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작업 증명(Proof-of-Work)
"One-CPU-one-vote."
(1 CPU는 1표다.)
- Satoshi Nakamoto, Bitcoin Whitepaper Section 4
민주주의의 꽃은 투표다. 1인 1표.
가난한 자나 부자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진다. 한 사람이 투표소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인터넷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이디를 1,000개 만들 수 있고, 프로그램을 돌려 100만 번 투표할 수도 있다. 이것을 '시빌 공격(Sybil Attack)'이라 한다. 온라인 여론 조작이 쉬운 이유다. 목소리 큰 놈(계정이 많은 놈)이 이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고민했다. 은행이 없는 세상에서 장부의 내용을 결정해야 하는데(다수결), 어떻게 하면 수백만 개의 가짜 계정을 만든 사기꾼을 걸러낼 수 있을까?
그의 천재적인 해답은 백서 4장에 담겨 있다.
"투표하고 싶나? 그렇다면 '대가'를 치러라."
그 대가는 바로 전기 에너지다.
사토시가 고안한 작업 증명(Proof-of-Work) 시스템은 쉽게 비유하면 '초고난이도 자물쇠 따기 대회'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10분마다 수학 문제를 낸다. 이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머리(논리)로 풀 수 없다. 오직 주사위를 수조 번 던져서 우연히 숫자를 맞추는 방법(Brute Force)밖에 없다. 이 주사위를 던지려면 컴퓨터를 맹렬하게 돌려야 하고, 필연적으로 막대한 전기가 소모된다.
문제를 가장 먼저 푼 사람만이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쓸 권한(투표권)을 얻는다. 그리고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여기서 혁명적인 개념이 등장한다. 사토시는 '1인 1표(One-IP-one-vote)'를 버리고, '1 CPU 1표(One-CPU-one-vote)'를 선언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라인에서 가짜 계정은 공짜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전기는 공짜로 만들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도, 아무리 권력이 센 독재자라도, 물리 법칙인 열역학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전기를 쓰지 않고 문제를 풀 방법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토시는 가상의 세계인 인터넷에 현실의 물리적 자원인 '에너지'를 닻(Anchor)으로 내린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비트코인은 그렇게 많은 전기를 낭비하나요?"
이것은 낭비가 아니다. 보안을 위한 '성벽'이다. 만약 누군가 비트코인 장부를 조작(거짓말)하고 싶다면, 전 세계 채굴자들이 쓰고 있는 전기 에너지의 총량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려면 원자력 발전소 몇 개 분량의 전기가 필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사토시는 "거짓말을 하는 비용이 정직하게 일하는 비용보다 훨씬 비싸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가끔 내 노드(Node)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조그마한 PC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열을 손으로 느껴본다.
이 열기는 단순한 기계열이 아니다. 누군가 지구 반대편에서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땀 흘려 태운 에너지의 흔적이다.
말은 쉽고 거짓말은 공짜지만, 일은 고되고 에너지는 정직하다.
사토시는 인간의 도덕성을 믿지 않았다. 대신 그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서로 경쟁하며 에너지를 태우게 만들었고, 그 에너지의 합으로 시스템을 지키는 '안티프래질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백서 4장의 'Proof-of-Work'. 이것은 디지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신성한 입장료다.
"진실에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그 무게를 전기 에너지로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