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이면서도 사소한 제목없는 글
무서운 꿈을 꾸었다.
나는 어딘가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자료는 예전에 프레젠테이션을 해봤던 익숙한 장표. 자연스럽게 발표를 시작했지만 자료 전개의 문제로 강단과 컴퓨터를 오가고, 정리되지 않은 발표로 허둥대며 시간이 흘러간다. 분명히 예전에는 짜임새 있게 만들었고 시간에 맞춰 영상과 시각자료, 그리고 멘트를 이어나갔던 자료인데 어설프고 답답하다. 어느새 주어진 시간의 반이 흘렀지만 핵심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이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이러한 비슷한 발표를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한 꿈을 꾸었을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조용한 거실에서 가만히 명상을 하며 호흡을 되돌려본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왜 그랬을까?
나 스스로 퇴색되고 있는 것에 대한 위기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 이어졌다.
과연 나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일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는 티끌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올 초에는 공부해 오던 대학원을 졸업했고 그 이후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안착시키는 경험을 했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시간적 자유를 얻었고 작게나마 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생겼다. 조금은 잡다하긴 하지만 한 해 동안 40여 권의 책을 읽었으며 요즘은 뜸했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다양한 사람들과도 소통했다.
그런데 왜 연말을 앞두고 이리도 답답하고 무서운 꿈을 꾼 걸까? 어쩌면 상황이 아니라 계속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지는 않지만 가정이 운영될 정도로 돈을 벌고 있고 물론 한없이 부족하지만 가족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계속 무언가 부족하고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몸은 무겁고 머리는 무디며 행동은 굼뜨다. 요즘은 책을 봐도 그렇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탐닉해도 재미있지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러한 답답하고 무서운 기분을 억누르고 다시 잠든 것이 아니라 일어나 아침 일찍 근처 카페에서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원래도 단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이러한 기분도 금방 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기분을 오랜만에 글로 쓰고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늘 명확한 메시지와 구성을 고민하고 신경 쓴 글이 아닌 내 생각흐름대로 자연스럽게 나아간 글을.
요즘 비슷한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오며 일단락된 결론은 이것이다.
어떤 일에, 누군가에게
무엇이건 도움이 되는 일은 멋진 일이다.
매일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