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는 나를 위한 차가 아니었다

우리는 무엇을 열망하는가

by NT

2018년 봄, 나는 새로 산 제네시스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아직 뜯지 않은 비닐 커버. 코끝을 찌르는 가죽 냄새. 시동을 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엔진음.


코인으로 번 돈이 통장에 찍히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자동차 딜러십이었다. 내가 그토록 꿈꾸던 성공의 냄새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근데 운전을 마치고 익숙한 지하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이 차는 나를 위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무대 의상이었다. 나는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자산가'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였다. 꽉 막힌 도심 도로는 내 런웨이였다. 내가 산 건 자동차가 아니라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왜 돈이 생기자마자 로봇처럼 이 차를 사러 달려갔을까.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욕망은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와 '좋은 차' 사이에 곧장 연결된 선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반드시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 있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걸 원하게 된다.


'삼각형의 욕망'이다.


내가 차를 고른 기준은 '내 허리가 편한가'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들은 무엇을 타는가'였다. 나는 차를 욕망한 게 아니라, 그 차를 타는 사람의 지위를 욕망했다.


내 욕망의 내비게이션은 이미 해킹당해 있었다. 목적지는 내가 정한 게 아니었다. 세상이 '성공한 사람은 이런 걸 가진다'고 미리 입력해 놓은 좌표를 향해, 나는 그게 내 꿈인 줄 알고 달리고 있었다.




어디서 본 실험이 하나 기억난다. 병원 대기실에서 스피커로 '삐-' 소리가 울리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는다.


사실 이들은 다 섭외된 연기자다.


이때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참가자가 들어와 앉는다. 삐 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이 또 일어났다 앉는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참가자도 결국 따라 일어났다 앉는다.


진짜 반전은 그다음이다.


연기자들이 다 나가고 참가자 혼자만 남은 대기실. 아무도 없다. 그때 다시 '삐-' 소리가 울렸다.


그는 혼자서도 벌떡 일어났다가 앉았다.


심지어 나중에 새 사람이 들어오자, 자기가 먼저 일어나면서 그 행동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왜 하는지는 모른다. 그냥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니까.


코인으로 돈이 생겼을 때의 나도 그 참가자와 다를 게 없었다. 왜 이 차를 사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성공한 남자는 이런 차를 탄다'는 사회적 매뉴얼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래야만 그 무리의 일원이 된 것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6천만 원짜리 입장권이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 문을 닫는 순간, 거기는 천국이 아니었다. 아무도 안 보는 차 안에서 나는 혼자서도 연극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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