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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l 04. 2016

한국 귀신과 일본 귀신의 차이

귀신과 요괴의 문화심리학

오늘은 납량특집입니다. 최대한 안 무서운 사진을 찾았지만 그럼에도 귀신 사진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노약자 및 심신미약자의 주의 바랍니다^^..



귀신은 무엇일까요? 이승에 속하지 않는 존재? 죽은 사람의 영혼? 

과학의 발전과 함께 귀신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비과학적인 일로 치부되고 있지만, 인공위성이 우주를 떠다니고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사람을 이기는 현대 사회임에도 귀신이야기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를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과학으로 귀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 귀신은 없는 것일까요? 

사실 문화심리학에서 귀신의 존재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귀신이 있다고 믿는 그 믿음체계 자체지요. 


문화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과 두려움이 투사되어 있습니다. 귀신 역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과 두려움이 투영된 결과지요. 그래서 귀신에는 그 문화사람들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가 담겨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해보려는 것은 한국귀신과 일본귀신의 차이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은 동양 집단주의 문화로 이해되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 문화심리학자로서 한국과 일본만큼 다른 두 나라도 없다는 생각인데요. 가끔씩 두 나라의 차이에 대한 글들도 올려보겠습니다.


다시 귀신 이야기로 돌아와서, 가장 두드러지는 한국과 일본 귀신의 차이는 바로,

귀신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귀신이야기는 아랑전설입니다.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은 그녀를 겁탈하려는 통인에게 저항하다가 살해당하고 시체가 버려집니다. 이후 새로 부임하는 사또마다 귀신을 보고 죽어나가자 아무도 밀양으로 오지 않으려 하는데..

아랑전설 리메이크 작, 아랑사또전

담이 큰 사람이 나타나 사또로 부임하고, 귀신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자 사또는 이를 듣고 범인을 잡아 죽이고 아랑을 장사지내 사건을 해결해줍니다. 귀신은 감사하고 저승으로 떠나고 사또는 잘 먹고 잘 삽니다.


한국의 귀신이야기는 대개 이 아랑전설과 유사한 스토리라인을 갖습니다. 계모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여 이를 호소하기 위해 나타난 장화홍련이 그렇고, 여름날 잠을 설치게 만든 비주얼로 사람들을 놀래키지만 한을 풀면 누구보다도 곱게 큰절하고 갈 곳으로 가는 전설의 고향의 수많은 귀신들이 그렇습니다. 


이 스토리라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귀신이 나타나 사람들이 놀라거나 죽는다.

2. 담이 큰 사람이 귀신을 만나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귀신의 한(억울함)을 풀어준다.

3. 억울함을 푼 귀신은 좋은 데로 가고 억울함을 풀어준 사람도 좋은 일이 생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귀신의 출몰 이유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의 귀신은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사연을 밝히고 그 한(恨)을 풀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지요. 아랑이 밀양에 부임하는 사또들에게 한 말은 "사또... 억울하옵니다..."였던 것입니다.


담력이 약한 사또들이 놀라서 돌아가셔서 그렇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왜 나타났는지 이유만 제대로 따져물었다면 충분히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 터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반면, 일본 귀신은 나타나는 데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의 전통적 귀신은 매우 다양합니다만 우리나라처럼 특정 인물이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귀신이 된 경우보다는 갓파나 오니, 야마우바(야만바), 유키온나 등 예전부터 어떤 지역에 있어 온 그런 존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거기 원래 있는 것이죠.


한국의 아랑이나 장화홍련과 비슷한 케이스는 비교적 최근 영화로 나온 링의 '사다코'나 주온의 '가야코'같은 귀신이 있겠는데요. 얘네들도 나타나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영을 보는 능력을 가졌으나 억울하게 죽은 사다코는 비디오 테잎에 영사되어 이 비디오를 트는 이들을 모두 죽이는 살인행각을 보여줍니다.

TV에서 나오고 있는 사다코 상

이들은 사다코와 1도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살인이라 하겠습니다. 주온의 가야코 토시오 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이상자 남편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그 원한때문에 자신들이 죽은 집의 지박령이 된 이 모자는,

공포영화 사상 역대급 등장을 선보인 가야코 상

이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적의와 공격성을 보입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고즈넉한 일본식 가옥에서 나타나는 가야코 모자의 뜬금없는 등장과 2000년대 귀신영화에 '각기'라는 트렌드를 창출한 기괴한 무브먼트, 그리고 적의의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없는데서 오는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이 '무언'과 '대상없음'이 일본 공포영화의 큰 키워드 중 하나지요. 이것이 가장 일본적인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 귀신은 자신이 나타나는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고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묵묵히 자신의 원한을 표출합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사람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 원한이 너무나 지독해 대신 자기 자리를 지킬 사람을 찾고야 만다는 물귀신을 제외하면 한국 귀신이 사람을 해하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형 귀신 외에도 한국의 대표 요괴인 도깨비도 사람을 홀려서 밤새 헤매게 하거나 술취한 사람 붙잡고 씨름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한국 도깨비

알려진 도깨비 이야기 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케이스는 혹부리 영감 정도입니다. 혹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이고 덤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고 하죠.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ㅋㅋ. 오히려 한국 도깨비들은 어리숙하고 놀기 좋아하며 사람이 잘 구슬리면(도토리묵과 함께) 부탁도 들어줍니다. 사람들과 친숙한 존재로 그려지죠. 


반면, 일본의 오니(鬼)는 악귀입니다. 뿔이 나고 가시방망이를 든 도깨비는 사실 일본 오니의 이미지입니다. 일본 전설이나 민담에 등장하는 오니는 도적질을 하거나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를 납치하는 등 중범죄를 주로 저지른다고 묘사돼 있습니다. 귀신 귀(鬼)자 자체가 그냥 오니라는 점에서 귀신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이타 현 벳푸시에 있는 오니상

또한, 한국의 대표 귀신 중, 구미호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구미호 역시 대단히 사람 친화적 존재입니다. 대개의 구미호 전설에서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어' 육식동물(여우)로서의 욕구를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인간에 의해 배신당하면서도 끝까지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만큼은 해치지 않고 떠나가는 비련의 존재입니다.

구미호 최근 샷

그러나 일본의 요괴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다코나 가야코도 그렇구요. 납치, 강도, 살인의 오니, 산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그네를 잘 대접하지만 나그네가 잠들면 잡아먹는다는 야마우바(야만바; 山姥), 눈오는 지역에 나타나 사람들을 얼려죽이는 유키온나(雪女)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일본 요괴들은 최근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에서 친숙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18세기까지의 기록에는 일관적으로 악한 존재로서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물에 사는 갓파 정도가 해악이 덜한 요괴라고 할 수 있는데, 얘들도 가끔은 사람들을 물에 빠뜨려 죽게 하죠;

콘텐츠화된 갓파

최근 일본 괴담에서 종종 나타나는 쿠네쿠네, 팔척귀신.. 같은 존재들도 일본 귀신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왜 나타나는지 알 수 없으며 이들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해를 입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이 나타나는 곳에 가지 않으려 하죠.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허락되지 않은 이승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자신의 한을 풀려는 한국귀신과, 역시 저세상으로 가지 못할 만큼의 큰 원한을 품었으나 자신이 죽은 곳에 머물면서 자신과 큰 관계없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본의 귀신.


사람들과 친숙하고 함께 어울려 살며 웬만해서는 해를 주지 않는 한국의 요괴들과 자신들의 영역이 확고하고 이를 침범한 인간들을 확실하게 응징하는 일본의 요괴들.


한국인과 일본인 마음의 어떤 차이가 여기에 투영되어 있을까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좀더 학술적인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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