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落花]

떠나는 모든 것을 위한, 남겨진 자들의 자세에 관하여.

by 한두현

5월 중순 정도였다.


친구와 점심을 먹고, 학교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기분 좋게 따뜻하던 봄이,

이젠 여름에게 바통을 넘기는 듯한 날씨였다.


연분홍 빛깔을 한껏 뽐내며,

봄바람의 리드에 맞추어 살랑살랑 춤을 추던 벚꽃들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전부 뽐내고

내년을 기약하며 모두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제는, 벚꽃이 서던 무대에

푸르고 싱싱한 초록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름은 스며들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따스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걷던 나는

금방 발걸음을 멈추었다.




모두 무대에서 내려왔다 생각했건만,

아직 내려오지 못한,

봄의 분홍 무용수들이 조금 남아있었다.



이것이 너무나도 슬퍼,

발걸음이 쉽사리 떼지지 않았다.


더욱 슬펐던 건, 엊그제 비가 한번 세차게 내렸다.

오늘은, 심지어 바람이 대차게 불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젠 가야 함에도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끝내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에 올리는 최후의 앵콜이랄까.


바람은 더 이상 분홍빛 무용수들과 합을 맞추지 않는 것 같았다.


파트너가 아니다.

이제는 받아들이라는, 운명이 보낸 악착같은 선고자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들은,

춤보다는 발버둥에 가까운 모습이다.



미련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름다움을 계속 붙들려는 처절한 사투와도 같았다.



대체, 뭐가 그리 아쉬웠을까?

무엇이 후회가 되어서 아직도 머물러 있는 걸까?


지금은, 초여름의 날씨.



몸은 햇살에 잔뜩 덥혀졌지만,

마음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래서일까,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어 카메라를 킨다.


내가 아니면 저 무용수들의 서글픈 앵콜을 누가 기억해 줄까.

난, 흔들리는 저들을 핸드폰 화면에 담는다.



찰칵.



찰칵.



찰칵.



그들의 마음이 내게 전해진 걸까.


최고의 모습으로 담아주고 싶었다.

위태로운 흔들림이,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연신 셔터음을 내며,

사진이 한 장, 또 한 장씩 쌓여간다.


나는, 저들의 구슬픈 앵콜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려는 걸까.



잔재처럼 남은 마지막 봄의 무용단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정사진이자,

소리 없는 레퀴엠을 위해ㅡ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 했던 그들에게,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라는 생각이 스쳤다.


막이 내렸음에도 커튼을 치워버리고

끝까지 공연한 그들의 노고에,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전했다.


내가 사진을 찍은 것이 그들에게는ㅡ

무대의 막이 내리고, 환호와 함께 무대 뒤로 날아오는 꽃다발 같지 않았을까?


물론, 환호도 박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찝찝하면서도 후련한 마음이 들어.


저녁 즈음에 다시

절박함이 잔뜩 묻은 계절의 무대를 찾아갔다.



천천히, 다시 둘러본다.




떠났다,



떠났구나.



하지만 이상하다ㅡ

보통 무엇인가 떠나면 드는 감정은 이게 아닐 텐데.

왜인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이 감정은 뭐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용단의 퇴장을 확인한 난,

기숙사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누워 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니, 머리가 좀 돌아간다.

아깐 더위라도 먹은 건가?

아직 더위를 먹을 만한 날씨는 아닌데 말이다.


의문투성이 안도감의 출처를 찾아내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름답게 남고 떠났다는 사실이,

박수 칠 때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심이 되었으니까.


그들이 계속 남아 있던 건,

자신들의 최후의 장식을 바라봐줄 관객 하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걸까.


그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자신들의 모습을 기억해 줄 누군가를 위해,

그 비바람을 견딘 것이 아닌가 싶었으니까.



더 오래 있었으면,

그들의 한철을 피워내기 위한

노력과 눈물들이.


아름다움이 아닌,

미련으로 얼룩진 추함으로

변색될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들을 기렸던 것이니까.



나의 아름다운 영정사진과,

소리 없는 레퀴엠은.

그 부분을 생각하고 진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잘 받아들인 것 같아서.

감사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결국, 아름다움은 끝이 있기에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벚꽃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이니까.



물론 나는 크리스천이다.

신학의 길을 걷는 난,

죽음 이후에도 소망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소망을 두고 있다 해서,

이별이 담담한 것은 아니다.

소중한 무언가와 진행하는 작별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으니까.


사람이든, 관계든, 지나간 시절이든 말이다.



우리들은, 상실의 고통을

시간을 통해 무뎌지게 만들 순 있어도.


그 순간의 찌르는 고통에는

아무리 당해도 적응이 안 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별과 끝을 너무 나쁘게만 보면 안 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



시작은 씨앗이며, 끝은 열매이다.

알파가 있으니 오메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



'인과'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것은.

우리의 삶에 본능적으로 부여되는 법칙이다.


이 세상의 법칙을, 상실이 무섭다는 이유로.

그 질서를 거스르려 할 것인가?


우리는, 거스를 힘조차 없다.

거스를 방법이 애초에 있긴 하겠냐마는.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는 이것을 막는 게 아니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끝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끝이라는 건, 생각보다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죽음이 있기에, 순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낸다.


이별이 있음으로, 우리는 매사에 뜨거운 열정을 담아 최선을 다하게 된다.


상실이 있으니,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한번 생각해 보자.

끝이 없으면, 삶에 긴장감이 있을까?


그것은, 그냥 굴레 속에서 무한히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나중에는 아무 감흥도 없이

그냥 눈뜨니까 살고, 배고프니까 밥 먹고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야 하니까, 사는 거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끝이라는 마침표가 있어야,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곱씹을 수 있는 법이다.

마침표 없이 계속 써대기만 하면,

그건 그냥 막노동이다.



상실이 무섭다고 계속 붙들고 있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계속 쥐고 있으면, 나중에는 썩어 문드러지는 법이다.

어떤 것은 놓아줬을 때 비로소 모두 행복한 법이다.



우린 나약하지 않다,

잠깐의 고통조차 못 이길 정도로 말이다.

신은, 우리를 그렇게 나약하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린 아픔과 고통을 이겨낼 최고의 선물이 있지 않은가?



"사랑."



정말 떠나보내는

누구든, 어떤 일이든, 어떤 순간이든,

본인이 정말 사랑했으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하니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

위로와 공감이다.

인간은 서로 아파하고 울어줄 수 있는 존재다.

그 나눔은, 고통을 이겨내는 최고의 약이다.




떠나가버린 모든 것은 말이 없다.

앞으로의 일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자,

풀어야 할 과제이다.


늘 당연했던 존재가 당장 곁에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사무치게 한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 해서,

그것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다 허사가 되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끝은 의미를 남기고,

우린 그 의미를 추억과 기억이라는 보물함 속에 담아둔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기리면 된다.


떠났지만, 추억과 기억이라는 구슬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잠깐의 아픔에, 함께한 순간들을 먹칠해서는 안될 것이다.


떠난 모든 것들이 말이 없어도,

웃으며 보내는 것.

그것이 정말 그들을 위한 것이니까.


우리는,

이별을 어떻게 아름답게 맺을 것인지를 늘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잘 보내준다는 것.


이건 떠나는 그들을 위한 최고의 예우이자,


함께한 모든 순간이 더없이 고마웠다는 감사 인사이며,


의미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한 시인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치려 한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당신은, 그 뒷모습을 끝까지 존중하며 제대로 보내줄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