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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21. 2024

종교는 어떻게 생겼을까?

최초의 종교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 동안 해와 달, 별들을 바라보고, 지진과 화산, 태풍과 홍수 등 자연의 거대한 힘을 목격하며, 사람들은 어떤 전능한 존재를 상상했을 것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도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초라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자연에 의지해야 했던 과거의 인간들이 자연에서 느꼈을 경외감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상상력은 지능에서 비롯된다. 무리생활을 시작하고 협동해서 사냥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고기를 섭취하게 된 인간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뇌 용적의 증대다. 짐승 고기의 단백질은 신경세포(뉴런)를 만들고 지방은 수초(미엘린)를 형성하며 신경망은 더욱 정교해졌다. 


발달한 뇌는 더욱 복잡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결국 언어의 사용과 문명의 발달로 이어졌다. 말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인간은 고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으며 복잡한 사회 조직을 구성하여 문명을 일구는 한편,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고대 인간의 상상력을 짐작할 수 있는 근거는 장례 의식이다. 최초의 장례는 약 10만년 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소 수만 년 전부터는 인간의 거주지 근처에 장례의 흔적이 발견된다. 장례란 산 자들이 죽은 자와 이별하는 의식으로서 고대인들이 장례를 치렀다는 사실은 그들이 사회를 이루고 구성원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장례와 관련해서 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물증은 고인돌을 비롯한 거석문화다. 세계적으로 거대한 돌들을 가공해 세운 유적들이 발견되는데, 1만년 전에서 수천 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이것들은 죽은 자들의 무덤(고인돌)인 경우도 있고 영국의 스톤헨지와 프랑스의 카르낙 유적처럼 그 자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들(선돌, menhir)도 있다. 


거석 유적들은 거대한 돌을 옮길 만한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의 등장과 그곳에서 행해졌을 의식(동물뼈나 그릇 등의 출토로 알 수 있는)을 추정케 하며, 이는 그러한 의식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한 신앙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거석 유적들의 건설 시기를 예전에는 농경이 시작된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렵채집 시대의 부족 크기는 100명~150명 수준이었고 이 정도 인원으로 무게가 수백 톤에 이르는 돌을 옮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톤헨지

따라서 농경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다음에야 이러한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르면 종교의 탄생은 인류가 정착하고 농경을 시작한 이후, 즉 신석기 후기에서 초기 청동기 시대로 추정한다.


그러나 최근(2014년) 튀르키예에서 이제까지의 가설을 뒤엎을 만한 유적이 발견되었다. 튀르키예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괴베클리 테페’라는 이 유적은 T자 형 돌기둥 200여 개가 스무 겹 이상으로 둘러싸인 형태다. 이 유적이 논란이 된 것은 건설 시기 때문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지금으로부터 1만 1700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시대는 초기 신석기 시대, 다시 말해 인류가 농경과 정착생활을 시작하기 전이다. 


괴베클리 테페의 큰 돌은 크기가 5.5m에 이르며 무게 역시 10톤에서 20톤에 추정된다. 조직화된 집단과 노동력이 없었던 시대의 사람들이 이만한 규모의 건설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동기가 있었다는 뜻이다. 


학자들은 그 동기를 종교라 생각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종교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로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모여 살다가 농사를 짓고 정착하게 되었다는 가설이다.


2019년에는 괴베클리 테페에서 38km 떨어진 카라한 테페라는 곳에서 T자 형 기둥 250개로 이루어진 괴베클리 테페보다 더 거대한 유적이 발견되었고, 주변 각지에서 이와 유사한 유적들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신전 주변에서는 탄화된 곡물과 맷돌 등 농경의 흔적이 출토되어 이러한 가설에 힘을 더한다. 

괴베클리 테페

충분한 인구도 조직화된 사회도 없었던 시기의 사람들에게 이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짓게 했던 종교는 어떠한 형태였을까? 괴베클리 테페와 인근 ‘신전’에서 발견된 T자 모양 기둥에는 곤충과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지역 일대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던 존재들에 대한 주술적 의미였을 지도 모른다. 


한편, 별과 관련된 신앙이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는 현재는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볼 수 있지만, 기원전 1만년 전에는 1년 내내 지평선 아래에 있는 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원전 9300년 무렵 지구의 세차 운동으로 인해 관측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밤하늘에 나타난 밝은 별을 종교적으로 신앙하기 위해 괴베클리 테페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태양과 달, 별 등의 천체와 천체 운동이 초기 종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그럴 법한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별자리와 행성의 움직임은 계절의 변화와 동물의 이동 시기, 식물의 파종과 수확 등 고대인들의 삶에 매우 밀접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밤하늘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고인돌의 성혈(星穴) 출처: 문학뉴스

따라서 어느 문화권에나 별의 움직임으로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점치는 행위들이 있었다. 수성(Mercury), 화성(Mars), 목성(Jupiter), 토성(Saturn) 등 태양계 행성들의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왔고, 수많은 별자리에 수많은 인간과 신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에도 성혈(星穴), 즉 별자리를 새긴 구멍들이 있고, 별에 대한 믿음은 일월성신, 칠성 신앙 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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