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축구 일지

프롤로그 : 쌩초보 축구를 시작하다

by 오늘영

2022년 5월 0일의 일기.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에서 축구동호회 에피소드를 읽었다. 열혈 생활 체육인으로 이미 축구 동호회 에세이도 한 권 내신 분이었다. 내용 중 축구 동호회에 먼저 입단한 선배 언니들의 말을 서술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를 20개씩 3세트 하는 언니들을 작가가 감탄하며 지켜보니, 그 언니들이 ‘너도 내 나이 돼 봐.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 보통 ‘너도 내 나이 돼 봐-라는 멘트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잖나’ 하는 질문으로 작가의 생각이 이어지는 에피소드였다.


축구. 공을 지키려고 상대방과 몸싸움을 하고, 공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나도 하늘로 같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속 시원했던, 우리 팀 멤버와 협업하여 골을 넣기도 할 수 있는 축구.

내가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뛰었던 것은 14살이 마지막이었다. 밖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한 탓에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체형을 갖게 된 나는 자유시간으로 주어진 체육 수업에서 공차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아이들 몇과 함께 축구공을 쫓으며 달렸고, 그들이 나에게 ‘스트라이커’라고 불러줄 때는 짜릿했지만, 점심시간에 축구를 같이하자며 운동장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여자아이들에게는 피구라는 다른 종목이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피구가 재미없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알 수 있었는데, 영화에서 초등학생들의 피구 장면을 그릴 때 피구의 잔혹성(!)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를 공으로 맞춰야 하고, 금을 밟으면 죽는 피구는 나에게 달리는 자유로움도, 협업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성취감도 주지 못했다.

그토록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해 아쉬운 축구를 어른이 되어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며 축구동호회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문제는 실전에 옮길 수 있는지였다. 축구동호회를 검색하니 성인 취미반, 아빠 축구 같은 게시글이 보였다. 여성 취미 축구 동호회는 없을까. 규모를 조금 줄여 풋살 동호회를 검색해 보았다. 서울과 경기지역에 몰려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부산에도 풋살 동호회가 꽤 존재했다! 야호!

날이 따뜻해지면 축구동호회에 나가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운동장을 쌩쌩 달릴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 좁은 칸 안에서 서로를 공으로 맞추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피구가 아니라 너른 운동장을 달리고 우리 편과 협동으로 패스해서 골대에 골을 넣어보고 싶다. 전반 10분도 채 못 뛰어도 괜찮을 것 같다. 김혼비 작가의 책에서 본 ‘철봉에 매달려 윗몸일으키기를 20개씩 3세트 하는 언니’나 ‘너도 내 나이 돼 봐,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설렌다.


*


그로부터 2년 뒤인 2024년 10월, 나는 드디어 공을 차기 시작했다. ‘너도 내 나이 돼 봐,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언니’를 만나지는 못했다. 내가 그런 언니가 되었으니.


1년간 축구에 열정을 불태운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