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록[悔改錄]

뜨거운 은혜의 현장 속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by 한두현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고루 분포 되어있다는 상식은,

이제는 옛말인 것일까?

아직도 여름의 잔열이 남아있는 9월 중순.

나는 우리 학교의 큰 행사 중 하나인
사경회[査經會]를 끝마쳤다.


새로 온 후배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보며,
나를 좀 더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뜨겁게 불타는 아름다운 모습들은,
내가 사경회 때마다 항상 느낀 그 감정이
더욱 올라오는 시간이었다.

바로, 부끄러움이다.

나는 또다시, 늘 그래왔듯
부끄러운 감정 속에서 사경회를 마쳤다.

이건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에게,
그리고 나아가 교수님들에게 마저
절대 말하지 못한, 나의 고뇌이다.

원래 난 신학을 할 생각이 없던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기를 꿈꾸었다.

TV 속에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 연예인들을 보며

그들과 같이 나 또한 이 세상에
나를 통해 일상에 치인 우리들에게
하루를 버텨낼 웃음을 주기를 꿈꾸던 사람이다.

비록 TV라는 작은 상자 속에서
우스꽝스럽고,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그들이지만.

그 겉모습에 차마 보이지 않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적 면모,
그들의 땀, 열정, 수많은 노력들에 반했다.


자신을 깎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게,

얼마나 멋있고도 아름다운 일인가?

그렇기에, 나도 그런 삶을 원했다.

실제로도 나는 누군가를 웃기는 걸
정말 즐기고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학창 시절은 항상,
남들 웃기는 재미에 살았었다.


그렇게 어느덧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가 왔고,

난 나의 꿈을 위해 한 발짝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런 줄 알았다.



원서 접수 2주 전.
엄마가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나는 신학교를 가야 하며,
목회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떨어졌다고.

열심히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나는
갑작스럽게 길 위에 나온 "신학교"라는 이정표에
급히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의 꿈이 갑작스레 가로막힌 이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것이 뜻이라면, 내가 기꺼이 순종할게"
라는 대답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때에 나에겐
어떠한 반발심조차도 들지 않았다.

마치 내가 가야 할 길은
원래 신학교이기라도 한 듯,

이성은 묻지 않았고.
입술은 OK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의 기도도 아니었다.
엄마의 기도의 응답에 나는 순종했고,

이전에 준비해 온
내 꿈의 모든 것을 전부 내던지고
새로운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럽게 신학대에 흘러들어왔다.
마치 이것이 내게 준비된 것처럼.

그러나, 신학대에 온 나는 문제가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죄인 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음을.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안다.

머리로는 말이다.

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가슴 뜨거운 만남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다.
말씀을 읽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흐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정리하자면 애매한 신앙이다.
아예 안 믿는 건 아니더라도,

그렇다 해서 진짜 하나님을 만난 자인가라는
질문에는 나 스스로가
그렇다고 대답을 못하겠다.

때문에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학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어쩌다 이 학교에 오게 되었냐는 말이나,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냐는 말을 듣게 되면
나는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것이 이유가 되냐는 말로 돌아올까 봐.

나의 순종이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던 것일까
싶은 마음에 잡아 먹힐까 봐이다.

그리고,

그건 부르심이 아니다라는

사형선고가 내게 선고될까 봐
너무나도 두렵다.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항상 남들에게는 드러내지 못하는
소외감이라는 족쇄를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입학하고서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밋밋한 신앙, 그것은 나를 절망케 한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어떤지를 알기에.

나는 더욱 절망한다.


머리가 어지럽다.
수많은 질문들을 불러온다.
나의 순종에 의심의 싹이 틔워진다.
그리고 조용히 침잠한다.

그래서 나는, 사경회라는 뜨거운 은혜의 현장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주님을 외치며 울부짖는 자들과

십자가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기도하는 자들.

방언을 외치며 하늘의 언어를 말하는 자들을 본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지만,
그 열기를 보고도 차갑게 식어있는
내 마음을 본다.

가슴의 냉기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느끼며,

나는 이 현장의 이방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왜 저들처럼 뜨겁지 못할까.

나도 저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나도 은혜의 기름 부음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위해 기도 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 열기가 닿는 일은 없었다.

믿는 이방인인 나는.

차가운 내 마음을 붙든 채,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더 나아가 죄악감이 느껴진다.

여기에 있는 모두를 속이는 기분이 들기에.

더 나아가 하나님마저 속이는 것 같아서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부름에도
숨어있던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나님께 떳떳하지 못한 자신이 밉다.



오르톨랑이라는 요리를 아는가.

오르톨랑이 나오면,

이 오르톨랑을 먹기 전에 면포를 머리에 쓰고
얼굴을 가린다.


그러나 면포를 두르는 행위는 한 때
오르톨랑이 너무나도 잔인한 요리이기에,
이것을 먹다 무릇 신의 분노를 살까 하여
신의 분노를 피하기 위한 행위라는 낭설이 돌았다.

오르톨랑의 낭설은,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은혜의 현장 속에서,
마치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은 기분이 올라온다.

뜨거운 성령의 역사하심을 맛보는
은혜의 만찬 가운데에서.

자격 없는 내가 은혜를 맛보려다

신의 분노를 받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하는
나만의 면포를 조용히 두르고
조용히 간절함을 담아 간청한다.

나를 만나주소서.

나에게도 뜨거운 은혜의 기름을 부어주소서.

당신 앞에 떳떳하지 못한 나를 용서하소서.



너무나도 두렵다.

나의 멈춰버린 듯한 차가운 이 마음을
이 공동체의 일원들이 알아챌까 봐.

믿는 이방인인 나를 배척할까 하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온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더 두려운 건.

이런 차가운 가슴으로
하나님 앞에 선 나 자신이 너무 두렵다.


이런 상태로 목회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그 자리에 내가 설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들이 나의 입술을 붙잡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털어놓을 수 있는 건
하나님뿐이다.

나의 절규를 부디 받아주시기를.

언젠가 생길 뜨거운 만남의 순간을 고대하며,

나는 기도하리라.

부디 내 가슴에도 그 뜨거운 열기가 닿기를.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성사되고.

거룩한 동행 속에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당신 우리에게 준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부디 나를 붙들어 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