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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r 12. 2018

옛날 사람들은 모두 불행했을까?

과거의 문화를 평가한다는 것

우리는 사라진 과거의 문화들은 대개 미개하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문화를 처음 접할 때와 비슷한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속한 문화에 익숙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문화를 경험하게 되면 반사적으로 그 문화를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죠.


저는 지금까지 자신의 문화와 다른 문화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과 그 해결방법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말씀드렸습니다. 짧게 말하자면, 다른 문화가 자신의 문화의 기준으로 아무리 괴이하고 어색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문화가 발달해 왔을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어 이해해 보자는 것입니다.


문화 이해의 목적은 결국, 다른 문화와의 공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문화는 살짝 애매합니다. 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 문화를 이해할 자료들도 부족하구요. 따라서 사람들은 옛날 문화를 이해하는 데 굳이 노력과 열정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과거의 문화를 쉽게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 쉬운 또 하나의 이유는, 인류가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진보해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이후로 인간의 삶은 점차적으로 나아져 왔다는 것이죠. 현재가 인간 삶의 가장 정점이니만큼 과거는 당연히 지금보다 불행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주일간 노동시간은 35~45시간입니다. 현재도 수렵채집 생활을 이어가는 칼라하리 사막의 한 부족은 사흘에 한 번만 사냥을 나서며, 채집에 걸리는 시간도 하루 3~6시간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만 일해도 무리 전체가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는데요.


한국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68시간입니다. 주 68시간은 하루 9시간을 일한다고 했을 때 주말에도 9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일하고도 무리(가족) 전체가 먹고 살기에 빠듯하지요. 과연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보다 행복한 것일까요?


그러나 노동시간으로 과거와 현재의 행복을 판단하는 것은 이릅니다. 수렵채집 시대의 사람들은 높은 영아사망율과 잦은 전쟁 등으로 오래 사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2천년 전인 로마 시대의 평균수명은 25세 남짓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인류의 평균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죠.


또 그러나.. 평균 수명으로 과거와 현재의 행복을 판단하는 것은 이릅니다. 100세 시대가 눈 앞인 요즘, 길어진 수명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50대에 은퇴하여 저축과 연금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말이죠. 현대인들은 훨씬 오랜 시간을 일하고 훨씬 많은 것에 신경써야 합니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는 단순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문화를 판단하는 것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크죠.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위 사진은 전족입니다. 전족은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작게 만드는 풍습으로 중국 송나라 때부터 청나라 말까지 무려 1000년을 지속돼왔습니다.


전족은 서너 살짜리 어린 여자아이의 발가락 뼈를 부러뜨려 천으로 묶어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요. 이 상태로 성장한 여성의 발은 심각하게 변형되었고 서 있는 자세에 무리를 주어 척추가 구부러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족을 만드는 험악한 방식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통 때문에 전족은 대표적인 악습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요. 중국사람들은 왜 이러한 악습을 무려 1000년 동안이나 지켜왔을까요?


현대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전족은 남성들이 여성을 사유화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죠. 전족을 하면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여성들이 달아날 수 없었고, 작은 발로 종종거리면서 걷게 되면 생식기 근육을 강화하여 남성의 성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들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전족을 금지할 때까지 중국의 여성들은 남성에게 속한 성적 대상으로서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는 설명이지요. 이러한 설명은 사실일까요? 전족에 대한 이같은 설명은 현대 여성주의 관점에서 사실입니다. 그런데 옛날 송나라나 청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중국에서 전족은 부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전족을 하면 일을 할 수 없으니 전족을 했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유한 중국 여성들에게 전족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1000년이라는 세월동안 전족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전족을 했습니다. 또한 남성들에게 전족을 한 여성들의 인기가 높았으므로(아름답기 때문에) 좋은 혼처를 찾기 위한 여성들이 전족을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대개는 딸 가진 부모들이 딸에게 시켰겠죠.


청나라 후기인 18, 19세기에 이르면 전족은 중화의 상징, 즉 야만과 반대되는 문명의 의미까지 갖게 됩니다. 여성들이 남자처럼 커다란 발로 성큼성큼 뛰어다니는 짓은 '미개하다'고 생각되었다는 뜻입니다.


문화는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할 때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1000년 동안 벌어진 사실들을 통해, 중국의 여성들이 전족을 억압의 족쇄로만 인식하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일은 최근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성을 억압하는 풍습이라며 중국의 전족을 비난했던 유럽의 여성들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있었는데요. 코르셋이 내장 기관을 압박하여 유럽 여성들은 만성 소화불량과 현기증 등에 시달렸습니다. 전족이 한창 유행하던 19세기의 일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즐겨 신는 하이힐은 어떻습니까? 7,8cm에서 최대 20cm에 이르는 하이힐의 굽은 여성의 발을 전족 못지 않게 변형시킵니다. 전족과의 차이점은 현대 여성들은 하이힐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신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죠.

하이힐은 자신있는 여성의 선택이고 전족은 억압받는 여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를 모르는 현대인의 오만일지 모릅니다. 현대 여성들이 멋진 하이힐의 곡선을 위해 발의 아픔을 참듯이 과거 중국의 여성들에게 전족의 고통은 아름다워지기 위한 당연한 조건이었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전족이나 코르셋이나 하이힐이나 모두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억압받아온 여성들의 왜곡된 욕망일까요? 현대 주류 학계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근대 이전의 여성들은 남성의 소유물로서 억압받는 삶을 살아왔고 그러한 잔재는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주장인데요. 이 또한 다시 한번 고려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전족을 하지 않았던 과거 중국의 여성들이, 하층민의 딸로 태어나 전족을 하지 못했던, 상류층에 끼지 못하고 야만인 취급을 받았던 청나라 시대의 여성들이 자신들이 남성으로부터의 억압을 거부하고 실존적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문화는 동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규정합니다. 나의 가치판단 역시 현 시대의 문화가 반영된 것에 불과하지요. 지금 우리가 좇고 있는 많은 가치들도 미래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말도 안되는 것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들은 자신이 가장 옳다고 믿고 있는 가치들을 위해 살아가지요.


내가 가장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고 따라서 이전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미개했고 불쌍했을 거라는 인식은 어디서 왔을까요? 다른 이들의 삶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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