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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l 01. 2022

미국 총기 범죄의 심층심리

미국인들에게 총이란 무엇인가

6월 24일 미국에서 총기규제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1993년 공격용 소총을 금지하는 법안 이후 29년만의 쾌거(?)라는군요. 법안의 내용은 1. 총기를 구매하려는 18에서 21세의 신원 조회를 위한 미성년 범죄 및 기록을 제공, 2. 총기를 구매하려는 미성년자의 정신 건강 상태 검토(10일간), 3. 총기 판매 업자에 대한 신원조회가 의무화, 4. 총기 밀매에 대한 처벌도 강화 등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3억 9300만 개의 총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비영리 연구 그룹인 총기 폭력 기록 보관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작년 한해 미국에서 총기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20,900명을 상회합니다.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있어 왔는데요. 

전미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 등으로 계속 흐지부지되어 오다가 올해 5월, 뉴욕주 버펄로에서 흑인 10명,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초등학생 19명이 사망하는 대형 총기사건이 터지면서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이 급증하였고 이번 법안의 상정과 통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법안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총기 판매를 아예 금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총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다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유명한 전미총기협회(NRA)의 영향력과 이들과 무관하지 않은 정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된 걸 보면 이 정도의 법안이 통과된 것도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자 어린이들을 위한 핑크 소총

이번 글에서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의 총과 총기 난사 사건의 심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많은 이유는 일차적으로 총이 많기 때문이죠. 수많은 무기 회사들이 다양한 총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총기 보급에 힘쓰고(?) 있습니다.


여성, 어린이들을 위한 총기 모델이 나오고 동네 마트에는 총알 자판기가 있을 지경이죠. 주변에 총이 흔하니 범죄를 저지르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총을 도구로 쓸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가족이나 지인을 범죄자로 오인하여 쏘거나 어린아이들이 장난을 하다가 오발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당 부분은 총이 옆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죠.

총알 자판기

그러나 모든 사회적 현상에는 심리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미국의 총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미국인들이 이토록 총을 사랑(?)하고 총으로 뭔가를 하려는 동기가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의 총기 사랑은 일단 역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총의 나라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이민자들의 정착지로 출발한 미국은 치안, 행정 등 국가 시스템이 미비했고 사람들은 사나운 야생동물, 인디언, 도적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었죠. 

영화 <아메리칸 아웃로>

총은 또한 기회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서부에서 발견된 금광은 많은 이들에게 기회이자 재앙이었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은 상황을 틈타 남이 힘들게 벌어 놓은 돈을 총 하나면 빼앗을 수 있었으니까요. 미국 영화에 나오는 은행강도, 열차강도, 무법자들은 총 한자루를 손에 들고 일확천금을 꿈꿉니다. 


물론 모두가 강도짓을 하지는 않았겠습니다만 기회의 땅 미국에서 어렵게 얻은 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은 필요했습니다. 보안관이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고 총을 든 보안관들조차 악당들의 총에 죽어나가기 일쑤였으니 결국 직접 총을 드는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후 영국과의 독립운동과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에게 총의 의미는 더욱 각별해졌습니다. 내 손에 든 총은 나와 내 가족, 내 나라를 지켜낸 자부심 같은 것이죠. 미국인들이 총기 소유를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때문에 전미총기협회 같은 단체도 생겼고 갖은 로비로 총기 규제를 막아온 역사도 가능했던 것이죠. 

텍사스 월마트 총기난사 범인

다음은 이른바 총기 난사 범죄를 일으키는 범죄자들의 심리를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하루 한 건 이상의 총기 난사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강도 등의 범죄를 위한 총기 발사나 오인, 오발 등에 의한 사고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총기 난사 말씀입니다.


이 총기 난사야 말로 상당히 미국적인 유형의 범죄인데요. 다른 나라에서도 간혹 총기 난사 사건이 있긴 하지만 미국처럼 자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나라는 없습니다. 물론 미국에 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의 문화와 미국인들의 문화 심리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총기난사를 일으키는 범죄자들이 일종의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다른 이들의 생명을 언제든 거둘 수 있다는 전능감이 총기난사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의 마음에 깔려 있다는 건데요. 이러한 생각을 확인하게 된 계기는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의 한 장면에서였습니다.

웨스트월드의 NPC 테디와 돌로레스

<웨스트월드>는 A.I.로봇들이 등장하는 미래 테마파크의 이야기입니다. <웨스트월드> 시즌 1에서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서부 마을이 그 배경인데요. 사람들은 서부개척시대의 인물이 되어 '웨스트월드'의 사람들(로봇)과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즐깁니다.


그곳에서는 마음먹은 무슨 일이든 가능합니다. 심지어 살인, 강도, 강간 등의 범죄도 허용되는데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A.I.를 탑재한 로봇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웨스트월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면서 테마파크의 기능을 잃게 되고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포드 박사

웨스트월드의 설계자 포드 박사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피조물(로봇)들을 하나하나 처단합니다. 자신이 만든 세상을 스스로 없애겠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저는 여기서 어떤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 타락하자 스스로 그 세상을 멸하는 모습.. 바로 기독교의 신(God)입니다. 


미국인들의 마음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깊습니다. 미국인들의 선조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을 찾아온 필그림들이었고 기독교와 성경은 미국의 건국 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죠. 아직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반복적으로 학습된 신의 이미지와 신의 섭리, 신이 만든 세계의 모습은 미국인들의 심리 구조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인류학과 문화심리학에서는 유형화(패턴화)라 합니다. 한 문화의 독특한 사고 및 행동의 방식이 개개인들에게 내재화되는 과정이죠.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좌절과 절망으로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멸하는 창조주의 입장이 되어 '이 세상을 끝내겠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요. 이때 총은 그를 '전능하게' 만들어 그 생각을 실현시켜 주는 도구가 됩니다.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난사 범인

물론 미국의 종교적 배경이 모든 사람을 총기난사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총기난사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오랫동안 미국인들 사이에서 공유된 공통된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마음에 그러한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드라마 <웨스트월드>에도 묘사된 서부개척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때야말로 현대 미국의 토대가 완성된 때이자, 초기 이민자들의 종교적 열정과 새로운 세계의 창조, 손에 쥐면 누구든 전능하게 만들어 주는 총이 함께하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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