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선진국인가 아닌가..
콤플렉스란 정신역동이론의 용어로서, 어떤 대상에 대한 여러 감정과 동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힘을 말합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갖는 성적(性的)인 욕망 정도로 단순히 알려져 있는 이 개념은 사실,
남자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 어머니의 남편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질투, 자신의 욕망을 눈치챈 아버지가 자신을 해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동일시의 욕구 등이 뒤얽혀 있는, 말 그대로의 복합(complex)이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이의 마음과 행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 이유는 욕망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남자 콤플렉스에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착한아이 콤플렉스에는 착한 아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죠. 그러한 욕망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루어질 수 없거나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 일어나는 마음 속의 다양한 변화들이 콤플렉스입니다.
무의식에는 개인의 무의식이 있고 집단의 무의식이 있듯이 콤플렉스에도 집단적 수준의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현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집단적 콤플렉스 두 가지는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와 선진국 콤플렉스입니다.
먼저 레드 콤플렉스란 한국전쟁과 냉전, 군사독재와 민주화 운동을 거쳐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로 '빨갱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 주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구요. 오늘은 선진국 콤플렉스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선진국 콤플렉스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됩니다. 근대 이후로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잘 나가는 '선진국'들에 비해 초라하기만 한 슬픈 '후진국'이었습니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80년대 이전, 선진국에 다녀온 유학생과 주재원 등으로부터 듣는 화려하고 발전한 선진국의 문물은 초라한 현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죠.
"왜 우린 저런 거 없나", "왜 우린 저런 거 못 만드나", "왜 우린 이렇게밖에 못할까" 등
한국의 현대사는 오로지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길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후진국, 변방이라 규정하고 모든 부분에서 선진국이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요.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조차 '선진화' 운운하는 입간판을 흔히 볼 수 있었으니까요.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서 우리가 후진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영화, 음악 등 문화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후진국이었고, 90년대 들어 한류 붐이 여기저기서 불기 시작하는 등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때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후진국이었죠.
2000년대 K-pop이며 한국 영화가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시민의식이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후진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현재 한국은 국정농단 세력을 탄핵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코로나 방역으로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만 한국인들의 눈에 한국은 아직도 '선진국'이 아닌 듯합니다.
여전히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추세의 고령화 속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내몰리는 무한 경쟁, 분단의 역사, 미흡한 제도, 갈등의 문화..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실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부터도 우린 아직 멀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 모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끊임없이 달라지려 했고 또 나아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간의 노력의 역사까지 부정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뭐 하나 하면 선진국은 100년 전에 그런 거 했다고 침을 튀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빛나는 문명을 이룰 동안 우린 뭐했냐는 겁니다. 이러한 시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심각한 게 아니죠.
옛날에 잘 나갔다고 지금 잘 나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 말이 맞다면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이집트여야 합니다. 이집트는 유럽사람들이 수렵 채집하던 시절에 피라미드를 지었으니까요.
세상에는 영원히 번영하는 나라도 영원히 비참하게 살아가는 민족도 없습니다. 세계사에서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과거 한 시점의 문명수준으로 한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무모하다 못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한국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반도에 고대국가가 기틀을 잡기 시작할 무렵 유럽에는 눈부신 로마 문명이 전성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중앙집권적 관료시스템을 구현하는 동안 유럽은 지역의 세력가들에 의해 주먹구구식 국정운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지리상의 발견과 르네상스, 산업혁명과 현대 문명의 발전은 오랫동안 좁은 지역에서 경쟁해 왔던 유럽인들에게 먼저 찾아온 기회였을 뿐입니다. 근현대 시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비서구지역 국가들은 유럽발 세계사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으나 이러한 흐름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또 없습니다.
우리가 증거입니다. 100년 전, 아니 6,70년 전만 해도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없던,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이 빠를 거라던 이 나라는 모든 부정적인 예측을 뒤엎고 세계에 우뚝 서 있습니다.
사실 정치, 경제, 군사, 사법, 복지, 문화, 스포츠.. 모든 면에서 우수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죄 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는, 심지어 땅도 넓고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기후도 적당한 데다가 국민 통합도 잘 되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선진국이란 마음 속의 이상,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를 말합니다. 유토피아에 비하면 여기는 초라한 후진국에 불과하죠. 이것이 '선진국 콤플렉스'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좇아 달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수십 년 '선진국'이 되겠다는 동기를 빼고서는 한국의 발전을 이해할 수 없죠. 하지만 그것이 이제까지처럼 열등감이 바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제대로 된 자기상, 객관화된 자신의 모습에서 제대로 된 관계와 전략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잘 나간다고 앞으로도 잘 나가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부족한 것은 개선해 나가되 자신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하할 것도 없고, 남들보다 잘 한다고 지나치게 우월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나아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말입니다. 우리가 잘 해 나가고 있음은 충분히 자부심은 가질 만합니다. 잘 하고 있는 것도 애써 무시하고 이미 이뤄낸 현실에 불만을 갖게 하며 '존재하지 않는' 목표를 향해 채찍질을 하는 것이 바로 콤플렉스입니다.
한국이 선진국인가 아닌가는 사실 무의미한 질문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객관적 지표들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라는 생각은 오직 선진국 콤플렉스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천국과 비교할 때 지상의 어느 나라도 지옥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콤플렉스의 극복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여러 모로 우리에게 자기객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듯 합니다. 당장 그동안 '선진국'이라고 맹목적으로 좇아왔던 여러 나라들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으로 시작된 2020년은 한국인들에게 '선진국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원년이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