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직진.

아이유 - unlucky

by 조미래


기를 쓰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냐

하루 정도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럼에도 역시 완벽하군 나의 여인

hmm

여전히 무수한 빈칸들이 있지

끝없이 헤멜 듯해

풀리지 않는 얄미운 숙제들 사이로

마치 하루하루가 잘 짜여진 장난 같아

달릴수록 내게서 달아나

Just life, we're still good without luck

길을 잃어도 계속 또각또각 또 가볍게 걸어

(take your time)

There's no right 실은 모두가 울고 싶을지 몰라

슬퍼지고 싶지 않아서 화내는지도 몰라



대학에 가면 실컷 놀 수 있다던 어른들의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나의 동기부여를 위함이었을까, 꼭 입시에 성공하라는 최면이었을까. 입학 초기까지는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지만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현실을 깨달았다. 절망적으로 쌓인 전공 과제들과 팀플, 믿고 싶지 않은 양의 시험 범위까지. 무료버스도 아닌데 무임승차하는 인간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팀플을 시킨 교수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버스의 운전수는 왜 또 항상 나인 걸까. 문전박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질질 끌어서 뒷자리라도 태워주는 수밖에.


팀플 따위는 없을 줄 알고 믿고 신청했던 수업에서 날벼락같은 팀플과제가 떨어진 적이 있다. 뒤통수가 얼얼했지만 어쩌겠나, 졸업하려면 그냥 하는 수밖에. 어쩌다 보니 타과 학생분과 같은 조를 하게 됐다.(이때부터 망했음을 감지했어야 했다.) 비슷한 계열의 전공이라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함께 자료조사를 맡은 그분이 생판 다른 내용의 자료조사를 해서 보내왔다. 심지어 보내주기로 한 날 밤이 다 되어서야. 그것도 내가 먼저 연락해서 받아낸 거였다. 그냥 대놓고 연락 안 받는 경우는 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문자로 주저리주저리 이 내용이 아니었다고 잘못 조사하셨다고 이야기했다. 체념하고 그냥 내가 다 하겠다고 했더니 그분은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다. 다시 해서 보내주겠다는 말은 죽어도 안 했더랬다. 결국 둘이서 맡았던 자료조사는 나 혼자 다 했다. 내가 한숨을 푹푹 쉬며 노트북 키보드를 때리듯이 눌러대는 동안 그분은 뭘 했을까. 그분은 결국 꼬르륵, 잠수를 탔다. 수업도 안 나와, 발표날 출석도 안 해, 정말이지 재앙이었다.


발표에 덴 적도 있다. 발표 양이 많은 수업이어서 하루에 2조씩 발표를 했는데 하필 나와 같은 날 발표를 한 친구가 밝고 목소리 크고 재치 있는 친구였다. 얌전하고 차분하게 발표하는 나와는 색깔이 조금 다른 친구였는데 교수님이 대놓고 그 친구의 발표가 더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 팀플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진행에 차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데다 PPT제작을 맡았던 동기의 결과물이 영 형편없어서 밤을 새 가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만들었었다. 아무리 봐도 상대팀의 PPT는 흰 바탕에 사진 하나 띡, 그게 전부였고 내가 만든 PPT가 훨씬 퀄리티 있었다. 교수님만의 기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티를 낼 필요가 있나 싶었다. PPT가 너무 감성에만 신경을 썼다는 둥 와닿지 않는다는 둥 한 달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말들이 쏟아졌다. 피드백에 대해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말이 아프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어찌나 느리게 가는 것 같던지. 인정받지 못했을 때의 상실은 생각보다 깊다.


절망적인 일을 직면하게 되면 그 순간엔 끝도 없이 우울하다. 그럴 땐 이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별 일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늘 그랬으니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결국엔 나를 스쳐 지나간다. 다른 동기들도 눈이 있으니 네가 더 열심히 한 거 알고 있을 거라는 엄마의 말 덕분에 사람에 데이고 발표에 덴 화상 자국이 한 층 연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하루, 한 달은 참 짧다. 일 년은 또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걸음이 느린 나를 두고 먼저 저 멀리에 가 있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나는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도 기억하기가 힘들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과 산더미처럼 쌓인 할 일. 머릿속에 생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밤 잠을 미룰 만큼 매일매일 불어난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나보고 멍청하게 멈춰있지 말고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듯이. 결국 또 해는 뜨고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들이붓고 학교에 간다. 아무리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도 단호한 시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떠민다. 등 떠미는 시간이 밉지만 그 덕에 멈춰있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묘하게 막막한 기분이 들 때는 'unlucky'가 생각난다. 기를 쓰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그녀의 말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모든 걸 사랑하기가 너무 힘이 들 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때 조금은 그래도 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너와 똑같다고 얘기해 준다. 운이 조금 없어도 내 걸음이 조금 느려도 세상은 흐르고, 그 세상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는 말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뭐든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기분이 흐트러지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 듣는 'unlucky'는 나에게 늘 새로운 시선을 준다. 지나가는 비둘기가 뚱뚱하고 못생겨 보여도 괜찮고, 툭 던지는 누군가의 말에 울화가 치밀어도 괜찮고, 엉키는 이어폰 줄에 짜증이 나도 괜찮고, 교수님이 미워 보여도 괜찮다고. 평탄하지 않아도, 쉽게 일이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어쩌면 모두가 나와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로 나를 다독이며.


넘어지고 엎어지는 일이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힘들든 말든 세상은 잘만 굴러가고 나도 그 세상에 섞여 어영부영 함께 굴러간다. 그렇게 구르다 보면 달달한 순간들도 온다. 유리병에 꼭꼭 숨겨놓고 울적할 때 꺼내먹을 수 있는 사탕 같은 순간들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여기까지 굴러온 보답으로 사탕 같은 순간들을 맛보기 위해서 넘어지고 엎어져도 결국, 오늘도 직진 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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