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월급쟁이가 벼락거지가 되는 공포를 느낄 때

우리는 왜 조급해지는가

by NT

2018년의 나는 두 개의 시간을 살았다.


하나는 현실의 시간이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고, 책상 앞에 앉아 엑셀을 두드리고 보고서를 쓰고, 그렇게 30일을 채워야 통장에 월급이 찍혔다.


1년을 모아도, 5년을 모아도,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먼 미래로 밀려났다. 이 시간 안에서 나는 그냥 천천히 늙어가는 한 남자였다.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 속 시간이었다.


그곳은 중력이 달랐다. 현실에서 1년을 모아야 만질 수 있는 돈이 30분 만에 생겼다가 사라졌다. 점심시간에 잠깐 졸다 깬 사이 누군가는 연봉을 벌었고, 누군가는 파산했다.


현실의 10년이 그곳에선 하루로 압축돼 있었다.


그 격차를 견딜 수가 없었다.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지쳐 있었다. 옆 부서 누군가는 아파트로 3억을 벌었다는데, 나는 덜컹거리는 객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고장 난 무빙워크 위에 서 있는 기분. 남들은 다 고속열차를 타고 치고 나가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은.


코인 투자를 한다고 말하자 사람들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투기꾼 보듯 하거나, 안타깝다는 눈빛을 보내거나. 근데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시간을 압축하고 싶었다.


20년 걸려 얻을 보상을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느린 시간이 고통스러웠으니까. 미래를 당겨와서라도 지금 이 속도를 높이고 싶었으니까.


코인은 내게 워프 게이트였다. 성실함이라는 느린 다리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저 멀리 달아나는 자산의 뒷모습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


화폐 가치가 어쩌고, 인플레이션이 어쩌고 하는 경제학 이론 같은 건 몰랐다. 그냥 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닫히고 있다고.


평범한 월급쟁이가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문이, 수도권에 내 집 한 채라도 가질 수 있는 그 좁은 문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닫히고 있다는 걸.


그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몸을 쑤셔 넣어야 했다. 걷거나 뛰어서는 안 됐다. 날아야 했다. 아니, 완전히 미쳐야 했다.




나중에 책에서 마고 윌슨과 마틴 데일리라는 학자의 연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이 시카고 빈민가를 조사했더니, 기대 수명이 짧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 동네일수록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현재의 보상에 집착했다고 한다.


그들이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미래가 없는 환경에서는 지금 당장 먹어치우는 게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었던 거다.


그 대목을 읽으며 멈칫했다. 나는 전쟁터에 살지 않았다. 그런데 내 뇌는 전쟁터에 살고 있었다.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벼락거지가 될지도 몰라.'


그 신호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브레이크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다.

문이 닫히는 공포 앞에서, 속도 위반은 죄가 아니라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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