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의 청구서
어느 날 저녁, 친구들과 오마카세 스시집에 앉아 있었다.
접시 위에는 윤기가 흐르는 참치 대뱃살이 놓여 있었다. 셰프는 이 한 점을 위해 얼마나 좋은 재료를 공수했는지, 얼마나 정성스럽게 숙성했는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친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입안에 넣고 행복해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신선해 보이는 참치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이상했다.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혀끝에서는 지방의 고소함과 밥알의 식감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어딘가로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마치 물에 젖은 톱밥이나 종이 뭉치를 씹고 있는 기분이었다. 20만 원짜리 식사였다.
그때 알았다. 내 혀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맛을 기쁨으로 느끼는 내 안의 어떤 장치가 타버렸다는 것을.
시계를 며칠 전으로 돌려보자. 그날 나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산 에이다라는 코인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다. 불과 10분 만에 빨간 기둥이 솟구치더니 내 연봉에 해당하는 숫자가 수익금으로 찍혔다. 매도. 통장에 1년 치 연봉이 꽂혔다.
사람들은 그것을 행운이라 불렀고, 나는 능력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것을 낙뢰로 받아들였다. 가정집 두꺼비집은 220볼트의 전기를 감당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수만 볼트의 번개가 전선을 타고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가전제품의 회로가 타버리고 집안은 암흑천지가 된다.
나에게 그 엄청난 코인 수익은 번개였다. 노동과 시간이라는 변압기도 없이 날것 그대로의 거대한 자극이 내 머리에 직격으로 꽂혔다. 내 몸은 스스로 차단기를 내려버렸다. 뚝. 그날 이후 내 세상은 정전이 되었다.
정전된 집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친구가 맛있는 밥을 사줘도, 날씨가 좋아도,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내 마음의 전구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것은 우울이 아니었다. 그냥 꺼져 있었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시시해졌다. 맛집을 가려고 30분 줄을 서는 사람들, 월 10만 원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 다니는 동료들이 미련한 개미처럼 보였다.
더 이상 과정이 주는 기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결과만이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조차 시시해졌다. 공짜로 얻은 것은 소화되지 않았다. 나는 돈을 번 게 아니었다. 내 영혼에 마취주사를 놓은 거였다.
슬프게도 이 이야기의 가장 잔인한 결말은 여기서부터다.
내 감각이 마비된 사이, 내 통장에 꽂혀 있던 그 낙뢰 같던 돈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번개는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사라질 뿐이다. 나는 그 돈을 지킬 그릇이 아니었다. 노력 없이 들어온 돈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 돈을 불리기 위해, 아니 그 짜릿한 전율을 다시 맛보기 위해 더 위험한 잡코인에 몰아넣었다.
결과는 뻔했다.
결국 내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돈도 잃고, 행복을 느끼는 기관마저 고장 난 빈 껍데기가 되었다.
오마카세 집을 나오며 친구가 물었다.
“야, 오늘 진짜 맛있지 않았냐? 돈 많이 벌어서 또 오자.”
나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웃었다.
“그러게. 진짜 맛있더라.”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심고 가꾸지 않은 열매는 달지 않다.
입에 넣는 순간 썩어버리는 가짜 열매일 뿐이다.
나는 주머니 속 빈털터리가 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미 다 타버린 재 위에서 나는, 웅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