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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Sep 29. 2020

문화는 코끼리다

문화의 다면성 이해하기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개미가 코끼리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문화의 모든 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는 큽니다. 머리도 크고 몸도 크고 다리도 크죠. 개미 한 마리가 한번에 둘러볼 수 있는 코끼리의 몸은 극히 일부입니다.     


어떤 개미는 길다란 코만 볼 것이고 어떤 개미는 드넓은 등짝 위에서 하루를 다 보내겠지요.  어떤 개미는 기둥같은 다리에서, 어떤 개미는 어둡고 냄새나는 어딘가에서 헤매다닐 겁니다. 그러니 각각의 개미가 코끼리를 제대로 이해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문화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요. 문화에는 밝고 희망찬 부분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절망스런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합리적인 측면도 있고 반대로 완전히 비이성적이어 보이는 측면도 있죠.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술은 사람들을 가깝게 해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능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음주운전, 주취폭력, 알콜중독 등 해악도 만만치 않은 것이죠.   

   

이렇게 다양한 측면이 있는 이유는 문화란 실제로 거대한 생명체처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생물과 문화의 공통점은 둘 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에는 생존과 번식(사회유지)에 필요한 여러 요소와 기능들이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하고 소화시켜야 하고 배설해야 하죠. 코끼리는 덩치가 크니까 많이 먹어야 하고 많이 먹으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하니까 다리도 튼튼해야할 겁니다. 높이 있는 나뭇잎을 따 먹으려다보니 코가 길게 늘어나 잡을 수 있게 됐겠죠.      


문화도 이와 같습니다. 살아가려면 먹어야 하고 먹었으면 싸야 합니다.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일하다 지치면 놀아야 하죠. 모든 문화에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들을 충족하기 위한 저마다의 방식이 있습니다. 문화에 이런저런 양면적이고도 모순되는 측면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코끼리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본 문화의 한 측면을 그 문화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는 마치 코끼리의 코에 붙어있던 개미가 코끼리는 구불거리는 거대한 뱀이라고 생각하거나 항문 근처에만 머물렀던 개미가 코끼리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큰 구멍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소위 ‘표집의 오류’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교류하며 지냅니다. 그래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그러한 내집단 안에서는 서로 알고 있는 그렇고 그런 정보들 중에서 더 극단적인 것을 선택하게 되는 ‘집단극화’나 동조 압력으로 충분한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의사결정에 이르는 ‘집단사고’가 나타나게 됩니다.     


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하는 이야기들이 대개 이런 종류들입니다. 언제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고정관념과 편견에서부터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문화의 단편, 개인적 경험들의 조각들이 모여 어떤 문화에 대한 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죠.     


‘한국사람은 정(情)이라는데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각박하냐’

‘일본 사람들 속 모른다던데 내가 아는 일본인은 안 그렇던데?’

‘내가 미국 가봤는데 한류 하나도 없던데?’     

내 주위에 BTS 듣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그러나 내 경험이나 내가 아는 사람의 경험은 문화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느 한 측면만 보고 문화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매우 위험한 일이죠.     


문화는 저마다의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나름의 원리에 따라 작동해 가는 총체입니다. 따라서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문화의 기능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냥 괜히 존재하는 문화는 없습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죠. 이러한 문화의 기능에 주목하다보면 어떤 문화현상의 다양한 측면이 퍼즐이 맞춰지듯 새롭게 이해되실 겁니다.      


또한 문화에는 사회 유지와 구성원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도 있고 도대체 왜 저런 게 있나 싶게 불필요하고 역기능적인 것들도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신 듯도 한데요.      


그런 현상은 일부 사람들의 일탈일 뿐이고 그 나라의 문화가 아니라고 부정해버리든지 아니면 그 나라의 문화가 저 모양인 걸 보니 저 나라 사람들도 저 모양일거라고 생각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기능적인 문화도 분명 문화입니다. 바람직하게만 보이는 문화일수록 어두운 측면도 많이 숨어 있는 법이죠.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빛과 그림자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역기능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도 분명 기능이 있을 테니까요. 똥냄새가 지독하다고 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항문을 막아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똥은 먹은 음식 중에 다 소화되지 못한 것들이 몸 안의 노폐물과 섞여서 배출되는 것입니다. 배설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죠. 하지만 똥냄새가 지독해서 사람들은 화장실을 집에서 멀리 만들거나 물로 바로 처리할 수 있게 하거나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때로는 농작물의 비료로, 연료로, 집 짓는 재료로 활용하기도 했죠.     


이것이 더럽고 불필요해 보이는 문화들이 지속되어 온 이유입니다. 갑자기 똥 이야기로 마무리가 됐는데요. 현명하신 독자님들께서는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지 다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물론 저도 문화심리학자 이전에 한 개인인지라 제가 볼 수 있는 세계는 한정돼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문화를 폭넓게 바라보는 공부를 한 것이구요. 여전히 제가 보는 것이 전부이고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실로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의 여러 측면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다는 점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끔씩 소개하는 매우 부정적이고 역기능적인 문화들에는 ‘그 문화를 옹호하는거냐?’ ‘그 문화를 인정하자는 거냐’는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요. 이해는 인정 혹은 수용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해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원리와 이유를 알자는 거고요. 인정이나 수용은 그런 현상을 받아들이고 또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는 곳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문화를 계속해서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 갑니다. 더 바람직한 문화를 위해서라도 그렇지 못한 문화들도 이해할 필요가 있죠.     


그러나 그것이 ‘옳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거나 나도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어떤 문화가 옳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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