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가까워지려 애쓸수록 평행선처럼 벌어지는 사이. 내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아빠는 늘 거대한 벽이었다. 집안의 공기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드는 무서운 사람. 성인이 된 후에는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타인이 되어버렸다. 아빠와 정을 나눠야 했던 그 시절, 우리 사이엔 마땅히 있어야 할 추억 대신 서늘한 침묵만 고여 있었다.
일 때문에 집에 자주 오지 않았던 아빠는 가끔 집에 올 때면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이나 차가운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정작 집 안에서는 단 한 뼘의 다정함도 내어주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은 내게 큰 충격이 아니었다. 내 삶에 아빠가 실재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아빠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시간을 모두 합쳐도 채 3년이 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아빠는 늘 부재중이었으므로, 그가 곁에 없다고 해서 딱히 슬펐던 적은 없었다. 슬픔이란 모름지기 기대가 있는 곳에서 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나타나는 아빠는 낯선 공포였다. 친하지도 않은 타인이 ‘가장’이라는 권위만 차고 나타나 집안의 공기를 가부장적으로 짓누를 때면 나는 숨이 막혔다. 아빠는 다정함을 건네는 법은 몰랐지만,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입히는 법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혼 후 아빠와는 가끔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되었다. 혼자 지내는 아빠가 마음 쓰이긴 했지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매번 상처로 끝났다.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자식들이 본인에게 살갑지 않은 것만 서운해하며 ‘싸가지 없다’고 몰아세우는 이기적인 태도에 나는 결국 참아왔던 말을 터뜨렸다.
- “아빠, 아빠는 그게 문제야! 아직도 아빠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거. 부모가 이혼했으면 자식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거야. 내가 아빠랑 통화하기 싫은 이유는 아빠가 항상 이런 식이라서라고!”
수화기를 쥔 손이 떨렸다. 서운함보다도,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대한 벽에 대한 분노가 앞섰다.
“그냥 좀 좋게 통화하고 안부 묻고 웃으면서 끊으면 되는데, 왜 꼭 이런 식으로 나한테 말하고 싸우게 만들어? 엄마는 아빠 욕 안 해. 오히려 아빠니까 전화 자주 하라고 그러지. 아빠처럼 우리 탓, 엄마 탓 안 한다고!”
웃으며 전화를 끊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아빠의 자리는 점점 지워져 갔다. 가끔 연락은 하지만, 결코 보고 싶지는 않은 존재로. 아빠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분명 한 달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아빠는 자식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지만, 삼촌은 그래도 자식인데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전화를 하셨다.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멍해졌다. 슬픔보다 먼저 튀어 오른 건, 솔직하고도 비릿한 진심이었다.
-‘나더러 어쩌라고….’
이 못된 마음이 앞질러 나갔다. 그날 바로 아빠에게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딸!”
-“아빠 어디야?”
-“아빠 집에 있지.”
-“아빠 병원이라며… 왜 거짓말해. 아빠 아프다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미웠고, 지독히도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이었는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무너져버렸다.
-“아빠 괜찮다. 수술하면 낫는다는데 왜 우노? 울지 마라, 괜찮다. 네가 이럴까 봐 이야기 안 했지. 수술하면 정말 괜찮단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날부터 매일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어떤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매일 목소리를 나누면서도 정작 병원에 찾아가 얼굴을 마주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작아진 아빠를 마주 보는 것이, 그 아픈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