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후 2시, 사무실 책상 위에서 휴대폰이 짧게 진동한다. 화면을 켜지 않아도 안다. 월급이 들어왔다는 알림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 160시간의 노동, 수없이 삼킨 마른침과 뻐근한 뒷목의 통증이 고작 일곱 자리, 혹은 여덟 자리의 디지털 숫자로 치환되어 내 통장에 찍혔다.
나는 멍하니 그 숫자를 바라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이 숫자를 늘리기 위해 전쟁터 같은 하루를 보낸다. 서점에 가면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친구들을 만나면 기승전 재테크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정작 "그래서 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학교에서는 미적분을 가르치고 조선의 붕당 정치를 가르쳤지만, 단 한 번도 돈의 정체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아껴 쓰고 저축하거나 투자하면 잘 산다는 뻔한 이야기만 반복될 뿐.
우리는 마치,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의 화학식을 모르듯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수조 안에서 돈이라는 물살에 휩쓸려 살아가면서도 그게 뭔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세계적인 거시경제 사상가 린 알든(Lyn Alden)의 글을 읽다가, 나는 놀라운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그녀는 돈을 '구매력'이 아닌 '배터리'로 정의했다.
생각해 보자. 내가 오늘 하루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쌀을 받고 고기를 받는다면 그것은 금방 상해서 사라진다. 내 젊음과 에너지는 휘발된다. 하지만 인간은 이 에너지를 가두어두고 싶었다. 지금 당장 쓰지 않고, 10년 뒤 늙고 지친 나를 위해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발명한 것이 '돈'이다. 돈은 '나의 노동과 시간을 상하지 않게 응축해서 얼려놓은 타임캡슐'이다.
린 알든은 말한다. "우리는 번 돈을 소비(Consume)하여 오늘의 허기를 채우고, 투자(Invest)하여 내일의 불확실성에 베팅하며, 나눔(Share)을 통해 타인과 연결된다. 하지만 돈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바로 저축(Save)이다. 미래로 현재의 에너지를 전송하는 행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가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이 배터리가 사실은 불량품이라면?
내가 20대 때 뼈 빠지게 일해서 얼려둔 100시간의 노동이 40대가 되어 꺼내보니 다 녹아버리고 고작 10시간어치밖에 남지 않았다면?
누군가 내 타임캡슐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내 시간을 훔쳐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물가가 올랐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짜장면 한그릇 값이 오른 게 아니다. 내 과거의 시간이 도둑맞은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 월급은 매년 오르는데 서울 아파트는 더 멀어지는 이유,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은 공포가 느껴지는 이유.
이 모든 불안의 실체는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돈이라는 도구 자체가 에너지를 온전히 보관하지 못하고 줄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가 아니라 '도대체 돈이란 무엇인가?'라고.
이것은 부자가 되자는 탐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줄줄 새고 있는 우리의 타임캡슐을 틀어막고, 언제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자는 말이다.
지금부터 그 구멍 난 배터리의 진실을 함께 파헤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