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생 Oct 02. 2018

한국은 어차피 일본 따라간다구요?

이 말이 옳지 않은 결정적 이유

'어차피 한국은 일본 따라 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상식처럼 떠도는 명제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은 몇 년의 시간을 두고 한국에서 반복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경제호황 뒤의 부동산 거품이라든가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경기침체 같은 것들 말이죠. 패션이나 연예계의 트렌드 같은 경우도 일본에서 먼저 유행한 뒤 한국에서 붐이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어왔습니다. 과연 한국은 일본을 뒤따라 가고 있는 것일까요?

한/일 경제 평행이론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은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선의 힘으로 시작되고 있었던 근대화가 좌절되고 일본에 의한 근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산업 분야뿐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의 제도, 교육 등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일본식으로 출발한 셈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광복 후 정국을 책임졌던 미군에 의해 군, 경, 사법을 비롯한 일제의 행정관료들이 그대로 중용되면서 한국(남한)사회의 일본 따라가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었죠. 자료에 따르면 경찰의 경감급 이상은 100%, 경위급은 75%이, 검찰에서는 145명 중 142명이 일제에 부역한 이들로 채워졌습니다.


국가의 기본 틀에서부터 중공업 위주의 성장모델까지 우리 사회의 경제, 사회,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왔기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이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되풀이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것은 맞는 것일까요? '어차피' 일본을 따라갈 것이기에 일본의 사회현상과 해법에만 주목하면 우리의 문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우리 사회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세계화와 다문화사회화, 4차산업혁명, 초고령사회와 저출산 등 당면한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일본의 해결책만 따라가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간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어차피' 일본 따라갈거라는 생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매우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문화심리학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는데요.(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가면으로 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인관계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22/한국귀신과 일본귀신의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0


요약하자면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서로 다른 사회적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 외부로 발휘하려 한다면 일본인들은 외부보다는 내면에 집중한다고 할까요. 이 차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문제해결방식'으로 나타납니다.

87년 6월

대표적인 예로 두 나라의 정치를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들고 일어납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말이죠. 4.19, 5.18, 87년 6월항쟁, 재작년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현대사회들어 가장 많은 시민혁명이 발생한 나라입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시민들의 힘으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 온 역사죠.

2016년 12월

반면 일본은 시민혁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막부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국가 체제가 성립된 이후로도 시민의 힘으로 체제를 바꾸거나 정권을 갈아세운 적이 없죠. 60년대 후반 체제 전복을 꿈꾸는 대학생들에 의해 소위 전공투(전학공투회의全学共闘会議)의 투쟁이 있긴 했지만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좌절되었습니다. 


글쎄요. 일본에 민란이나 시민혁명이 없는 이유가 일본 정치인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정의롭고 바르게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일까요?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일본 정치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올해 3월, 공문서 조작, 부인의 사학스캔들 등으로 아베 내각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베의 지지율이 30%로 떨어지고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위를 벌였습니다. 일본에서 이 정도 규모의 시민들이 모이는 것은 유례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이 사태의 추이에 주목했었지요. 

그러나 몇달 후, 지난 9월 아베는 압도적인 표차로 자민당 총재에 재신임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3연속 연임입니다. 이로써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며칠 전 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5%로 고공행진 중입니다.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의 부도덕성이나 침해된 시민의 권리보다는 정국의 안정을 선택한 셈입니다. 어쩌면 그런 관심 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군요. 적어도 현재의 일본인들에게는 아베 내각을 끌어내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에서의 혼란과 불안을 감당할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현상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도 동일합니다. 한국이 일본의 성장과정을 뒤따라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의 해법까지 같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입니다. 


관심있게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과거에는 일본 따라하기에 급급했던 패션, 문화산업, 콘텐츠 등에서부터 양성평등, 정치 등의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은 현재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출발은 비슷했더라도 말이죠. 


후발국가가 앞서 간 나라의 발자취를 좇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따라가는 나라가 먼저 간 나라의 시행착오를 보고 배우는 것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일본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미래를 전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꾼은 성범죄자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