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귀인과 능력주의의 함정
현실을 불행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마음 습관은 외부 귀인, 즉 남 탓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핑계다. 물론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가난한 건 네 탓이니까 네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노력해라,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상황에는 내 탓과 남 탓만 있는 게 아니라 상황 탓도 있다. 개인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의 문제도 있고 국내 정세나 세계 정세, 역사적 흐름 등 개인이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가 상황을 만든다. 그것들은 누구 때문인가. 무조건 특정 집단 탓, 특정 개인 탓을 하면 문제 해결도 어렵고 지금 상황도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마음 습관에는 남 탓이 뿌리깊다. 일례로 한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 중에는 핑계에 관한 속담이 굉장히 많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 “도둑질을 하다 들켜도 변명을 한다.” 이런 속담이 전형적인 외부 귀인과 관련된 속담이다.
핑계는 내가 한 일에 대한 변명이나 구실이다. 핑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인지 1970~1980년대에 외국 학자들이 쓴 글을 보면 한국인은 핑계를 많이 댄다는 묘사가 있다.
그 원인을 찾는 귀인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핑계는 자기 고양적 귀인에 해당한다. 자기 고양이란 나를 높인다는 말이다. 나의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식의 귀인이 핑계, 남 탓이다.
최근 집단 간의 갈등, 사회적 갈등이 굉장히 심해지고 있는데 대부분 집단을 탓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세대 간 갈등은 청년 세대가 노인 세대를 탓하고 산업 현장이나 회사에서는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를 탓하며 “쟤네들이 이기적이어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다”라고 한다.
또 성별 갈등에서는 “이것은 남자 탓이다” “이것은 여자 탓이다” 하며 서로를 탓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남 탓은 전형적인 자기 가치가 높은 사람들의 귀인 양식이다. 한국인들이 남 탓을 많이 하는 이유는 첫째, 한국인들의 자기 인식에 있다. 높은 자기가치감으로 특정지어지는 한국인들의 자기관은, 특히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을 때 자신의 능력부족이나 실수보다는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게 만든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인들이 누구보다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하면된다'는 개발시대 이후로 한국인들의 좌우명이었다. 일제강점기 36년의 수탈에 한국전쟁을 겪으며 황폐화되고 심지어 분단된 국토, 믿을 것이라고는 스스로의 잠재력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왔다.
그렇게 '하면 된다'는 생각은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실제로 많은 성취로 이어졌으니 한국에서 노력은 곧 성공을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내가 노력을 충분히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때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을 불행하게 만드는 마음 습관 중 노력 귀인과 능력주의가 있다. 노력 귀인은 누군가의 성공은 노력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주로 내가 아닌 제3자의 성취를 판단할 때 나타나는 경향이다. 즉, 성공하고 성취하지 못한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현재 한국을 만들어 온 '하면 된다'는 가치관은 한편으로 '안 되면 안 한 것이다'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공부가 부족했던 것 아니야?” “노력해서 더 좋은 대학을 못 가서 그런 거 아니야?” “더 열심히 일해서 승진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누군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역시 노력 부족으로 치환해 버리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분명 잘못되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 100% 남의 탓이 아니듯이 남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100% 그의 노력 탓이 아니다. 노력에 대한 상이한 인식은 나와 타인의 경우를 다르게 생각하는 자기고양적 귀인의 결과다.
또 하나, 능력주의는 능력이 있으면 능력만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드러나고 있는 관점이다. 나는 능력이 있고 저 사람은 능력이 없는데 나는 못 얻은 것을 저 사람이 얻으면 굉장히 부당하다고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마음 습관이 능력주의다.
능력주의 또한 한국인들의 노력과 관계가 깊다. 맨손으로 일어서야 했던 한국의 현대사에서 누군가의 성공은 그 사람의 온전한 노력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사회에는 인프라라고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었고 신분제가 없어진 상황에서 가문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은 능력있는 사람(노력은 당연하고)이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능력없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주로 자신이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런 이들 중에 자신이 노력했는데도 꿈이 이루어지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부당하다, 세상이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100퍼센트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또한 세상 사람들이 능력이 있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내 노력이 온전히 나만의 능력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100퍼센트 나의 노력이고 능력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현황표를 보면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사교육비에 돈을 많이 지출한다는 결과를 볼 수 있다. 즉, 소득이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면 더 좋은 조건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성공에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크다는 것이다.
내가 능력이 있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나는 100% 성공해야 하고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남 탓을 하거나, 내가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을 100퍼센트 나의 노력과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력부족, 능력부족을 탓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변화하는 외부 조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아낼 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요구되는 것은 노력과 능력, 성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