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패턴과 개인차
JTBC에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출연하여 각국의 문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컨셉이죠. 문화를 다루는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여행자의 시각에서 제한적인 정보만을 언급하는 현실에서 소금과도 같은 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몰랐던 다른 나라의 이모저모를 그 나라 사람이, 그것도 꽤 유창한 한국말로 이야기해 준다는 장점과 함께, 오해하기 쉬운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청년들의 진지한 노력이 돋보이는 ..그간 있었던 몇 번의 논란에도 여전히 가치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정상회담은 인기 프로답게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도 돋보이는 것이 타일러라는 미국친구입니다. 6개국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에도 박식한 타일러는 토론을 주도하고 프로그램을 이끄는 핵심 멤버지요.
그런데 이 타일러가 가끔 까칠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 멤버들이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인데요. 미국 중에서도 조용하고 보수적인 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미국인들이 '이러저러하다'는 미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이 자유분방하다', 거나 '허세끼가 있다' 는 등의 이야기에 "그렇지 않다, 모든 미국인이 그렇지는 않다'는 식의 대답을 하는데, 타일러의 이런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문화 이해에서 타일러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사실, 타일러 식의 답변은 문화심리학을 하면서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이렇고 일본사람들은 저렇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니, 내가 아는 사람은 안 그렇던데?" 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문화를 그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날아오지요.
일견 타당한 문제제기 같습니다만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간과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문화의 비교차원이라는 문제입니다.
문화는 한 집단이 최적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 낸 삶의 방식이자 습관입니다. 우선적으로 문화의 영향은 개인의 외부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받아들이는 문화의 영향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집단의 문화가 이러이러하다고 해서 그 집단에 속한 모든 개인들이 모두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개인들은 문화를 내재화합니다. 그것이 그 집단 안에서 개인의 생존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한 문화 내 사람들의 행동에는 공통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고 다른 문화와 비교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문화 내 개인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 내 개인들에게 공유되는 부분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패턴(pattern)입니다.
문화의 패턴이란 문화에는 어떠한 유형(pattern)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구성원들에게 공유된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 의해 제안된 '패턴'이라는 생각은 언어학자 사피어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사피어는 언어가 문법구조를 통해 사고체계와 세계관의 형성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는데(Sapir-Whorf 가설), 베네딕트는 사람들이 언어의 패턴을 학습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문화 패턴을 학습한다고 본 것입니다.
베네딕트는 개인은 매우 다양한 유형의 성격으로 발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나, 각 사회의 문화화(enculturation) 과정을 통하여 그 사회에 이상적인 성격으로 패턴화된다고 보았습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경 속에서 사회를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데 이것을 유지체계(maintenance system)라 합니다. 유지체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와 사회의 구조이지요.
예컨대 농촌지역과 해안지역의 지역은 환경적 조건이 다릅니다. 농촌지역에서의 생산체계와 해안지역의 생산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경제구조가 나오고, 생산물을 분배할 때 누가 얼마의 양을 가져가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서로 다른 사회구조와 법이 파생되는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유지체계가 성립되고 나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후속 세대를 교육하는 프로그램들이 발달하게 됩니다. 우리만 잘 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도 대대로 이 환경에서 잘 살아야 하니까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냥을 하는 사회에서는 사냥하는데 필요한 인간형을 만드는 교육을 할 것이고 농사를 짓는 집단에서는 농사에 최적화된 인간형을 길러낼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학에서는 사회화(socialization)라 칭하고, 인류학에서는 문화화(enculturation), 심리학에서는 내재화(internalization)라 부르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길러진 세대는 해당 문화에서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통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의 유형, 즉 패턴인 것입니다. 각 문화의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고 비슷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물론 문화를 내재화하는 정도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부모님에 대한 효(孝)를 강조하는 문화를 갖고 있지만 모든 한국사람들이 효자효녀가 아닌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불효막심한 사람들도 자신이 효도는 하지 않을지언정, 효에 대한 다른 이들의 인식과 자신의 행동이 문화적 규범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개인차와는 별개로 효에 대해 공유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떤 나라의 문화가 어떻다..는 문화에 대한 기술은 문화의 패턴에 대한 기술이지, 그 문화를 내재화하고 있는 개인에 대한 기술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미국문화에 대한 타일러의 반응은 잘못된 것입니다. 미국문화에 대해 언급한 비정상 멤버들은 미국인 개인들이 아닌 패턴화된 미국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니까요.
관건은 어떤 문화에 대한 기술이 그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했느냐는 것일 터입니다. 그 문화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패턴화되었는지 제대로 분석했다면 그 설명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감상이나 주관에 따라 다른 나라의 문화를 평가하고 또 쉽게 일반화하는 것은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문화의 패턴화라는 주제는 1차대전 이후, '문화와 성격(Culture and Personality)' 이라는 인류학의 한 학파에 의해 인류학의 연구주제로 떠오릅니다. 이제까지의 인류학이 주로 거시적인 문화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성격(personality)이라는 주제로 관심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이 학파(문화와 성격)의 성립은 인류학이 한 문화와 그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 방증입니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다시 인간(의 경험)을 만든다는 문화심리학의 대전제가 여기서 나옵니다.
인류학에서는 이를 심리인류학(psychological anthropology)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문화심리학(cultural psychology)이라고 부릅니다. 이로써, 문화심리학이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