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통제하는가
그때 내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쉴 틈이 없었다. 하루에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씩 스마트폰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새로고침. 새로고침. 새로고침.
화면 위의 작은 원이 뱅글뱅글 돌아가다가 '탁' 하며 터지는 그 찰나. 나는 그 0.5초를 사랑했고 동시에 증오했다.
숫자가 빨간색일지 파란색일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그 순간. 내가 열어야 비로소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주술이었다.
내가 한눈팔면 차트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것 같았고,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면 내 간절함이 닿아 붉은 기둥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전 중 신호 대기 1분,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15초, 화장실 변기 위에서도 화면을 당겼다.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폰을 켰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옆에 앉은 사람이 뭐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내 신경은 전부 5인치 화면 속 숫자에 꽂혀 있었다.
"그거 계속 본다고 돈이 더 벌려?"
몇 번이나 들었다. 머리로는 알았다. 내가 본다고 오를 게 내리거나, 내릴 게 오르는 건 아니라는 걸.
근데 몸은 달랐다. 확인하지 않으면 심장이 조여왔다. 등 뒤에 맹수가 서 있는 것 같은 서늘한 공포. 그걸 잠재우는 방법은 딱 하나, 폰을 켜서 내 돈이 아직 거기 있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1분마다 자기 생존을 확인받아야 하는 환자였다.
어느 날 다큐멘터리에서 뉴욕 횡단보도 버튼 얘기를 봤다. 신호를 빨리 바꾸려고 사람들이 버튼을 연타하는데, 그 버튼의 80% 이상은 신호등 시스템과 아예 연결이 안 돼 있다는 거다.
그냥 가짜 버튼이었다. 신호는 중앙 시스템 타이머가 알아서 바꾼다. 버튼을 누르든 말든 아무 상관없다. 그런데도 뉴욕시는 그 버튼을 철거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사람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버튼이라도 있으면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내가 그토록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그 새로고침 버튼이 뉴욕의 그 가짜 버튼이었다. 나는 내가 차트를 분석하고 흐름을 읽고 대응한다고 믿었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신호등을 다루고 있다고.
전선은 처음부터 끊겨 있었다.
내가 변기 위에 앉아 화면을 천 번 쓸어내리든, 차트를 세 시간 들여다보든, 가격은 내가 뭘 하는지와 완전히 무관한 논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연결되지 않은 버튼을 미친 듯이 연타하면서 땀을 흘리고 심박수를 올리고 안도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었던 거다.
통제하려 할수록 감정에 끌려다녔다.
1분 봉의 작은 파도에 일희일비하다 큰 흐름을 놓쳤다. 빨간색 보면 흥분해서 추격 매수하고, 파란색 보면 공포에 질려 손절했다.
스마트폰은 내가 다루는 도구가 아니었다.
보상이 언제 나올지 몰라 레버만 당겨대는 실험실 원숭이. 그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