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얼마 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 최연소 임원이 되었다. 축하 파티가 열리던 날, 동료들의 부러움 섞인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했다.
술 때문이 아니었다. 거울 속 눈동자는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가짜야.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야. 사람들은 곧 네 밑천을 알게 될 거야.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면 증후군'이라 부른다. 겉으로는 화려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지만, 가면 뒤의 얼굴은 언제 발각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도망자.
나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시감을 느꼈다.
2017년 겨울, 15분 만에 3,500만 원을 벌고 욕실에서 나왔던 내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통장에는 큰돈이 찍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내 실력이 아니었다. 그저 운이 좋아서 시장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발밑에 떨어진 돈일 뿐이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운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다시 지루하고 보잘것없는 월급쟁이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나는 가면을 쓰기로 했다.
운 좋은 도박꾼이 아니라, 실력 있는 투자자라는 가면을.
그날부터 나는 마치 월가의 트레이더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친구들 앞에서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의 미래를 논했다. 전문 용어를 섞어 썼다. 비싼 차를 사고, 밥값을 계산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와, 너 진짜 대단하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짜릿했다. 동시에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들키면 안 돼. 내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짜라는 걸.
나는 멈추지 않고 더 위험한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번 수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계속 증명해야 했으니까.
나는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었다. 성공을 연기하느라 피가 마르고 있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걸까.
심리학자 존 브래드쇼는 그 뿌리를 파고들면 '수치심'이라는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을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죄책감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행동에 대한 후회다. 하지만 수치심은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가면을 벗은 나는 보잘것없어. 그러니 완벽하게 숨겨야 해.
이 목소리가 내면을 지배하면, 우리는 가면을 생존 수단으로 삼게 된다.
심리학자 제니퍼 크로커는 이런 상태를 '영혼을 갉아먹는 추격전'이라고 불렀다.
자존감의 근거를 내 안에 두지 않고, 변동성이 심한 외부—돈, 성적, 평판—에 위탁해버리는 것.
나의 2018년이 딱 그랬다. 내 존재 가치를 코인 차트에 연동시켜놓고, 차트가 오르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내리면 쓰레기가 되었다.
내 기분과 존엄성이 24시간 돌아가는 차트의 노예가 되어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겪었던 만성적인 통증과 숨 막히는 답답함. 그것은 단순한 과로가 아니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무거운 가면을 지탱하느라, 영혼의 근육이 파열되는 소리였다.
진짜 사기꾼은 자신이 가짜일까 봐 고민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토록 불안한 이유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 지금 좀 무서워"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가면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가면이 깨진 것은 당신이 망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가면 뒤에 숨어 질식해가던 진짜 당신이, 이제야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