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모한 시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방식.

3화

by 오늘

일단 멈춰 있던 블로그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어떤 블로그로 운영해야 할지,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운영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한 가지’를 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내가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블로그로 만들고 싶은지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정보만 전달하는 블로그보다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포스팅 하나하나에 사람 냄새가 남아 있는 블로그를 만들고 싶었다.

이 블로그에 어떤 이야기가 올라왔는지 궁금해서

다시 찾아오게 되는 공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한 '사람 냄새'의 시작이었다.


다시 시작한 블로그의 첫 소재는 아이폰 SE 구매기였다.

한동안 내가 빠져 있던 일상의 이야기였고,

나처럼 빈티지 폰에 관심은 있지만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 국내에서 올드 아이폰 가격이 너무 올라

선뜻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겪은 과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싶었다.


아이폰 SE를 구매하고,

반품하고,

올드폰을 고르면서 느꼈던 점들,

확인해 봐야 할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글로 적었다.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다시 읽고 고치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화면 속 '발행 완료' 문구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내 속마음을 처음으로 내던진 기분이었다.


새삼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는 게 아닌데,

아마 시작의 마음 가짐이 달라서였을까.

결코 가볍고 후련하지만은 않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재밌다.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행동의 무게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예전과 다르게,

이 하나의 글은 나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였다.

글을 발행하고도 후련함보다는

뭔지 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함께 올라왔으니 말이다.


이제 첫 스타트를 끊었으니

가족들에게도 말을 해야 했다.


“나 예전부터 컴퓨터로 벌어서 먹고살고 싶었어.

물론 막연한 거 알고, 처음부터 잘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그래도 이제 한번 제대로 시작해 보고 싶어.

아니, 사실… 이미 시작했어.

다들 어떻게 생각해?”


언니는 생각보다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이런 일들을 하고 싶어 했다는 걸

원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남 일에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도 아니었다.


“ 뭐 예전부터 그런 거 하고 싶어 했잖아. 한번 해봐라. 근데 엄청 부지런해야 할걸~

네가 그런 거 하고 싶고 콘텐츠 만들고 싶으면

커뮤니티도 많이 보고 밖에도 좀 돌아다니고,

남들보다 먼저 좋을 곳 찾아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으러 다니고 해야 함!”


언니 나름의 조언이었다.


생각해 보면 언니랑 나는

정말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자매다.

둘이 같이 나가면 자매냐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고 성격도 정반대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엔

‘아… 우리는 가족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다쳐

금요일 밤 혼자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입원을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언니는 일을 마치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새벽에 MRI 찍으러 가던 길,

텅 빈 병원 복도에서 내가 앉아 있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언니가 나한테 했던 말이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콕 박혀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만약 네가 걷는 게 불편해지면 집에서 공부만 해.

내가 니 먹여 살릴게. “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매일 나와 전쟁의 연속이던 언니가

나한테 무심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번에도 언니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무뚝뚝한 그 한마디가 고마웠다.


엄마의 반응이 궁금했다.

엄마는 내가 다시 취직해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살기를 바랐다.

걱정이 가득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

이제는 정착해 안정적인 길을 가길 누구보다

바랬을 거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번에도

늘 그렇듯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우리 엄마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다른 도시로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휴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가게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도 단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망해도 젊을 때 망하는 게 낫지. 한번 해봐.”

라고 말하는 사람.


그래놓고 간섭은 일절 하지 않는다.

대출부터 인테리어까지 크게 나서서 알아봐 주고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말은 늘 투박했고 가끔은 그 말들이 상처가 될 때도 있었지만, 엄마는 언제나 내 결정을 막지는 않았다.


가게를 정리했을 때도 그 일로 나를 타박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더 든든하게 받쳐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엄마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한번 해봐. 열심히 해서 잘됐으면 좋겠다.”


그 투박한 응원이 솔직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때론 엄마의 무심함이 서운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더 간섭해 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었다는 걸.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주었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이 곁에 있다는

그 사실이,

막연한 불안감을 안도감으로 바꿔주었다.


하지만 그 후,

어느새 나는 우리 집의 집사이자 운전기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