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도구

#9.

by NT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비트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주식보다 변동성이 큰 위험한 투자처 정도일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차트를 보고 "어제보다 떨어졌네"하며 혀를 차기도 하고, "이쯤 먹었으면 팔아야하나?"하고 우려 섞인 태도를 취한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땅으로 가보자. 그곳에서 비트코인은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다.

그 이름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은행'이자,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여기, 아프가니스탄의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라레(Laleh). 2013년, 그녀는 컴퓨터 교육 센터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현금으로 월급을 받으면 곧장 아버지나 오빠에게 빼앗겼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죄악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돈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


센터의 대표였던 로야 마흐붑(Roya Mahboob)은 기막힌 방법을 찾아냈다. 소녀들에게 현금 대신 비트코인을 전송해 준 것이다. 라레는 그 낯선 디지털 코인을 인터넷 카페의 컴퓨터 속에 숨겼다. 가족들은 그것이 돈인 줄 몰랐고, 뺏어갈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2021년,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다. 은행 문은 닫혔고, 공항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다. 하지만 현금 뭉치나 금붙이는 국경 검문소에서 탈레반 군인들에게 모두 압수당했다. 빈털터리가 된 난민들은 절망했다.


하지만 라레는 달랐다. 그녀는 옷 속에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12개의 영어 단어(니모닉)를 외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전 재산인 비트코인 지갑을 여는 패스워드였다.


독일 난민 캠프에 도착한 그녀는 낡은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릿속의 단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그녀가 10년간 모은 돈이 화면에 나타났다. 국경의 군인도, 독재자의 총칼도,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돈을 뺏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비트코인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티켓이었다.


카메라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돌려보자. 2020년 10월, 나이지리아 청년들은 부패한 경찰 특수부대의 폭력에 저항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EndSARS 시위였다.


당황한 정부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썼다. 시위 주동자들과 후원 단체의 은행 계좌를 동결시킨 것이다. 돈줄이 끊기면 시위도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라면 그 계산은 맞았을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계좌가 막히자마자 트위터에 비트코인 주소가 올라왔다.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부는 당황했다. 은행장에게 전화해 계좌를 잠그라고 명령할 수는 있었지만, 주인 없는 네트워크인 비트코인에게는 명령할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그 돈으로 마스크를 사고, 물을 사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잭 도시(트위터 창업자)를 비롯한 전 세계인이 그들을 도왔다. 나이지리아 청년들에게 비트코인은 투기 수단이 아니었다. 독재자의 검열을 뚫고 날아온 '방탄 조끼'였다.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도 마찬가지였다. 푸틴 정권이 그의 모든 계좌를 막아버렸을 때, 그의 활동을 지속하게 해 준 것은 비트코인 후원금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러시아 루블화가 휴지 조각이 되었을 때, 우크라이나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도 USB 하나였다.




우리는 흔히 돈을 '구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린 알든은 말한다. 돈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허락받지 않을 권리(Permissionless)'라고.


은행에 있는 내 돈은 사실 내 돈이 아니다.

은행이, 정부가 "써도 좋다"라고 허락해 주어야만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거나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내 돈은 언제든 '0'이 될 수 있다.


암호화폐는 다르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지구 반대편 누구에게나 어떤 허락도 없이 가치를 전송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금융 주권을 완전히 되찾아왔음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기술이 가격이 오르내리는 도박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운 좋게도 민주주의 국가에 살며, 안정된 금융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독재와 금융 억압 속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비트코인은 선택이 아니다. 생존이다. 독재자가 뺏을 수 없는 돈. 검열할 수 없는 장부. 이것이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세상에 선물한 '디지털 희소성'의 진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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