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 small girl
Boy, igot a small girl fantasy
나는 작은 여자들에 대한 환상이 있어.
Baby, would you still love me?
그래도 날 사랑해 줄래?
Tough l got a big laugh, big voice & big personerlity
비록 내가 큰 웃음소리, 큰 목소리, 크고 시끄러운 성격을 가졌대도
Would you guarantee it?
장담할 수 있겠어?
어릴 때 동네 감자탕 집에서 밥을 먹는데 길게 늘어진 시래기가 먹기 불편했는지 엄마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저기 아주머니한테 가위 좀 달라고 해."라고 나에게 미션을 주었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공포스러워하던 나에게 그 미션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쳐다보며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데굴데굴 눈을 굴리다가 멀리 있는 아주머니를 소리 내어 부르지는 못하겠어서 그냥 일어나 주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가위 좀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조그마한 꼬맹이를 보지 못한 아주머니들이 내 눈앞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어쩌지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그런 나를 테이블에 앉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 "여기 가위 좀 주세요!"하고 크게 외쳐 버렸다. 톡 쏘는 목소리에 그제야 엄마는 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인상을 쓰고 있는 엄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냥 말하면 되지 왜 그렇게 우물쭈물해!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엄마는 소심하고 목소리 작은 나에게 두 눈썹을 한껏 추켜올려 산을 만들고 걱정돼서 죽겠다는 마음과 답답하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쏘아붙였다. 지금 같았으면 엄마의 말에 '그러게, 나 어떻게 살아가지'라며 능청스럽게 대화를 텄을 테지만 식당에서 가위를 달라는 말도 못 했던 나는 그저 울상인 표정으로 감자탕 국물을 떠먹을 뿐이었다. 그렇게 툴툴대면서도 엄마는 고기를 발라 내 앞에 놔주었다. 나는 소리 지르는 것과는 다르게 고기는 다 나에게 주는 엄마의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얌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지금은 식당에 가서 물 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존재가 큰 사람은 아니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하고 함께 웃는 동기를 보면 도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체구가 작고 아기자기한 스몰걸이 아니라 존재감이 작은 스몰걸이다. 안 그래도 작은 키에 외적으로도 존재감이 없는데 '나 여기 있다!'라는 듯이 존재감을 표출하는 일에도 별로 재능이 없다. 쓸데없는 잡담도, 여기저기 인맥을 뻗는 일도 나에겐 좀 버겁기도 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머리와 다르게 나보다 목소리 크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을 보면 내가 작게 느껴질 때도 있다. 머리와 마음은 왜 항상 이렇게 따로 노는 건지. 그래도 이 모습이 나 자신인데 뭐 어쩌겠는가.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우스꽝스럽기 마련이다. 억지부리지 말고 그냥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이라면 웃길테니까.
노래 속의 그녀는 큰 목소리를 가지고 크게 웃고 큰 성격을 가진 나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마치 작고 아기자기한 여자들과 자신이 달라서 의기소침해진 듯이. 발랄한 멜로디와 다르게 노래 속의 내 동갑내기 친구는(만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에선 그렇다.) 큰 성격의 자신을 상대가 싫어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만난 적도 없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녀를 꾸준히 매체를 통해 만났었다. 고등래퍼에 출연해 노랗고 파란 머리의 아이들 사이에서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싸이퍼 무대를 박살 냈을 때도, 우승 트로피를 쥐었을 때도, 첫 앨범을 냈을 때도. 그녀에게 나는 모르는 사람이겠지만 나에게 그녀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동갑으로서 동경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첫 앨범을 냈다는 소식에 재빨리 들어본 노래 속의 그녀는 평소에 내가 알던 그녀와는 사뭇 달랐다. 당당하게 사람들의 앞에 서던 그녀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그녀에게도 동경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나는 노래를 듣자마자 내 마음대로 가사를 바꿔 흥얼거렸다. 작은 목소리, 작은 웃음소리, 작은 성격을 가진 나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키도, 존재감도, 성격도 작은 나는 노래 속의 그녀처럼 크고, 잘 웃고, 목소리 큰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식당에서 이모님- 하고 목청 크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당연하게도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도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누구에게나 고충은 있고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 있다. 그리고 그런 동경 덕에 성장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넓힌다. 식당에서 가위를 달라는 말도 못 하던 작고 의기소침했던 작은 아이가 이제는 다 큰 성인이 되어 소주 한 병 더 달라고 테이블 밖으로 소주병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