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일본인 vs 감정적 한국인?
이성적 일본인 vs 감정적 한국인?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에 대해 많이 언급되는 말 중에 일본인은 이성적이고 한국인은 감정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 외교문제 등에서 한국의 반응을 비판할 때 많이 나오는 주장입니다. 일본은 이성적인데 한국은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주장은 일견 맞는 듯해 보입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감정표현이 덜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비교문화심리학의 연구들에서 집단주의 문화를 대표하는 일본인들의 감정표현은 그 폭이나 빈도에 있어서 개인주의 문화권에 비해 확실히 적게 나타납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인의 감정표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었습니다. TV에는 쓰나미로 아들을 잃은 젊은 어머니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는데요.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던 일본 어머니는 밀려드는 슬픔에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애써 웃음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서 그 일본 어머니의 감정이 매우 생소했는데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이고 손발이 떨릴 정도인데 웃음을 보일 수 있다니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몇년 후, 한국에서는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배에 갇힌 채 수장되는 불행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소리내어 통곡했습니다. 이를 본 고위관계자가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는 표현을 써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지요.
문화는 구성원들의 감정표현 방식을 결정합니다. 해당 문화에서 선호하는 가치에 따라 특정 정서의 표현은 억제되거나 권장되는데요. 이를 문화적 표출규칙(cultural display rule)이라고 합니다.
비교문화심리학에서는 대개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감정표현이 크고 많은데 비해 집단주의 문화권은 감정 표현도 작고 그 빈도도 적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개인주의 문화권 내에서도 집단주의 문화권 내에서도 차이가 존재하죠.
사실 대표적인 것이 집단주의 문화권 안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입니다. 비교문화심리학에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감정표현에 있어서의 차이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특히 슬픔의 표현에 있어서 두드러지는데요.
아무래도 집단주의 문화에 속하는 만큼 한국인들도 대외적으로 지나친 감정표현은 자제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일본인들과 비교하게 되면 사정이 다른데요. 한국인들은 슬픔은 물론, 분노나 잘난 척 등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집단의 조화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표현이 자제될 것으로 기대되는 정서를 훨씬 많이 표현합니다.
물론 그런 표현이 가능한 상황과 맥락이 있는데요. 자신과 잘 모르거나 공적 관계인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표현을 덜 하지만 가족, 친지, 친구들과 같은 사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솔직하고 거침없이 감정을 드러냅니다.
일본인들과는 이 점에 있어서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일본인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잘 아는 이들일지라도 그들에게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대신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걸맞는, 혹은 주변에서 자신에게 기대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표현방식을 다테마에(建前)라고 합니다. 본심인 혼네(本音)는 가족이나 배우자에게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죠.
제패니즈 스마일(Japanese smile)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낯선 사람에게도 곧잘 지어보이는 친절한 미소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입니다. 일본인들은 이를 ‘아이오 와라이’ 즉 꾸민 미소, 억지 미소라고 부르죠.
상대방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짓는 미소인데요. 동일본 대지진 인터뷰에서 보았던 일본 어머니의 미소가 이것입니다. 물론 일본인들은 그 미소 뒤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토록 큰 슬픔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보일 수 있는 어머니의 절제력에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문화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러나 감정표현의 억제는 정신건강에 그리 이롭지 못하다는 것은 심리학의 상식입니다. 일본 문화를 지배하는 감정의 은폐와 억제라는 규칙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습니다. 감정표현을 억제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다가 감정표현불능증(예,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에 빠지기도 하고, 밖에서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억제하다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폭발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도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대신 규칙을 어겼을 경우에는 매우 엄격한 훈육이 뒤따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인정과 공감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양한 맥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이러한 양육방식은 아이들의 공감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론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의미하는데요. 지난 수십 년 간의 연구를 통해 심리학자들은 만 3~5세에 이 능력이 획기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본 아이들의 경우, 이 능력이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평균 4개월에서 11개월, 최대 2년 가까이 늦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일본 심리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아이들은 같은 시기의 서구 아이들보다 공감능력의 발달이 빨랐는데 말이죠.
일본 아이들의 늦은 공감능력의 발달에는 집단주의 문화나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점이 아닌 일본문화만의 특성이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 심리학자들이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지나치게 엄격한 일본의 훈육방식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의 부모들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엄격한 양육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심리학자 마스이 히로시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 ‘부모를 존경하지 안는다’, ‘부모와 대화하지 않는다’ 등의 항목에서 일본은 한국, 중국, 미국, 터키 등 6개 나라 중 가장 부정적인 응답을 보였습니다. 과거 제가 관여했던 연구에서도 일본 대학생들은 부모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한국 학생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고 때로 지나치게 오냐오냐 해주는 것 같은 한국의 양육태도는 높은 공감수준과 자기가치감으로 이어집니다. 사교적이고 자아탄력성이 높은 성격이 되기 쉽죠. 물론 일본인들은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부족한 감정교류와 엄격한 훈육은 다른 이들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성격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가치감도 매우 떨어지겠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것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은 이것이 회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이지화(Intellectualization)라는 방어기제입니다. 이지화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감정이나 태도를 고립시키고 문제를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경향을 의미하는데요.
이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이들은 불안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자신의 경험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고통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성적인 어휘들을 과다 사용하거나 추상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세부설명을 늘어놓는 등 상황에 연결된 감정을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은 감정표현을 대단히 제한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불쾌하고 수준 낮은 행동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기보다는 이지화와 관련된 행동양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갈등 앞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던가 아예 문제 자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 말이죠.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한국인들이 공감수준이 높고 감정표현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도 문화적 이유로 감정표현에 유난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년 남성들이죠. 가부장적 질서와 권위주의적인 직장문화는 중년 남성들의 감정 인식과 표현에 저해가 됩니다. 최근 중년 남성들의 우울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경우는 주로 감정 조절이 관건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는 범죄나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감정의 극화는 이분법적 사고나 파국화 같은 인지적 오류를 유발하거나 우울 등의 감정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마음의 습관과 관계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건 확실하죠. 하지만 일본인들이 매사에 이성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서점 한복판에 혐한(嫌韓) 코너를 따로 두고 주말마다 혐한시위가 벌어질 리는 없을 테니까요.
거꾸로 보자면,
매사에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행위양식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 어려워하고 감정 표현을 불안해하는 데서 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한 조언은 직면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성찰하여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것이 아무리 자신의 치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