용하는 종류들입니다. 무의식에 속하는 영역이죠. 그럴 때면,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내 안의 어떤 존재가 슬퍼서 울부짖기도 하고 분노로 가득차 어쩔 줄 모르기도 하죠. 


마음의 작용에 대한 과학적 설명체계가 없는 과거의 민초들이 그런 마음의 상태를 명확히 이해하고 자신이 가진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귀신이나 악령 등의 초자연적 존재는 그러한 상태를 설명해 줍니다.


당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아버지가 잡아 죽인 뱀이다, 자식이 시름시름 아픈 이유는 악령이 씌었기 때문이다, 이유도 없이 어깨가 아픈 것은 억울하게 죽은 누군가가 어깨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은 조상의 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 사람들은 일단 마음이 놓입니다.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된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불안과 고통에 시달릴 때에 비하면 많은 것이 분명해진 상태입니다. 원인이 밝혀졌으니 이제 그 원인만 해소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엑소시스트, 무당, 사제.. 누가 됐든지 귀신을 쫓는 사람들은 이제 귀신을 형상화하고 그것을 쫓아내는 의식을 시작합니다. 사제의 말들은 환자(빙의된 사람)에게는 일종의 암시가 됩니다. 이제 귀신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것이 몸 밖으로 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사제의 말과 의식의 절차, 분위기 속에서 점차 구체화되는 것이죠.

의식이 끝나고 사제가 환자의 몸 밖으로 나온 귀신을 무언가에(그릇이나 용기) 봉인하여 묻거나 태워 소멸시키면 환자들은 자신의 문제가 이제 자신 밖으로 빠져나가 소멸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퇴마의식은 내면의 문제가 실체화되어 사라지는 모든 과정을 환자들에게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기능을 갖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사라졌으니, 그걸 직접 눈으로 봤으니 마음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자신의 생활로 돌아간 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인간의 병은 대부분 마음에서 옵니다. 그 마음을 편하게 하면 대부분의 병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이 글은, 귀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무당이나 구마사제들의 퇴마 행위가 다 거짓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자연적 존재의 실재여부와 별개로 엑소시즘, 퇴마, 제령, 축귀라는 의식의 심리적 효과를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죠. 


빙의로 이해되어왔던 현상들은 아직도 그 이유가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다중성격장애만 해도 현대 과학에서는 해리라고 설명하고는 있지만, 왜 한 사람에게서 여러 사람의 기억, 목소리, 필체, 언어까지 다른 인격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는 이견이 많습니다. 


다중성격을 보이는 사람에게서는 한 사람의 정신이 분리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한 사람의 이제까지의 경험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또한 구마의식 중에 빙의된 사람이 보이는 행동과 상태변화 역시 해리라는 현상 하나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과학은 인간의 마음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대한 이해는 갈 길이 멀죠. 그러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있어 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 보고 싶은 것이 그 가족 친지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효능이 검증된 것이라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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