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녀와 두 번째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이 영화 재미있었어요?"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사실 나는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간부터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저녁은 어디서 먹으면 좋을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이상하게도 나는 늘 이랬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진짜 그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마치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진심으로 그 이야기가 궁금해하기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잘 모르겠어요. 사실... 집중을 못했네요."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정직하게 말했다.
그녀와 인사를 나눈 뒤,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내가 정말 그녀를 알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단지 '연인이 있는 삶'을 원하는 건지.
돌이켜보니, 같은 패턴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눈으로는 웃으면서도, 실은 지루했던 관계.
사귀는 사이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도 시간이 지나 진짜 내 모습과 보이는 모습 사이의 간극이 커져버리면 버티지 못하고 결국 이별이라는 종착지에 닿길 반복했다.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나에게 토로했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고장 난 사람.'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 나는 이런 놈이라는 것. 그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이었고, 구실 좋은 도피처였다. 내가 많은 관계 속에서 진정성 없이 굴었던 것도, 상대에게 진심 어린 관심이 없음에도 연기하듯 관계를 이어갔던 것도, 다 '내가 그렇게 생겨먹은 탓'을 하며 떠넘기면 그뿐이었다.
그 무의미한 반복을. 오늘, 무심코 영화관에서 뱉은 한마디 말이 종지부를 찍었다. 평소라면 "아, 네... 좋았어요."라며 둘러댔을 말을,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내뱉었던 순간 말이다. 왜인지 마음이 편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짜 상대를 보는 대신 나의 불안을 먼저 봤고, 상대와의 감정 교류 대신 내가 어떻게 보일 지를 먼저 생각했음을. 존중인 줄 알고 살았던 삶이 사실은 존중이 아니었다는 것을.
달라지려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에 굳이 관심 있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서투르고 아직은 어색하더라도.
왜인지 자유로운 기분이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매 순간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