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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종교

분리와 불안, 불안에서 실존으로

by 한선생

에리히 프롬은 분리(separateness) 경험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보았다. 정신역동이론에서 분리는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던 아기가 태어나 어머니와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탯줄에 의해 영양을 공급받던 아기는 어머니와 한몸이나 마찬가지다(근원적 결연, primacy ties).


태어나는 순간 연결은 끊어지고 아기는 독립적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에 비해 매우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인간의 특성상, 아기는 상당 기간 생존을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는 자신이 어머니와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배가 고프면 젖을 주고 졸리면 재워주고 심심하면 놀아주는 어머니가 늘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인지와 신체적 능력이 발달하면서 아기는 점차 자신이 어머니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미약함에 불안과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스스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실험하기도 하면서 아기의 자기(self)가 형성되어 간다. 마가렛 말러는 이러한 과정을 분리-개별화 이론으로 정리하였다.

03030807_erichfromm.jpg 에리히 프롬

프롬은 이 분리라는 개념을 인류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생존을 자연과 신(神)에게 의존하던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신들의 세계에서 ‘분리’된다. 엄마의 품을 떠나 세상을 탐색하는 아기처럼 자연을 변형시키고 도시를 만들며 인간의 독립성을 실험하던 인류는 때때로 심각한 분리 불안을 느꼈다.


아직 미약한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낄 때마다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인류는 모든 것을 주관하는 신에게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프롬이 이야기하는 종교의 기원이다.


다시금 인류에게 분리의 불안이 찾아온 것은 인간의 이성이 ‘발견’되고 신 중심의 질서가 종말을 고하게 된 근대의 일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세계의 모든 부분이 샅샅이 드러났으며 인간이 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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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1급 토종 문화심리학자 한민입니다. 문화와 마음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mail: rainmaster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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