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진화의 관계
우리는 흔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본받자는 말을 합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본이나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미국, 양성평등이 잘 구현되고 있는 북유럽 등의 문화가 그 예입니다.
일견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를 본받는 데에는 유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두 나라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이 사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잘 기능하는 어떤 나라의 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환경적 조건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산물이죠. 그런 것들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도입한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까요?
지금까지 교육이나 복지, 경영 등 외국의 훌륭한 제도나 문화를 국내에 도입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그 결과는 어땠던가요? 수험생들은 매년 달라지는 입시제도에 혼란스럽고 경영이나 행정도 그 수장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방침 탓에 혼선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원래 나라에서는 잘 되던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는 이유를, 미개한 국민에서 찾곤 하는데요. 제도는 좋은데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준이 안됐다..는 설명이죠. 정말 그렇습니까? 이 모든 일들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본받는 일이 왜 어려운지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 이론을 하나 빌려 오겠습니다.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라는 개념인데요. 수렴진화란 계통적으로 관련이 없는 둘 이상의 생물이 적응의 결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익룡, 새, 박쥐의 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익룡은 파충류이고, 새는 조류, 박쥐는 포유류입니다. 그러나 세 종류의 생물은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한 결과로 날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날개의 구조는 세 동물이 모두 다릅니다. 익룡은 넷째 발가락으로 피막으로 된 날개를 지탱하며 새는 발가락뼈들이 합쳐진 뼈에 깃털이 빽빽히 나 있고, 박쥐는 길게 자란 네 개의 발가락 사이에 피막이 덮여있는 형태입니다. 날개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기원이나 비행원리까지 같은 것은 아니란 뜻이죠.
수렴진화의 보다 극적인 예는 개미와 흰개미일 것입니다. 비슷한 외형과 여왕, 생식, 노동, 군사계급으로 이루어진 계급 사회를 갖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개미와 흰개미는 전혀 다른 조상에서 진화한 생물들입니다. 벌목인 개미와는 달리 흰개미는 바퀴벌레에서 분화된 종이라고 하죠.
흔히 크릴새우라고 하는 수염고래의 주식인 크릴은 새우와는 전혀 별개의 생물입니다. 새우는 십각목 새우아목에 속하고 크릴은 난바다 곤쟁이목..에 속한다는군요. 이렇듯 자연에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기원은 전혀 다른 생명체들이 많습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진화해 온 결과죠.
문화는 어떨까요? 물론 생명체와 문화는 같은 수준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그러나 문화가 변화해가는 과정은 생명체의 진화와 유사합니다. 생명체나 문화가 변화하는 이유는 개체의, 그리고 집단의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생물이 생존을 위해 환경에 최적화되어가는 것이 진화라면,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환경에 최적화한 결과가 바로 문화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자연적+사회적)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집단의 문화는 생명체가 진화하는 것처럼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박쥐와 새의 차이는 잘 알면서 문화와 문화의 차이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거죠. 이를테면, 심리학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살아온 환경과 역사가 다른 두 나라의 문화를 그냥 '집단주의' 한 마디로 퉁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요? 그것도 과학적 학문을 표방하는 심리학이 말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사회현상을 보면 분명 '집단주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가 달라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명품 소비의 경향성입니다. 루이비X같은 명품은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많이 팔리지만 각각 다른 패턴이 나타나는데요.
일본에서는 한 브랜드(루이비X)의 같은 제품이 많이 팔리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같은 브랜드의 여러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나라 사람들이 명품을 많이 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말이죠.
전형적인 집단주의적 해석으로 이러한 소비패턴을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집단에 속해야 안정감을 느끼고 집단 내 조화를 추구하는 집단주의 문화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혹은 속하고 싶어하는) 집단의 표상으로서 특정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이죠.
크게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새, 박쥐, 익룡, 곤충, 날다람쥐가 날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현상 이면의 의미는 같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나도 그 집단에 속했다는 안정감을 추구한다면, 한국인들은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욕구를 충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자기관(주체성 자기 vs 대상성 자기)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문화에는 비슷해 보이는 현상이지만 서로 다른 심리적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생물학에서의 수렴진화와 유사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이것이 다른 문화를 '본받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어떤 문화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쥐가 새가 나는 것이 부럽다고 새의 날개를 본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무리 새처럼 날개짓을 해봐야 피막이 사라지고 깃털이 돋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히 박쥐가 새처럼 날게 될 일은 없겠죠. 박쥐는 박쥐가 나는 방식대로 납니다. 새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고 다른 문화를 전혀 본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세계의 다른 모든 문화처럼, 우리 문화도 완전무결하지는 않습니다. 문화는 변화하는 환경과 사람들의 욕구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해야 합니다.
다만, 다른 문화를 본받기 위해서는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고요. 다른 문화를 따라가기 전에 우리 문화에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부분은 없을지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야 다른 문화를 본받으려는 원래의 목적(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에 충실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