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지루한 삶에서 도망칠 출구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입사 후 꼬박꼬박 모아온 적금 통장을 깬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그 돈이 청춘의 전부이자 미래를 위한 유일한 종잣돈이었지만, 칙칙한 현실의 굴레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마침 대한민국은 코인 광풍에 휩싸여 있었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 역시 그 흐름에 몸을 던졌다.
욕망의 대가는 혹독했다. 붉게 치솟던 차트는 어느 날 수직으로 꽂혔고 피땀 흘려 모은 내 전 재산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나는 오기로 대출까지 받아 가며 버텼지만,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스마트폰 속 파란색, 빨간색 막대기에 갇혀 지냈다. 돈을 벌어도 불안했고, 잃으면 공포에 떨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시장을 떠났다.
그때 생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시간이 지나 손실을 잊을 만했을 때, 다시 투자를 시작해 볼까 하고 차트를 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몸이 거부했다.
머리로는 ‘이제 다시 해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손이 떨리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명치를 꽉 조이는 불쾌한 긴장감. 그것은 지난 폭락장에서 느꼈던 그 공포의 감각이었다. 뇌는 잊었을지 몰라도, 내 신경계는 그 시절의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거기는 위험해. 다시는 가지 마.’
그제야 알았다. 무언가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세계적인 트라우마 전문가 가보르 마테(Gabor Maté)는 그의 저서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When the Body Says No)』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가 감정을 억누르고 입으로 ‘아니오(No)’라고 말하지 못할 때, 결국 몸이 우리를 대신해 ‘아니오’라고 말하게 된다.”
그때까지 나는 ‘투자를 하면 잠이 안 오고 심장이 뛰는’ 문제를 마음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5년 동안 나는 그 세계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것은 회피였다.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코인은 투기고, 투기는 나쁜 것’이라는 핑계 뒤로 숨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던 2024년, 비트코인이 다시 전고점을 뚫고 올라왔다. 온갖 사망 선고에도 기어이 살아남은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보며, 나는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았다. 두려움에 압도되어 도망치기만 하는 내 안에 있었다.
그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나를 고치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서 벌벌 떠는 이 망가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이 책은 그 치열했던 훈련의 과정을, 내가 무너지고 회복하며 통과해 온 순서 그대로 기록한 지도다. 그것은 숨, 몸, 그리고 생각을 다시 연결하는 훈련이었다.
감정의 실체를 알기 위해 뇌과학을 파고들었다. 매일 숨이 차도록 달리고, 근력 운동을 하고 또 명상을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돌보기 시작하자 아주 조금씩,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무섭게 요동치던 내 안의 파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속수무책으로 휩쓸리지는 않게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흔들린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처럼 두려움에 도망치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찾던 변화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었다. 과거의 나는 두려움에 가려진 눈으로 세상을 보았기에 모든 것이 공포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두려움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배낭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임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불안을 황급히 밀어내는 대신, 그 존재를 인정하고 나란히 걷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깔아주었다. 클릭 한 번이면 욕망이 채워지고 힘든 감정은 회피할 수 있는 길. 우리는 그 위에서 편안했지만, 마음의 근육은 퇴화했고 예상치 못한 두려움 앞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져내렸다.
이제 우리는 아스팔트에서 내려와, 인류가 오랫동안 걸어왔던 거친 ‘흙길’로 돌아가야 한다.
편리함을 뒤로하고 흙길을 택했기에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취약함을 마주하고 묵묵히 걷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단순히 숫자를 쫓는 삶이 아니라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내 두 발로 단단히 대지를 딛고 서는 ‘자유의 감각’을 되찾기를 소망한다. 잠시 흔들릴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는 확신. 이 글이 당신에게 그 단단한 마음의 뿌리를 선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