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을 때 그녀가 챙긴 '보이지 않는 돈'

알렉스 글래드스타인이 기록한 로야 마흐붑의 투쟁

by NT

점심시간, 습관처럼 업비트 앱을 켠다. 또 파란불이다.


"아, 또 떨어졌어."


동료들과 쓴 커피를 들이키며 투덜거린다. 20일이면 월급 들어오고 내 책상은 내일도 저 자리에 있을 거다. 이 지루한 일상이 영원할 거라 믿으니까. 비트코인 하락 따위는 그냥 기분 나쁜 숫자 놀음이다.


가끔 그런 상상은 한다. 이 안전이 영원할까? 나라가 뒤집히고 돈이 종이 쪼가리가 되면 난 내 한몸 건사할 수 있나? 애써 무시했던 그 질문을 지구 반대편의 한 소녀는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그녀에게 저 파란 숫자는 차트가 아니었다. 숨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IT CEO, 로야 마흐붑(Roya Mahboob) 이야기다.


그녀가 회사를 차렸을 때 제일 골치 아픈 건 월급이었다. 아프간 여성은 은행 계좌를 못 만든다. 아버지나 남편 동의 없이는 은행 문턱도 못 넘는다. 현금으로 주면? 집에 가는 길에 남자 가족들한테 다 뺏긴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이 내 돈이 아니다.


로야는 2013년, 직원들에게 비트코인으로 월급을 주기로 했다. 다들 그게 뭔지도 몰랐다. 상관없었다. 이 보이지 않는 돈은 누구 허락도 필요 없고 무엇보다 남자들이 물리적으로 뺏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직원들은 난생처음 '내 돈'을 가졌다. 비트코인 팔아서 몰래 옷도 사고 등록금도 모았다. 그때까진 그냥 소소한 비상금 정도였다.




2021년 8월, 미군이 떠나고 카불이 함락됐다. 탈레반이 돌아왔다. 은행 셔터는 내려갔고 ATM은 텅 비었다. 평생 모은 현금은 휴지 조각이 됐다. 사람들은 살겠다고 국경으로 뛰었다.


로야의 직원 랄레 파르잔(Laleh Farzan, 가명)도 피난길에 올랐다. 집이고 뭐고 다 팔아 금이랑 현금 챙겨서 나왔다. 독일 가는 길은 지옥이었다. 검문소 군인들한테 뇌물로 뜯기고, 도둑한테 털리고, 타고 가던 보트까지 뒤집혀서 남은 짐마저 지중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수용소에 도착했을 땐 빈털터리였다. 팬티 한 장, 양말 한 짝 안 남았다. 딱 하나, 머릿속 기억만 빼고.


인터넷 끊기면 끝이고, 공포에 질려 암호 단어(Seed Phrase) 12개를 까먹으면 그걸로 땡이다. 검문소에서 비트코인 들킨다? 고문당하다 죽을 수도 있다. 국경 넘는 동안 반토막 날 수도 있었다.


근데 그날, 랄레한텐 선택지가 없었다. 금반지는 뺏기지만 기억은 못 뺏으니까.

랄레는 알몸으로 국경을 넘었지만 머릿속엔 12개 단어를 꽉 쥐고 있었다.


독일에 왔다고 인생이 바로 피진 않았다. 말 안 통하는 난민 신세,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그래도 PC방 가서 지갑 복구하는 순간, 적어도 빈털터리 거지는 면했다. 그 기억 속의 돈이 다시 일어설 종잣돈은 됐다.


알렉스 글래드스타인은 이걸 한 줄로 요약했다.


"도둑은 못 찾으면 못 훔친다." (Thieves could not take what they could not find.)




혁명? 아니, 그건 '생존 기술'이었다.


다시 핸드폰을 본다. 여전히 마이너스다. 근데 숫자가 좀 다르게 보인다.

나한테 비트코인은 재테크지만 저기 어딘가에선 생존 기술이었다. 내일의 떡락을 걱정할 때, 누군가는 오늘의 약탈을 피하려고 이걸 붙잡았다.


그날 아프간 소녀들에게 비트코인은 투자가 아니었다. 인간대접받으려고 선택한 가장 위태롭지만 유일한 배였다. 오늘도 점심시간 커피를 마시며 업비트 앱을 켠다. 근데 문득 겁이 난다.


이 시스템 무너지는 날, 나는 뭘 들고 튈 수 있을까?




[참고 자료]

Alex Gladstein의 칼럼 *'Finding Financial Freedom In Afghanistan'*과 로야 마흐붑(Roya Mahboob) 인터뷰

출처: https://bitcoinmagazine.com/culture/bitcoin-financial-freedom-in-afghan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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