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웨이브
1
한 남자가 깊은 산속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참을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풀이 무성하고 사람이 오간 흔적은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아 길이 맞는지도 의심이 일었다.
한쪽은
얼마 전 산길 조성공사를 한 것 마냥 길이 잘 닦여져 있고
오른편 나뭇가지에는 한 산악회가 걸어놓은 리본도 달려있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어느 길로 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었지?'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을 보니 '동반자산악회'라고 적혀있었다.
그들은 사전 답사도 하고 더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경로를 잡았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예상대로 길은 계속 잘 조성되어 있었다.
조금 더 가보니 큰 공터에 쉴 수 있는 벤치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오손도손 모여 땀을 닦으며 활기차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그에게 옆 테이블의 한 분이 사과를 건넸다.
잠시 뒤 그는 그들의 일원이 되어 같이 산을 내려가게 되었다.
산을 내려가 초입에 있는 주막에서 원래부터 그들의 동료였던 것 마냥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몰려왔다.
문득 뭔가 잊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해는 지고 마침내 헤어질 시간이 되어 서로 손을 흔들며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는 혼자가 되었다.
다시 고민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었지?'
2
분명 그는 깊은 산속을 홀로 걸으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고독했지만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스스로와 천천히 대화하고 있었다. 자신과 하는 대화가 익숙해질 때 즈음 그는 갈림길을 만난 것이다.
사실 깊은 산속을 그가 홀로 걸은 것은 요즘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명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찾지 못했다. 그 답을 찾을 시간도 없었다. 늘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고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게 문제없이 잘 나아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혼자 덩그러니 놓이게 되면 뭔지 모를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치 호기심에 오래된 유적지 한편에 있던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넘어 금단의 공간에 들어선 것처럼 두근거리고 가슴을 옥죄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인적이 없는 고요한 길을 계속 걸었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어느새 그는 다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잊어버렸다.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지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라는 질문조차도 잊어버렸다.
요즘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고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르는 길이 가장 중요하며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고독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고 자신의 길을 찾게 도와준다고 했다. 아래의 글을 보고 갈림길에 놓인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 보았다.
그 남자는 사실 지금에 나와 다름없기도 하다.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는 음성을 들으세요! 이런 음성이 침묵하면,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세요. 뭔가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 여러분이 잘못된 길 위에 서있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 헤르만 헤세, <나로 존재하는 방법>, 뜨인돌,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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