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8세기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원형 감옥을 설계했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죄수의 방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자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죄수들은 24시간 감시받고 있다는 공포 속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린 알든을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가 경고하는 미래의 돈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바로 이 '디지털 판옵티콘'이다.
CBDC는 우리가 지금 쓰는 은행 전산망의 돈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Programmable)'는 점이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돈에 '조건'과 '명령'을 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상상해 보자. 정부가 "경기를 부양해야겠다"라고 결심한다. 그러자 당신의 통장에 있는 돈에 '유효기간'이 생긴다.
"이 돈은 3개월 안에 쓰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당신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싶어도 강제로 소비해야 한다. 저축의 자유가 사라진다.
또는 이런 상황은 어떤가.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당신이 이번 달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사 먹었다면 결제가 거부된다.
"탄소 할당량 초과. 결제 승인 불가."
당신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후원금을 보냈다면? 버튼 하나로 당신의 모든 경제 활동이 정지될 수 있다. 나이지리아와 캐나다에서 이미 예고편을 보았듯이 말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 아구스틴 카르스텐스는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금과 달리 CBDC는 누가 1,000페소를 쓰는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사용을 통제할 기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본능적으로 탐낼 수밖에 없는 미래다.
편리함이라는 가면을 쓴 '디지털 목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는가?
다행히도,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우리에게 비상구를 만들어 두었다.
비트코인은 CBDC의 정반대 편에 서 있다. CBDC가 중앙의 통제라면, 비트코인은 분산된 자유다.
CBDC가 허락받아야 쓰는 돈이라면 비트코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돈이다. CBDC가 내용물이 보이는 투명 지갑이라면 비트코인은 나만 열 수 있는 디지털 금고다.
린 알든은 그녀의 저서 마지막에서 독자들에게 간곡히 제언한다.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Think Outside of the Box)."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국가가 발행한 돈이라는 상자 안에 갇혀 살았다. 그래서 돈이 타락하고, 내 시간이 도둑맞고, 감시당해도 "원래 그런 거야"라고 체념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자 밖을 봐야 한다. 시스템이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을 때, 화폐가 당신의 구매력을 갉아먹을 때, 그리고 거대한 감시의 눈이 당신의 지갑을 들여다보려 할 때, 당신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주'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회사에서 13년 일한 직장인이다. 시스템 안에서 성실히 일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시스템 밖의 돈을 모은다.
비트코인이다.
이것은 투기 수단이 아니다. 이것은 다가올 태풍 앞에서 내 가족과 나의 존엄을 지켜줄 유일한 구명보트다.
돈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조개껍데기에서 시작된 이 긴 이야기의 끝에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10년 뒤 지갑에는 무엇이 들어있기 바라는가?
유효기간이 설정된 '통제된 쿠폰'인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자유'인가.
선택은 어쩌면, 지금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