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슈탈트 심리학과 문화심리학
심리학 개론을 읽다보면 '게슈탈트gestalt'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보통 지각심리학을 다룬 부분에 등장하는 이 낯선 용어는 독일어로 '형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는 모토로 인간의 심리적 경험을 부분과 요소로 쪼개는 데 반대하고, 같은 이미지일지라도 주의의 방향 혹은 맥락에 따라 달리 지각될 수 있음(다른 의미)을 강조한 심리학의 흐름을 '형태심리학(Gestalt psychology)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심리학개론에서 주로 '지각의 원리' 부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 게슈탈트 심리학과 문화심리학의 관계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기차 여행 중이던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가 창밖의 경치를 보다가 영감을 얻어 창시했다고 전해집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창 밖을 내다보던 베르트하이머는 기차의 벽과 창문틀이 시야를 가리고 있음에도 창 밖의 경치를 지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프랑크프루트 역에서 내렸을 때, 당시 유행하던 '스트로보스코프'라는 장난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로보스코프는 아래 사진처럼 생겼는데 회전하는 원통 안에 연속적인 사진들이 늘어서 있고 원통 바깥의 틈으로 보게 되면 마치 사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난감입니다. 이후 영화산업의 모태(?)가 됩니다.
이것을 들여다보면서 베르트하이머는 그 유명한 가현운동(파이현상)에 대한 실험을 고안합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 전구 두 개를 번갈아 켜면 빛이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빛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위치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베르트하이머의 이 실험(1912)으로 게슈탈트 심리학이 이론적으로 구축됩니다. 빌헬름 분트에 의해 출발한 심리학이 명실상부한 실험으로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죠. 게슈탈트 심리학은 주로 시지각 분야에서 이론을 발달시켜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가지 지각원리들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성과를 남깁니다.
아래 그림은 완결성의 원리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삼각형을 몇 개나 찾으셨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개의 삼각형이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굵은 선으로 된 삼각형 위에 흰색 삼각형이 거꾸로 놓인 모양이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그림에 삼각형은 없습니다. 자신이 본 자극에서 완결된 이미지를 찾으려는 경향 때문에 여기에서 두 개의 삼각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게슈탈트 심리학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마음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밝혔다는 점에 있습니다. 눈으로 들어오는 자극 자체가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의지가 개입함으로써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즉, 게슈탈트 심리학은 단지 형태지각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능동성에 관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게슈탈트 심리학과 문화심리학의 접점이 있습니다. 베르트하이머의 게슈탈트 심리학은 그의 제자들인 볼프강 쾰러, 쿠르트 코프카 등에 의해 이어지는데, 베르트하이머의 영향을 받은 학자 중에 쿠르트 레빈이란 양반이 있습니다.
장(場) 이론, 현대 사회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바로 그 레빈입니다. 사회심리학자로서의 레빈만 아는 사람들에게 이 양반과 게슈탈트 심리학은 다소 뜬금없는 연결로 보입니다. 과연 레빈과 게슈탈트 심리학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레빈은 베르트하이머의 제자 코프카가 재직하던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하면서 게슈탈트 이론에 심취했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이 지각, 특히 시지각에 대한 것이었다면 레빈은 이후 게슈탈트 이론을 전반적인 인간 경험으로 확장시킵니다.
레빈의 장 이론(Field theory)은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은 그를 둘러싼 환경(장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이 (사회적) 상황에 따른 인간행동을 다루는 심리학이라는 점에서 장(場)의 중요성을 강조한 레빈이 현대 사회심리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여기서 장(場)이 바로 부분의 합 이상인 전체(게슈탈트)입니다. 장(환경, 상황)은 여러 사람들과 사물 등의 물리적 조건들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단지 그 구성요소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예측할 수는 없지요. 이것이 장(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경험입니다.
레빈이 장이론에서 강조하는 것은 생활공간(Life space)이라는 개념입니다. 생활공간이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전체를 의미하는데, 개인을 둘러싼 심리적 환경을 뜻합니다. 심리적 환경은 개인에 의해 지각된 사상(事相)들로 구성되며, 때문에 어떤 대상이 객관적(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개인의 심리 내에서 기능하는 측면에 초점을 둡니다.
다시 말해, 개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생활공간에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개인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마음(심리)을 구성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벡터, 방향, 함수 등의 물리학적/수학적 용어로 설명되어 있지만 장이론의 기본 전제는 매우 구성주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구성한, 그리고 여러 개인들에 의해 공유되는 심리적 환경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문화는 기온이나 강우량, 지형 등의 물리적 환경과 그 지역에 사는 동식물 등의 생태적 환경,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든 건축물, 도구 등의 물리적 환경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 도덕, 가치관 등의 심리적 환경, 주변의 이웃들과의 역사적 관계와 상호작용 등이 포함된 역동적인 장(場)입니다.
이 장(場)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의 의미, 특정 대상과의 관계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완전히 같은 행동이지만 문화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 있죠?
손으로 만드는 OK 사인은 영미권 문화에서는 대개 좋다, 알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돈을 의미하는 손동작이기도 하고, 중동이나 아프리카, 브라질에서는 엄청나게 외설적인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이 간단한 손동작의 의미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화라는 장(場)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의미가 공유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죠. 우리가 문화 차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문화라는 장이 달라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은 문화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문화적 가치를 학습하고 문화적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문화란 우리를 둘러싼 장(場)이며 여러 가지 물리적, 심리적 요소들의 합, 즉 게슈탈트인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심리학은 문화라는 '장(場)'과 인간행동의 관계를 밝히는 심리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야기하는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실험하여 인간 행동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심리학은 결국 문화심리학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 편협한 사고에 갇힌 분들이 문화심리학을 사회심리학에 반하는 어떤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계시지만 심리학은 결국 인간 이해를 위한 학문이라는 것이죠.
사회심리학이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통제하고 조작하여 인간 행동의 보편적 원리를 발견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문화심리학은 다양한 상황과 조건(문화)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동의 다양성과그 의미들을 발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고 또 상호보완적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