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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13. 2018

가면으로 본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인관계

'나'와 '남' 사이의 경계에 대한 생각의 차이

한국인과 일본인은 다릅니다. 그것도 많이 다르죠. 

그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두 나라 사람들의 대인관계 양상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한국과 일본사람들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일본인들이 깍듯하고 예의바르지만 다소 조용하고 소극적이라면, 한국인들은 훨씬 적극적이고 감정표현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표지사진은 하회탈춤 중 한 장면인데요. 하회탈로 대표되는 한국의 탈은 그 표정이 매우 큽니다. 심지어 얼굴과 턱을 따로 만들어서 고개를 젖히면 턱이 더 벌어집니다. 표정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것이죠. 한국의 탈춤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반면, 일본의 대표적 탈은 가면극 노오(能)의 탈, 노멘입니다. 아래 사진의 노멘은 영화 '곡성'에서도 잠깐 나와서 여러 사람 놀래킨 '조온나(増女)'인데요(발음에 유의합시다). 노멘의 특징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거의 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대신 노오는 탈의 미세한 각도나 탈을 쓴 인물의 동작에 따라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한국과 일본의 탈들이야말로 두 나라의 대인관계를 가장 잘 요약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탈, 즉 가면이란 성격(personality)의 속성과 같습니다. 성격을 뜻하는 personality는 그리스어 persona에서 왔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성격이란 '개인이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성격의 심리학적 정의로 봐도 탈을 한일 두 나라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물론 내성적이고 조용한 한국인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외향적이고 잘 노는 일본인이 없는 것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제 이전 글(타일러의 실수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05)에서 말씀드렸듯이 문화의 차이는 개인차가 아닌 문화 유형의 차이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제3자의 눈으로 분명히 구분되는 행동 유형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나라 사람들의 대인관계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요. 오늘은 그 차이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일본인들의 대인관계는 혼네(本音) 다테마에(建前)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혼네는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의 본심(本心)을 말합니다. 다테마에는 세울 건(建)에 앞 전(前), 즉 '앞에 세운다'는 뜻으로 혼네와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세우는 '대인관계용'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본인들이 항상 예의바르고 깍듯한 모습을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 상할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이 다테마에의 역할입니다. 일본인들의 다테마에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구성되어 있고 또 작동되지요.


반면, 일본인들의 본심, 즉 혼네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수십 년이나 살 맞대고 살아온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라지요.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일본인들의 본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한국인들로서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표리부동하다고 하여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만큼 한국인들은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 지점 쯤에서 고개를 갸웃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요. 한국인들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 잘 안 와닿으실 분들입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무슨 생각과 느낌을 가졌는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그것을 남들에게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서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에서 자기 의견은 묵살되기 일쑤며 암기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건데요. 그건 자기객관화가 덜 된 생각입니다.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본 한국사람들은 상당히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표현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 한국인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말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들 기분 상할까봐 절대 하지 않는 외모품평이나 집단 간의 알력 같은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들도 한국사람들은 쉽게쉽게 꺼내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표현이 억제돼 있다는 생각은, 역으로 강한 표현욕구에서 나옵니다. 내가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내 표현을 가로막는 사회적 조건들(예, 권위주의적 문화나 획일적인 교육)이 눈에 들어올까요? 다시 말해, 한국사람들은 강한 표현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직설적이고 과감한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깁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상대방을 위한 또 다른 모습을 내세우는 일본인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한국인.

이러한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요점 위주로 말씀드리면, 한국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반면, 일본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뚜렷한 선을 긋는다는 것이죠. 나와 다른 이가 철저히 구분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나와 다른 이들 사이의 구분을 확실히 짓지 않습니다. '네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네 마음'이죠. 한국인들은 친구가 되려면 그야말로 '너와 나' 구분이 없어야 합니다. 친구 사이에 조그만 것이라도 숨기는 것이 있다면 '너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며 섭섭해하죠. 


또한 한국인들은 서로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생각하면 금방 친해집니다. 그 사이에서는 상당히 깊은 수준의 정서적 교감이 오가죠. 한국에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데는 하루 밤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일본인과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짧은 우정으로 그의 혼네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죠.


사람 사이의 '경계'에 대한 생각은 한국과 일본 문화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 생각은 두 나라의 전통극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요. 탈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두 나라의 전통극에 나타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의 탈춤같은 전통극에는 무대와 관객의 구분이 거의 없습니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관객들도 배우들에게 농담을 하는 일이 흔합니다. 노래나 춤 같은 건 아예 배우와 관객 구분 없이 어우러지는 경우도 많고 관객 중 한 명이 무대로 불려나가 즉석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전통극에서 무대(마당)는 극과 관객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경계에 그치고, 관객과 배우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극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특징을 보입니다. 물론 극의 큰 틀이야 짜여져 있지만서도 말이죠.


그러나 일본의 극(노오能)에서 관객은 무대와 철저히 분리됩니다. 요 아래 사진은 노오 무대인데요. 오른쪽의 넓은 마루가 극이 펼쳐지는 무대고, 왼쪽의 좁은 복도가 배우가 무대로 등장하는 길, 하시가카리(橋懸)입니다. 

노오의 배우들은 하시가카리를 통해 현실과는 전혀 별개의 세계인 극의 세계로 들어가고, 일단 극이 펼쳐지면 그곳은 관객들이 앉아있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는 것이죠. 한국 탈춤처럼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석으로 들어가는 일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연극, 특히 전통극은 그 나라의 전통적 대인관계에 대한 가정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차이가 극명한 한국과 일본 전통극의 배우와 관객에 대한 생각에서 두 나라 사람들의 전통적 대인관계에 대한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전혀 무리스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일본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이 명확히 구분되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일본인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꺼려하고(메이와쿠) 사회적으로 규정지어진 행동반경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편안해 하는 것은 이러한 전제에서 비롯되는 문화입니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입장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전제에서 대인관계를 해 나갑니다. 한국인들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이심전심), 때로는 상대방의 영역에 지나치게 깊게 들어가거나(참견) 상대가 원치 않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 또한 이러한 전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는 최근의 한국 젊은이들 중에는 이러한 '오지랖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깔끔한 일본식 인간관계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문화는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관심과 오지랖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정서적 지지의 효과나 깔끔하고 예의바르게 보이는 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본인들의 심리적 압박은, 한국 문화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살펴본 한국과 일본의 대인관계에 대한 생각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자기관(주체성 자기 vs 대상성 자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해당 내용(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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