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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n 14. 2018

이분법의 시대는 끝났다

세상을 읽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한 때

2018년 6월 12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날입니다.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악수를 나눴습니다. 


평화로의 길은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은 짧지 않겠지만 이 사건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어제의 북미정상회담은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것은 이 사건이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맞잡은 두 손은 전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경쟁하던 '냉전시대'의 마지막을 상징합니다.

냉전은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새롭게 나타난 세계의 새로운 질서였습니다.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던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은 공산주의 혁명을 가속화시켰고 곧 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려 오랜 시간 서로를 적대시해야만 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은 소련이 해체된 이후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던 냉전시대의 질서가 완전히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계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의 더 큰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화 연구자로서 제가 생각한 이 사건의 의미는

이분법 시대의 종말입니다.


냉전은 세계인들에게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했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란  흑백논리를 말합니다. 흑백의 세계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친구 아니면 적, 선 아니면 악으로 판명나는 세계인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죠.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나타냅니다. 한 쪽이 악이라면 악이 아닌 쪽은 선(善)일 수밖에 없죠. 한 쪽을 악으로 규정한 이들은 자신이 선이라는 절대적 전제에서 자신들이 규정한 악을 향해 저지르는 모든 일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국토는 남북으로 갈렸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세월이 계속되었습니다.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것이 1991년입니다. 남북은 전쟁 이후 40년 동안이나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셈입니다.


또한 공산주의자, 빨갱이, 종북이라는 낙인은 극히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빨갱이로 몰려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죽거나 장애를 입거나 그렇지 않아도 이전의 모든 사회적 지위를 잃고 평생을 감시당하며 폐인처럼 살아가야 했지요. 


분단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이들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논리는 상대를 공존의 주체로 인정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병폐인 타협의 부재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초등학생이 그린 반공 포스터

오랜 시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남과 북처럼 계층과 계층, 지역과 지역, 세대와 세대, 아래층과 위층, 남과 여 등 우리는 편이 나뉘는 순간 서로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적으로 인식해 버립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자 문화가 된 것입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우리 마음에 일으킬 궁극적 변화는 바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중단입니다. 우리는 '악의 축' 북한의 수장과 '천사의 나라' 미국의 수장이 손을 잡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제 세계는 더이상 선과 악의 이분법적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입니다.

이 돼지의 손자가 바로...

세계는 빠른 속도로 다극화되고 있습니다. 중국, 인도, 유럽, 아세안, 남미 등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들이 힘을 키우고 있고 세계 각국을 움직이는 힘은 더이상 자유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자국의 이익입니다. 수퍼맨이 단독 원탑이었던 히어로물의 세계가 어느새 다양한 출신성분의 히어로들로 가득찬 것은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세상이 실제로는 전혀 이분법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때로는 이성적이지만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선하지만 때로는 악합니다. 자유롭고 싶어하지만 통제하고 싶어하기도 하죠. 여기서는 을이지만 저기서는 갑이고, 한 곳에서는 연장자지만 다른 곳에 가면 어린 축에 듭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다른 성의 속성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존재인 인간이 하는 일들이 칼로 자른 것처럼 딱 두 가지로만 분류될 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이성과 야만, 자본과 노동, 자유와 압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선과 악으로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문화심리학은 진화와 야만, 선진과 후진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 새로운 문화 이해의 방법을 제안해 왔습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선과 악이라는 또 다른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있어 문화심리학의 기여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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