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식탁 위에 놓인 바나나를 본다. 사흘 전 마트에서 샀을 때는 싱그러운 노란색이었는데, 어느새 거무튀튀한 반점으로 가득하다. 며칠만 더 지나면 속살이 허물어지고 날파리가 꼬일 것이다.
나는 이 썩어가는 과일을 보며 묘한 공포를 느낀다. 만약 내 월급을 바나나로 받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10년 뒤의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아무리 창고에 바나나를 쌓아놔도, 시간은 내 재산을 가차 없이 썩게 만든다.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썩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맨 역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땀 흘려 얻은 가치(노동)를 시간이라는 괴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그릇을 찾는 것. 우리는 그것을 '돈'이라 불렀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돈이 될 자격이 없었다. 소금은 비가 오면 녹아내렸고, 가축은 병들어 죽었다. 조개껍데기는 잘 부서졌고, 구리는 녹이 슬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가 오늘 희생한 시간의 대가가 내일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더 단단하고, 더 변하지 않는 물질을 찾아 땅을 파고 바다를 건넜다.
그 끝에 마주한 것이 바로 '금(Gold)'이었다.
어렸을 적 박물관 유리장 안에 있는 통일 신라의 금관을 본 적이 있다. 함께 출토된 철검은 붉은 녹이 슬어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금관만은 어제 만든 것처럼 섬뜩할 정도로 노랗게 빛났다.
금은 산소와 반응하지 않는다. 썩지도, 녹슬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손에 쥘 수 있는 불멸에 가장 가까운 물질이다.
금이 왕좌를 차지한 진짜 이유는 단순히 썩지 않아서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욕망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고 대 유량(Stock-to-Flow)이라는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쉽게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
누군가 해변의 조약돌을 돈으로 쓰자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일을 하는 대신 하루 종일 해변에서 돌을 주웠을 것이다. 시장에는 조약돌이 넘쳐나고, 돈의 가치는 폭락한다.
금은 달랐다. 아무리 왕이 욕심을 부려도 금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뜨거운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식으며 만들어진 이 금속은 인간이 아무리 곡괭이질을 해도 일 년에 고작 전체 양의 1.5%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즉, 금은 시간(부패)을 이겨내는 '내구성'과, 인간의 탐욕(복제)을 이겨내는 '희소성'이라는 두 가지 절대 반지를 모두 가진 유일한 물질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금을 '돈'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약속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다시 식탁 위의 썩어가는 바나나를 본다. 그리고 내 지갑 속에 꽂혀 있는 종이돈을 꺼내 본다. 이 얇은 종이는 과연 금처럼 썩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바나나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상해 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돈이라고 믿고 있는 이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누르는 버튼 하나로 수조 원씩 복사되는 숫자가 과연 수천 년을 견딘 금의 무게를 대신할 수 있을까.
깊이 사유해 볼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썩지 않는 황금을 버리고 스스로 썩어가는 바나나를 주머니에 채워 넣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소금이 녹아내리던 그 옛날처럼 내 통장의 숫자들도 보이지 않는 비에 젖어 녹아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감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